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올여름엔 무더위와 더불어 70~80년대 전염, 감염병들이 기승을 부렸다.

간염 결핵에 이어 콜레라 비브리오 레지오넬라 등 거의 잊혀졌던 병명들이 매스컴을 탔다.

▲ 남영진 논설고문

“침묵의 불청객, C형 간염 집단감염. 예방법이 없다” “후진국병 재창궐, 결핵 사라진 적이 없다” “15년 만의 콜레라 집단 식중독, 탈난 방역”등 굵직한 제목들이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이와 함께 아이돌스타, 유명 탤런트들의 유흥업소 종사자들과의 성추행 사건이 잇달았다.

정치권도 싸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홍만표 변호사 전관예우로 인한 거액 수임, 진경준 전 검사장의 넥센주식 증여로 140억원대 취득,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배임사건 등으로 연일 떠들썩했다.

매스컴에서는 전염병, 대중스타의 탈선을 겹쳐 실어 무더위에 짜증을 더했다. 외국에서도 테러, 지진 등 인재와 천재가 연일 뉴스를 내보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시절 여권에 불리한 정치사건이 일어나면 검찰에서는 유명가수들의 대마초 흡연 사건을 발표해 비판적 분위기를 물타기 했던 기시감이 든다.

이번에는 전염, 감염병이 먼저였다. 일회용 주사기를 계속 사용해 C형 간염환자가 대거 발생했다. 대형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결핵에 감염돼 충격을 준데 이어 청정바다인 거제 지역에서 삼치회를 먹고 콜레라 환자가 연속 2명이나 발생했다.

간염, 결핵, 콜레라가 호들갑을 떨만치 위험한 병인가? 이젠 전염성보다는 이름이 주는 공포가 더 크다.

신종 병명도 이어졌다. 지난해부터 브라질에서 들려왔던 지카 바이러스 감염환자가 우리나라에서도 11명이나 보고됐다. 지카 감염을 우려해 남자골프 10위안에 들어있는 호주의 제이슨 데이, 아담 스콧, 북아일랜드의 로리 맥킬로이, 미국의 조단 스피스 등이 줄줄이 리우올림픽에 불참했다.

이미 태국은 환자가 100명이 넘고 싱가포르에서도 한 지역에서 집단 발병해 1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전 사회를 흔들었던 병명은 이름도 생소한 메르스였다. 우리나라 양대 종합병원이라는 삼성의료원에서의 메르스 집단감염으로 신종 감염병의 공포를 겪었다.

지난해부터 신생아 소두증의 원인이라는 지카 바이러스가 만연해 올해 리우올림픽을 치룰 수 있을까 염려했었다.

오래전부터 홍콩독감에 이어 조류독감 등 변종 바이러스 전염병 때문에 방역체계에 혼란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몇 년전 사스 창궐때는 김치와 마늘덕분이라며 잘 넘겼다. 환자가 많았던 중국을 후진국으로 보기도 했다.

▲ 지난달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센터를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뉴시스

전염병의 공포는 오래됐다. 가장 무서운 병인 한센씨병(문둥병)은 성경에도 많이 나오고 영화 ‘벤허’에서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감염돼 동굴 속에서 사는 모습도 처절했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중세 유럽인구의 절반을 사망케 한 흑사병(페스트) 이 창궐할 때의 이야기다.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록도는 일제 때부터 한센씨병 환자를 집단수용한 섬이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 병이 나은 사람들의 거주지인 나환자촌이 있었다. 수도권에서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던 경기도 안양의 라자로 마을이 유명했다.

천연두 홍역은 모든 사람들이 일생 한번은 걸린다는 무서운 병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연두를 마마라 높여 부르고 어디서 발생하면 지역 전체를 접근금지 시켰다.

선조때 허준이 이 마마환자들에게 약처방을 잘해 명의가 됐다. 19세기말 지석영의 우두법이 도입되면서 우리나라도 100년 만에 멸종됐다. 우리는 초등학교시절 어깨에 우두 예방주사를 맞아 성인이라면 어깨에 있는 분꽃 같은 흉터가 건강의 상징이었다.

천연두와 더불어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 독감 등도 사람들을 가장 많이 죽인 1급 전염병이었다. 1차대전 때도 전쟁으로 사망한 전사자보다 전쟁말기인 1918년부터 유행한 스페인독감으로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질 설사와 비슷한 콜레라는 비교적 최근의 전염병이지만 결핵은 꽤 오래된 병이다.

12년 전 50대초에 결핵을 앓은 적이 있다. 삼성의료원에서 의사로부터 결핵판정을 받았을 때 충격이었다. 나도 결핵이 올수 있구나 하는 비통함과 함께 직장은 어떻게 하지? 가족들에게 전염은 안돼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 예방주사/구글 이미지 캡처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섯 달 동안 약만 열심히 먹으면 낫는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 순간에도 “담배는 못 피지요?”라고 물으니 의사가 “치료기간은 안 된다”고 했다. 주치의도 흡연자였던 것을 완치 후에야 알았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담배는 끊었다. 약을 먹으며 저녁 모임도 피했다. 열심히 약을 먹고 보신탕도 먹고 한 달만에 X-레이를 찍어보니 많이 좋아졌단다.

일상생활에는 불편이 없었지만 지인들에게 결핵에 걸렸다고 하기가 쑥스러웠다. 병명을 밝히면 대부분 다 꺼렸다.

의사는 보름 정도 약을 먹으면 전염성이 없다 했지만 집에서 지내기도 께름칙했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만치 결핵은 전염력도 강했고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은 약이 좋아져 여섯 달이면 쉽게 낫는다.

결핵은 기원전 7천년 경 석기 시대의 화석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 이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이지만 균의 실체가 밝혀진 건 얼마 안됐다.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버트 코흐가 결핵의 병원체인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투베르큘린’반응으로 결핵판정을 한다.

결핵 환자의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전염되지만 감염됐다고 모두 결핵에 걸리지는 않는다.

▲ 롯데마트의 '하절기 식품 위생 집중 관리'/뉴시스 자료사진

대개 접촉자의 30% 정도가 감염되고 감염된 사람의 10%정도가 결핵 환자가 되며 나머지 90%의 감염자는 평생 건강하게 지낸다. 감염자중 50%는 1~2년 안에 발병하고 나머지 50%는 그 후 일생 중 특정 시기에, 즉 면역력이 약해지면 발병한다. 잠복병인 것이다.

콜레라는 유럽에 새롭게 등장한, '근대적인' 질병이었다. 인구이동이 잦아진 19세기 전반쯤에야 발병됐다. 콜레라균과 비슷한 장염(腸炎)비브리오균은 주로 아시아에서 많이 발견된다.

여름 우리나라 식중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패류에 의한 식중독이 장염 비브리오균에 의한 것이다. 문득 가을바람이 불어와 여름병도 다 걷어가고 있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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