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최충현 대치동 서울공인중개사 대표] 전세가 통 나가질 않는다. 전세 물량은 그럭저럭 나오는 편인데 찾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강남권을 비롯한 서울 일대에서 전세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역(逆)전세난’을 우려하는 상황이 됐다.

▲ 최충현 대표

필자가 일하고 있는 대치동 일대에서는 전세 계약이 가뭄에 콩나듯 이뤄지고 있다. 일부라도 월세를 받아달라는 이른바 반전세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집 수리 상태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전세 거래는 개점 휴업상태나 다름없다고 보면 된다.

필자는 대치동에서만 20년 넘게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데 이런 경험은 매우 드물다.

크게 따져보면 2007~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전세금 하락과 동시에 인근 잠실아파트 재건축 이 완료돼 1만 가구 이상 입주가 몰리면서 겪었던 전세난 이후 근 10년 만이다.

그 때 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전세 계약이 만료 됐는데도 보증금을 주지 못해 임차인에게 통사정 하거나 다툼이 일어나는 광경을 가끔 지켜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올해 초만 해도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활기를 띄면서 이주 수요로 인한 전세난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당시에는 재건축 사업성이 좋아지면서 2018년까지 강남권 재건축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강남권에 재건축 이주 수요가 급증하면서 인접 지역에 전세난을 확산시키고 전세가격도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그런데 최근 서울의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전셋값은 일제히 하락했다. 강동구와 인접한 경기 하남시의 전셋값도 떨어져 강남권에 '역전세난 벨트'가 형성됐다.

지난 15일 기준 전국 3만327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KB국민은행의 '주간 KB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4%, 전세가격은 0.02% 상승했다.

그러나 수도권 전세시장에서는 경기 하남시(-0.19%)가 큰 하락폭을 보였다. 이는 미사강변도시의 신규 입주물량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 강남 재건축의 상징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 모습/뉴시스 자료사진

이와 함께 강남권의 경우 전세가 하락이 지속됐다. 강남(-0.05%), 서초(-0.03%), 송파(-0.03%)구 모두 전세가가 떨어졌다. 특히 하남과 인접한 강동(-0.12%)은 서울에서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입학철과 무관한 계절적 비수기라 전세를 구하는 수요자들이 줄어든 데다 재건축 예정단지에서 낮은 가격의 전세 물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강남권과 비교적 가까운 하남미사, 위례신도시 입주물량 출현도 꼽을 수 있다.

30년 이상된 강남권 재건축 대상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집주인들이 지하주차장이 있는 새 건물에서 편하게 살아보려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한때 눈 씻고 찾아도 보기 힘들었던 전세 매물이 넉넉해지면서 전세 보증금을 내린 곳도 적지 않다.

잠실권이나 서초권 등 주요 지역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올 초에 비해 최고 6000만원 이상 하락했다. 일부 수도권에서도 전세 매물을 고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난제였던 전세대란이 8년 만에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는 희망적 분석도 내놓고 있다.

특히 송파 등 주변 지역은 연말까지 위례를 비롯해 하남 미사 등지에서 추가로 2만 가구가 입주하면 오히려 역전세난을 걱정해야할 판이 됐다.

강남권에서나마 전셋값 상승 추세가 꺾인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면 쉽사리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내 또 다시 전세대란에 빠지는 등 냉온탕을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셋값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게 당연하지만 ‘주택’이라는 공공재의 특성을 감안할 때 정부 정책은 언제나 중요하다. 강남권에 국한된 게 아니라 우리 국민이 전세난에서 해방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예를 들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젊은 층에게 저렴한 전세임대나 행복주택, 뉴스테이 물량을 늘려 쉽게 입주할 수 있게 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도 아파트보다 부담이 적은 주변 연립이나 다세대를 선택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주택 정책은 미래지향적 전망과 비전을 가지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실수요자는 물론 정부와 업계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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