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

경기민요 중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고 많이 불리고 있는 노래는 ‘노랫가락’과 ‘창부타령’일 것이다. ‘노랫가락’과 ‘창부타령’ 모두 원래 무가(巫歌)에서 온 것으로 속화된 민요라고 할 수 있다.

‘창부(倡夫)’란 무당의 남편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뜻하는 ‘광대신’을 가리킨다. 이 광대신은 무당이 위하는 광대의 혼령인데, 광대신인 창부를 불러 재수가 있게 해달라고 비는 굿을 ‘창부굿’이라 한다. ‘창부타령’은 바로 이러한 굿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굿판에서의 ‘창부타령’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떤 창부가 올라왔나 어떤 창부가 올라왔나

안산광대에 밖산창부 수문시위 너털이요

전라도하고 남원창부 경상도라 떼광대씨

소년 출신에 재인광대 한양 경성을 올라올 때

쳐다보면 만학천종 내려다보면 백사지땅

건너다보면 기암절벽 산은 첩첩 천봉이요

수는 잔잔 직계수라 논틀밭틀을 건너올 때

나무도 찍어서 다리 놓고 돌도 굴러서 구렁 메고

한양경성을 올라와서 0씨 가중에 들어왔네

이왕지사 왔던 길에 일년 홍수나 막고 가자

정월 한달에 드는 홍수 이월 계춘에 막아주고

……

요즘 부르고 있는 ‘창부타령’의 가사는 조사된 것만 해도 100여 가지가 넘는다. 즉 가락은 무가에서 왔지만, 그 가사는 단가, 잡가, 시조, 가사 등에서 전이되어 오기도 하고, 개인이 창작하기도 하여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창부타령’이 무가에서 독립하여 하나의 노래로 정착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로 보인다. 문헌적으로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잡가집에는 ‘창부타령’의 가사가 전혀 보이지 않다가 1958년 간행된 ‘대증보 무쌍유행신구 잡가’라는 책에 비로소 ‘창부타령’과 ‘신창부타령’의 가사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 가사는 요즘에도 불리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노래가 먼저 유행하고 다음에 가사집에 실리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에 1950년대에 이미 광범위하게 ‘창부타령’이 불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시작은 그 이전, 즉 일제강점기 정도로 보아야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녹음된 ‘창부타령’을 살펴보면 확인될 사항이기도 하다. 때문에 ‘창부타령’은 가락은 오래되었지만 현재의 형태로 가다듬어진 것은 100년도 안 되는 비교적 젊은 노래라 할 수 있다.

▲ 경기민요 중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고 많이 불리고 있는 노래중 하나가 ‘창부타령’이다. 사진은 설날맞이 특별공연 '이춘희 경기소리'에서 경기소리 프로젝트그룹'나비'가 여인별곡'사랑과 이별의 창부타령'을 들려주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필자가 2011년 6월 ‘창악집성’이란 책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9월경에 KBS ‘국악한마당’의 담당 작가라는 분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창부타령’의 가사 중에‘ 하야구구’라는 것이 나오는데 도대체 이것이 무슨 뜻이냐는 것이었다. ‘하야구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하야귀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한자로 풀어 ‘하야귀귀(何也歸歸)’의 뜻이 아닌가, 즉‘ 어찌 돌아갈 것인가’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는데 속 시원히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야구구’가 들어간 ‘창부타령’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연히 길을 갈 적에 이상한 새가 울음을 운다

무슨 새가 울랴마는 적벽화전(赤壁火戰)의 비운(悲運)이라

하야구구 진토(塵土)를 보고 설리 통곡 우는 모양

사람의 심리로서야 참아 진정 못 보겠네

포연탄우(砲煙彈雨) 모진 광풍(狂風)에 천하장사 영웅

호걸이 비명횡사가 몇몇 일러냐

일후에 그 원혼들이 와석종신(臥席終身) 못 한 이 한(限)을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 하느냐

이 가사는 판소리 ‘적벽가’에서 온 것이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사가 오나라와 유비 연합군에 화공으로 대패한 다음 거의 몰살을 당하고 조조가 남은 병사와 함께 도망가다가 신세 한탄을 하는 노래이다. 이 가사의 내용만 보면, “도망가는데 이상한 새가 운다, 그 소리를 들어보니 적벽화전에서 패배하여 죽은 병사들의 원한이 실려 슬피 우는 것 같다. 전쟁터에서 비명횡사한 장졸이 얼마나 많으냐, 새 울음소리는 그 원혼들이 편안히 누워서 죽지 못한 한(限)을 호소하는 것 같다”로 해석이 가능하다.

‘적벽화전’, ‘진토’, ‘포연탄우’, ‘와석종신’ 등의 한자어가 나오지만 어려울 것은 없다. 다만 문제되는 가사가 ‘하야구구’인 것이다. 아마도 이 가사의 ‘창부타령’이 전태용이 부른 것이 워낙 전설적이어서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고, 많이 부르기도 해서 그런 궁금증이 증폭된 모양이다(전태용이 부른 이 노래는 뒷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과연 ‘하야구구’의 뜻은 무엇일까? 한자 ‘하야귀귀(何也歸歸)’로 해석하여도 말은 통한다. ‘어찌 돌아갈꼬’의 뜻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쓰는 한자의 어법은 ‘시경’ 등의 고시(古詩)에서 사용한 것으로 ‘창부타령’의 연원을 생각할 때 그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하야구구’는 새가 울음을 운다고 한 것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의성어로 무슨 새인지는 모르나(이상한 새니까), ‘하야구구’하고 울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야구구 다음에 ‘진토를 보고 슬퍼 우는 모양’이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이러한 추측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즉 ‘하야구구’는 새울음 소리였던 것이다.

‘새타령’에서 의성어를 사용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하야구구’는‘ ‘하야귀귀(何也歸歸),’ 즉 어찌 돌아갈꼬의 뜻일까? 아니면 새울음 소리일까? 아니면 그 모두를 포함한 고단수의 수사법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은 ‘적벽가’에서 나올 것이지만, 불행히도 현재 어떤 ‘적벽가’의 바디에서도 ‘하야구구’가 나오는 것은 없었다. 이렇게 따지는 것이 참 고단한 작업일 것 같다고. 그렇다. 다만 노래를 즐기면 되는 것을.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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