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정치생태계가 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는 변화 혹은 전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변화의 패턴’에 대해 수없이 많은 모형을 제공하고 있는 전통고전 주역(周易)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판단했다.

이 코너를 통해 주역 읽기에 필요한 몇 가지 배경지식을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주역은 운율이 있는 시(詩)다

별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이하 생략)

 

시에는 리듬이 있다. 반복해서 소리내어 읽으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시인 윤동주가 고뇌했던 식민지의 밤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가 그리워했을 모든 것들이 운율과 함께 스쳐 지나간다. 고통스러웠을 식민지 청년의 서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늘 살아 숨쉬는 생명의 안정감도 함께 선사한다.

이게 시의 매력이다. 산문에도 운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에는 운률이 주는 특별한 긴장과 안정감이 교차한다. 또 시각적으로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오르면서 빛나는 별이 오버랩된다.

주역을 낭송하면 어수선한 마음이 안정된다

주역 또한 그렇다. 나는 언젠가부터 아침이면 주역의 괘사를 읽기 시작했다. 대체로 한 개나 두 개의 괘를 읊조린다. 간밤의 꿈자리가 어수선하거나 지난 저녁 술자리가 불편하면 아침이 상쾌하지 않다. 그럴 때 주역을 읽으면 아주 차분해진다.

▲ 정약용이 지은 주역 해설서, 주역사전.

오래된 경전들이 대대로 전승되려면 운율이 맞아야 한다. 종이가 없었던 고대에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혹은 선대에서 후대에게로 전달되려면 노래의 형식을 빌어야 한다. 소리와 뜻과 그 길이가 사람의 호흡과 적절히 어울려야 긴 내용이 독송으로 사람에게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도덕경(道德經)이나 불경 등 도가(道家)나 불가(佛家)의 경전, 일부의 유가(儒家) 경전 모두가 그렇다. 주역을 읽으면 심신이 안정되는 이유는 운율이 있는 경문(經文)을 읊조리면서 흐트러졌던 호흡이 정돈되고 산란했던 마음이 가다듬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학자 왕위순(黃玉順)의 ‘역경고가고석(易經古歌考釋), 파촉서사, 1995’에 실린 역경의 고운(古韻)을 살펴보자.

아래의 시 형식은 지뢰복(地雷復) 괘사를 고운(古韻)으로 풀어 논 것이다.

反復其道, 길을 나서네

七日來復 7일 만에 돌아오네

不遠復 멀리 가지 않아 돌아오네

休復 頻復 기쁘게 돌아오네 강둑을 따라서 돌아오네

中行獨復 중도에 홀로 돌아오네

敦復 迷復 급습하고 돌아오네 돌아올 때 길을 잃네

(위 고운은 황준연의 ‘실사구시로 읽는 주역’, 서광사 에서 재인용)

한 편의 시다. 물론 위와 같이 고운의 형식으로 읽지 않아도 좋다.

거의 모든 주역 해설서는 아래와 같이 괘사를 실어 놓았다.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六二, 休復, 吉.

六三, 頻復, 厲无咎.

六四, 中行獨復.

六五, 敦復, 无悔.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不克征.

복 형 출입무질 붕래무구 반복기도 칠일래복 이유유왕 ~~~ 이런 식으로 읽어가도 가락이 느껴진다. 읊조리는 사이에 흐트러진 호흡은 안정되어 가고 산란해졌던 마음은 중심을 잡기 시작한다. 매일 매일 이렇게 읽어 보시라. 주역을 읽는 사이 당신은 리듬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광대한 주역의 세계가 다가온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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