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윤희 퇴계학연구원 간사장] 사물의 본질을 깊이 파 들어가서 우주의 근본을 터득해내는 일을 격물(格物) 치지(致知)라 한다. 이를 유교 기본 경전의 하나인 <대학>에서는 가정을 거느리고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도 이 격물 치지가 도학의 출발점임을 확신하고 있다.

옛날부터 일반적으로 우주의 근본을 가리켜 도(道)라 하였는데, 이는 도가(道家)의 영향을 받은 말이다.

유가(儒家)에서는 대체로 천(天) 또는 천도(天道) 천리(天理) 천심(天心)이라는 용어들이 비슷한 용도로 쓰이기는 했으나 철학적으로 깊이 검토된 개념은 아니었다. 유가에서 도(道)라는 말은 사람이 본성을 따를 수 있게 하는 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송나라 때에 이르자 우주의 근본을 가리켜 도교에서 쓰던 말인 도를 신유학자들이 이(理) 또는 기(氣)라는 말로 다시 정의하는 학풍이 이루어진다.

이(理)는 불교 천태 화엄의 이론가들이 주로 쓰던 말이고, 기(氣)는 도교 노자 장자에 근원을 두고 있는 말이다.

천태 화엄의 이론가들은 우주 근본(理)과 존재 현상(事·사)의 관계를 ‘둘이 아니다(不二·불이), 걸림이 없다(無碍·무애), 한 덩어리로 녹아 있는 관계다(圓融·원융)’라고 보았다.

노자 장자는 우주 근본인 도는 하나의 기(一氣)일 뿐이고 모든 현상은 기가 모이느냐 흩어지느냐에 의하여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보았다. 하나(一)에서 둘(二), 둘에서 셋(三)이 생겨나면서 절대 근본으로부터 삼라만상이 이루어져 나간다는 체계를 말하기도 하고 무(無)에서 유(有)가 나온다는 사상을 갖기도 하였다.

신유학자들은 우주론을 세우면서 이(理) 기(氣) 두 개념을 다 쓰고 무(無)와 유(有)를 묶어 놓는데, 그것은 불교와 도교를 함께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퇴계 선생은 정호(程顥) 정이(程頤) 두 정씨 형제와 주자의 이론을 따라서 이(理)를 우주 근본으로 보는 학풍을 이어받는다.

우주의 근본, 이(理)는 철학에서 제일원인(第一原因), 절대진리(絶對眞理)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음과 양이라는 상대적 원리로 구별되기 이전의 절대적인 개념으로서 짝이 없는 하나(一)이다.

우주에서는 기(氣)라는 것이 생각되는데, 기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보면 된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물질 이상은 아니니 유(有)의 범주에 속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음과 양으로 구별할 수 있는 상대적인 것(二)이다.

이론적으로 따질 때에는 이는 근본으로서 먼저이고 기는 생겨난 것으로서 나중이며 이가 존귀하고 기는 비천하다고 이해된다.

한편 이(理)의 내용은 냄새도 맛도 형체도 없으나 모든 존재를 포용할 수도 있고 아무리 작은 존재 속에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비어 있다거나 존재가 있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기로 하여금 음과 양으로 변화하면서 마치 봄・여름・가을・겨울이 순환하여 1년을 이루는 것처럼 만물의 시작도 되고 성장과 형통의 길도 되며 결실과 수확을 가능케 하는가 하면 종말과 시작의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전체로 보면 원으로 순환하는 원만한 상태가 영구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신령한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존재는 아닌데 그렇다고 존재 아닌 것도 아닌, 유(有)도 아니면서 무(無)도 아닌 그 무엇, 결국 이(理)라는 것은 신령한 원리라고 생각된다.

인류의 최고 지혜를 가지고 오랜 세월 사색하고 궁리하여 얻은 철리이지만 어떻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학자들은 이동론(理動論)이라 한다.

그러나 세상에 실제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이(理)가 존재라는 상대적 단계를 거치면서 그 기(氣)와 묘(妙)하게 결합 응결(凝·응)되어 있지 않고서는 그 사물이 사물로 존재할 수가 없고, 그 현상이 현상으로서 드러날 수가 없다.

따라서 이와 기는 서로 2이면서 1이고 1이면서 2인가 하면 2도 아니고 1도 아닌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관계를 이룬다고 생각된다. 철학에서는 이이일론(二而一論), 불이론(不二論)이라 한다.

이름은 서로 다르게 부를 수 있고 또 그렇게 구별하여 불러야 이해를 분명하게 할 수 있지만, 존재의 세계에서는 실인즉 이 없이 기가 존재할 수 없고 기 없이 이가 드러날 수 없다. 이러한 관계를 철학자들은 상수(相須)와 대대(待對)의 관계라 한다.

퇴계 선생은 이러한 철학을 젊어서부터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몰입했던 역학(易學), 특히 주자가 쓴 <역학계몽>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정리해냈다고 보인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역학계몽>에 나오는 ‘하도(河圖)’라는 상징적 그림의 이면에 깔려 있는 보이지 않는 원리가 곧 이(理) 아니겠느냐는 말을 여러 번 한다.

‘성학십도’ 머리말을 통하여 선조에게도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선생의 이(理) 개념은 확고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도’의 이면에 깔려 있는 원리란 역학적으로 말하면 태극 이외의 것일 수 없으니 이가 곧 태극일 수밖에 없다는 말도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하도’의 이면에 깔려 있는 원리는 순환의 원리(相生原理·상생원리)라고 말한다. 순환의 원리는 결국 원(圓)을 의미하는데, 그 원이 얼어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어서 원운동(回轉·회전)을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순환의 원리를 오늘날의 수학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진동(振動)의 원리라 하여 틀림이 없다.

다시 말하여 우주 모든 존재는 순환=진동을 근본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만물과 현상의 존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역경>에서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말이 기본 원리로 사용되는 것과 통하는 생각이다.

원(元)은 시작・싹틈을 말하고 형(亨)은 통함・성장을 말하고 이(利)는 결실・획득을 말하고 정(貞)은 종결・갈무리를 말하는 용어이므로 원형이정이 합쳐지면 하나의 순환하는 원을 그리게 된다.

여기에 시간이 개입되면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사인(sine) 곡선을 그리며(振動·진동)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퇴계 선생이 제자 특히 우경선(禹景善), 기대승(奇大升) 등에게 준 편지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이미 확립되어 굳게 깔려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선생이 이기(理氣)를 말할 때에는 역학에 나오는 원리와 그림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보아서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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