이현우의 스포츠 세상

[이코노뉴스=이현우 조지아 서던 주립대 교수] 미국 스포츠 팬들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의류를 입는 행동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내포돼 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신의 공동체적 소속감을 알리는 동시에 그 팀의 성공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의류란 유니폼은 물론 모자와 마스코트, 액세서리 등 팀의 모든 상징물을 말한다.

▲ 이현우 교수

미국 메이저리그의 야구 모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많이 쓰이는데, 우리는 주로 패션의 범주에서 모자를 선택하는 반면 미국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모자를 쓴다.

그래서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모자를 쓰고 있으면 주변의 질문을 받는 경우가 흔한데, 주로 그 팀의 팬이냐고 물어오면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나 초기 유학생들은 뻘쭘해지기 십상이다.

팬은 팬을 알아본다고, 그 사람이 어떤 팀의 옷을 입는지에 따라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라이벌 팀이면 짓궂은 농담을 가볍게 주고 받기도 한다.

스포츠 관련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이 스포츠 팬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팀 의류라면 자기가 어떤 팀과 함께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사실 옷이라는 게 보편적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이기에 이는 새삼스럽지 않다. 사람들은 옷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 누구나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멋져 보이는 옷을 입을 때 만족스럽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스포츠에서는 똑같은 옷이라도 상황에 따라 그 옷이 더 멋지고 자랑스러워질 때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로버트 시알디니 박사와 연구진은 스포츠 의류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했다.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학교가 미식축구 경기에서 이긴 다음 날이면 캠퍼스 내에 팀과 학교 관련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본 결과 본인이 직접적으로 팀과의 연고가 없더라도 팀의 승리 이후에 팀 의류를 더 자주 입었다. 그리고 경기결과를 이야기 할 때는 졌을 때보다 이겼을 때 ‘우리’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영된 영광 누리기(basking in reflected glory)’ 현상이라고 하며, 이와 반대로 패배했을 때 팀을 외면하는 심리적 대처방법(coping)을 ‘투영된 실패 차단하기(cutting off reflected failure)’ 현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관리하기 위해 승리에 편승하기도 하고 패배는 외면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관리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편승효과를 어떻게 장기적인 팬덤으로 이어갈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아무리 훌륭한 실력과 전통을 겸비한 구단이라도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승패여부가 불확실성에 달려 있는 만큼 매번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과의 동일시를 통한 팀 정체성이 강한 팬들과의 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마케팅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팀 충성도가 높은 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충성도가 높은 팬들은 팀이 연패의 수렁에 빠지더라도 묵묵히 관중석에서 팀을 응원한다. 팀이 지더라도 당당히 팀 의류를 입는다.

그렇다면 팬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한가지 방법으로, 행동적 관여도를 통한 팬덤 문화의 형성을 이야기 해볼 수 있다.

▲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 캡처

관여도는 마케팅과 소비자 심리에서 많이 다뤄지는 개념인데, 제품군을 고관여 제품과 저관여 제품으로 나누기도 하고 해당 소비행동 자체에 대한 관여도를 따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버스 가판대 앞에서 껌을 산다고 하면 우리는 별 고민 없이 즉흥적으로 껌을 하나 고를 수 있고, 그 껌이 마음에 들었다면 타성적으로 버스를 기다릴 때마다 그 껌을 구매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저관여 제품의 구매행동이다.

반면 우리가 자동차를 구매한다고 하면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으로 정보를 모으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자동차는 즉흥적으로 구매하기는 어려운 고관여 제품이고 만약 해당 자동차 브랜드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 구매 때도 그 자동차 브랜드의 신차를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

스포츠 관리자들은 팬들의 관여도를 높이고 싶어한다. 이는 높은 관여의 수준이 해당 행위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commitment)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야구팬은 퇴근 후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습관적으로 챙겨보며, 축구 팀의 서포터즈들은 시합마다 경기장을 찾고 다른 팬들과 어울려 응원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상이다.

이들은 별다른 고민없이 매번 자기의 팀을 응원한다.

이러한 팀과의 연결고리는 크게 세가지 관여수준의 향상을 통해 학습된다.

해당 스포츠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는 인지적 관여와, 이기거나 골을 넣었을 때 감정반응을 알게 되는 정서적 관여, 그리고 인지적-정서적 반응체계에 대한 결과로서 행동적 관여가 팬들의 관여수준을 높인다.

야구의 룰을 깨닫고, 명수비를 통해 아웃을 잡을 때의 짜릿함을 느끼고,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며 계속 야구를 챙겨보다 보면 야구팬이 되는 식이다.

스포츠 관리자의 역할은 무한한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 관여의 요인들을 찾아내고, 쾌적한 환경조성을 통해 긍정적인 학습을 유도함으로써, 즐거운 관람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다.

스포츠 문화가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미국에서는 스포츠 팀 관련 의류를 입고 다니는 게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야구나 농구 축구와 관련된 의류를 경기 날이 아닌 일상에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입고 다닐 분위기는 형성되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전혀 연고가 없는 외국 팀의 로고가 박힌 의류를 패션의 관점에서 소비하는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스포츠 행정의 관점에서 스포츠 문화가 우리네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 것을 자책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올바른 문화의 형성을 위한 여지가 많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팀 마다 각자의 개성과 색깔에 따른 문화를 형성한다면 길을 가다 해당 팀의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날 때 ‘저 팀은 전통의 강호’, ‘저 팀은 신바람 나는 공격전술을 보이는 팀’ 등의 연상을 일으키는 소소한 일상의 재미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같은 팀의 팬이나 상대 팀의 팬을 만나 어제 시합에 대한 전술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스포츠 문화가 우리사회에 깊숙이 자리잡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2002 한일월드컵 이전에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군대 얘기와 더불어 축구얘기를 가장 싫어했지만, 그 이후에는 오프사이드와 압박전술을 이해하며 붉은악마 티셔츠를 하나씩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막대한 투자나 위대한 승리를 통한 수요의 창출도 방법이겠지만, 스포츠 관리자들은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게 인도하고 이를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동시에 건전한 문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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