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 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우리나라 노랫가락이 항간에서 듣는 일이 적어지면서 점차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멀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간혹 TV등을 통해 몇몇 전문 소리꾼을 통해 접하게 되지만 가락도 낯설고 가사도 어려운 국악을 흘러듣게 될 뿐이다.

현재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하응백 박사가 이처럼 박제화된 국악 사설들을 좀 더 친근하고 맛갈나게 변신시켜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하 이사장은 창악집성이라는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냈다./편집자 주

 

 

‘산타령’은 산천경계를 노래하는 입창이다. 서서 부르기 때문에 입창(立唱)이라 한다. 이 ‘산타령’에는 ‘경기산타령’과 ‘서도산타령’이 있다(‘서도산타령’은 원래 ‘놀량 사거리’라고 하는데 편의상 여기서는 산타령이라 통일했다). ‘경기산타령’은 현재는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이렇게 부르고 여기에 개구리타령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판염불,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이렇게 불렀던 노래이다. ‘서도 산타령’은 놀량, 사거리, 중거리, 경발림으로 이루어기에 산타령이라 하지 않고 ‘놀량사거리’라 불렀던 것이다.

▲ 선소리산타령 보존회 회원들이 '2011 풍류와 함께하는 청계천 나들이'에서 아름다운 전통 선소리산타령을 들려주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경기산타령’에서 놀량의 원조격인 판염불 가사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진군명산만장봉에 청천삭출금부용 음도로 음도로 시법이라

나무어살바에 동내라 안산이라 주산이라

좌우라도 졍용 나무살바 마무라도살바 나무살바

충청도라 내포산에 두루두루 한량님이 와 계신데

막걸니 여닷동이 걸넛으니 자시거나 말거나

나무라도살바 나무살바 일세 동방에 졀도령

이세남방에 득청룡 삼세서방에 부정토

사세북방에 영안강 도령청정에 무활예

삼보철영에 강차지 아금지송에 묘진언 나무라셔살바 나무살바

산천초목이 셩님어 나에 구경가기에 좃쿠나 에에헤띄여 네로구나

나에에에헤야 에혜띄여 네헤에야 어어 듸이이 이이얼 네로구나

말은 네에야 어 이놈 말 들어봐라

녹양 버든 길로 평양감영 쑥 드러간다 에에에헤이어네로구나

아모려도 네로구나

낙낙장송 늘어진 가지 다떠러져 줄거리만 나머지와

자 조홀시구 어 이놈 말 들어봐라

청산귀영에 올아 황운을 검쳐잡고 에에 이얼네로구나

어린 양자 고운 소래 눈에 암암 귀에 쟁쟁

비나이다 하나님전에 님생겨 달나지이다고 비내이다

락락장송 늘어진 가지 한 마리는 남게 앉고 또 한 마리 들에 앉어

체어다보니 울음을 울고 내리 구버보며 우름을 운다

해당화 그늘 속에 비만 맞은 제비 새끼 졸졸 흐늘거려 거드려거려

노는 사랑 어화둥둥 내사랑이야 어화둥둥 내 간간이로구나(『신구시행잡가』, 1914)

현재의 경기 놀량은 이 판염불에서 불교적이며 무속적인 앞부분을 과감히 버리고 ‘산천초목’부터의 뒷부분만 남겨놓은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가사와 판염불의 가사, 또 서도 놀량의 가사를 비교해보면 경기 놀량은 판염불의 가사 일부분과 서도 놀량의 가사 일부분을 차용해서 새롭게 짜깁기한 흔적이 확연히 눈에 띤다. 즉 구음부분을 제외한다 해도 ‘육구함도 대사중로’ 부분과 ‘사랑초’ 부분은 서도 놀량에서 차용한 흔적이다. 그런데 경기 놀량의 가사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종일 가도 안성은 청룡이로구나
몽림 일월이 송사리나 삼월이며

도대체 무슨 뜻일까. “종일 가도 안성은 청룡이로구나”는 ‘놀량’이 원래 사당패가 노래한 것이니 이해가 간다. 종일 걸어가 안성 청룡사에 도착했다 혹은 못했다 라는 뜻일 것이다. 사당패들의 힘든 삶을 표현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몽림 일월이 송사리나 삼월이며”는 무슨 뜻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 황용주의 ‘한국경서도창악대계’에도 이 부분의 뜻은 풀이하지 않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몽림(夢林) 일월(日月)이 송사리나 삼월이며”라고 한자음을 달고 그 뜻을 “꿈속의 수풀에서 노는 것이 기껏해야 애숭이나 심부름하는 아이의 뜻일 듯하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해석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앞뒤의 의미 연결이 부자연스러워 전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해석의 문헌적, 어학적 근거는 전혀 없는 것이다. 즉 이 가사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여러 잡가집을 보아도 이러한 가사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구조(舅調) ‘경기산타령’에서 놀량 부분에 해당하는 ‘판염불’에도 이러한 가사는 없다. 현행 경기산타령에서 “종일 가도 안성은 청룡이라/몽림 일월이 송사리나 삼월이며” 부분은 이창배의 ‘경기산타령’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신종 가사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하나 미스터리한 가사가 있다.

 

육구함도(六衢咸道) 대사중로 얼씨구나 절씨구나(경기놀량,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

육구함도 대삼월이라 얼씨구나 절씨구나(서도놀량, 김정연의 『서도소리대전집』)

‘육구함도’는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창배는 여기에 “옛날 진(秦)의 서울 함양(咸陽)의 거리가 넓어서 여섯 갈래가 된다는 말. 넓은 길을 말함.”이라는 주석을 달아놓았다(김정연의 책에는 주석이 없다). 황용주의 ‘한국경서도창악대계’에는 가사는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와 동일하나 해설 부분에서 ‘대사중로’가 갑자기 ‘대사옹구리’로 변해 있다. 황용주의 ‘육구함도’에 대한 해석은 이창배와 동일하다. 황용주의 책에도 ‘대사중로’, 혹은 ‘대사옹구리’에 대한 주석은 없다.

1910년대부터 간행된 잡가집에는 이 부분이 어떻게 표기되어 있을까.

서적명

간행연도

간행지

가사내용

신구잡가

1914

평양

육부암도 대사몽구리

정정증보신구잡가

1915

평양

육부암도 대사몽구리

증보신구잡가

1915

서울

육부암도 대사몽구리

고금잡가

1915

평양

육부암도 대사몽구리

조선잡가집

1916

서울

육구암사(六九庵寺) 대사뭉구리

조선신구잡가

1921

서울

육구암사(六九庵寺) 대사뭉구리

신정증보신구잡가

1922

서울

육부암도 대사몽구리

대증보무쌍유행신구잡가

1925

서울

육부암도 대사몽구리

가곡보감

1928

평양

육구암도 대삼월이라

조선속곡집

1929

서울

육구암사(六九庵寺) 대사뭉구리

 

즉 ‘육부암도’ 계열과 ‘육구암사(六九庵寺)’ 계열로 나눌 수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원래의 뜻일까? ‘놀량’은 원래 사당패들이 불렀던 노래의 하나이다. 사당패는 조선시대에는 천대받은 예인집단이다.

조선말인 1867년 진주목사를 지낸 정현석(鄭顯奭)의 저서 ‘교방가요’에 보면 “雜徭(잡요) 山打令(산타령) 遊令(유령) 놀량”을 분류하고 이어 “이것들은 걸사나 사당이 부르는 것이다. 모두 노랫말이 음란하고 비루하다. 지금 거리의 아이들과 종 녀석들까지도 이 노래를 잘 따라 부를 줄 안다”(성무경 역주 『교방가요』)고 하고 있다.

즉 ‘놀량’은 당시의 기록에 ‘노랫말이 음란하고 비루하다’고 했고 그 담당층이 걸사나 사당인데, 이창배의 해석대로 ‘육구함도’와 같은 어려운 한문을 사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육구함도’가 아니라 ‘조선잡가집’ 계열의 가사 ‘육구암사(六九庵寺)’가 원본이라면 전체적으로 해석이 자연스러워진다. 즉 육구암사는 절 이름이고 대사는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 ‘뭉구리’는 스님(중)을 놀림조로 부르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앞뒤가 맞아 떨어진다. 서도놀량 가사에서 “어린 낭자 고운 태도 눈에 암암하고 귀에 쟁쟁, 비나이다 비나이다 님 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삼월이라 육구암사 대사뭉구리 얼씨구나 절씨구나”로 읽으면 연결이 자연스럽다. “육구암사 대사뭉구리 얼씨구나 절씨구나”는 ‘대사’와 ‘뭉구리’의 결합과 ‘얼씨구나 절씨구나’가 가지는 (성행위까지 암시하는) 남녀의 어울림에 대한 포괄적인 표현으로 인해 해학과 풍자의 구절이 된다. 때문에 이 구절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실제 공연될 때는 청중 쪽에서 웃음이 한바탕 터지는 바로 그러한 대목인 것이다. 때문에 점잖은 사대부였던 정현석이 ‘교방가요’에서 ‘산타령’을 ‘음란하고 비루하다’고 했을 가능성이 많다. 현행가사의 ‘육구함도’는 원래 육구암 혹은 육부암을 나타내는 절 이름이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렇다면 ‘육구암’,‘육부암’ ‘육구암사’가 왜 ‘육구함도’로 변했을까?

가)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사 법당뒤 칠성단에

나)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뒤 칠성단을

가)와 나) 중에서 원래의 가사는 나)이다. 그런데 가)로도 많이 부른다. ‘팔만구암자’ 즉 금강산에 암자가 많다는 뜻이 ‘팔만구암사’라는 얼토당토않게 절 이름으로 변한 것이다.

경기 놀량의 ‘육구함도 대사중로’도 이런 식으로 와음이 진행되어 전혀 엉뚱한 말이 된 것인데 여기에 진지하게 六衢咸道(육구함도)라는 한자음을 집어넣고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풀이하였고(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 그의 제자인 황용주도 ‘한국경서도창악대계’에서 그대로 답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필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들의 해석을 그대로 믿어왔던 것이다. 이것이 미스터리가 아니고 무엇일까.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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