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정치생태계가 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는 변화 혹은 전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변화의 패턴’에 대해 수없이 많은 모형을 제공하고 있는 전통고전 주역(周易)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판단했다. 이 코너를 통해 주역 읽기에 필요한 몇 가지 배경지식을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주역은 최고의 처세서다

세상에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처세서가 넘쳐난다. 주역은 자기계발서와 처세서로도 단연 으뜸이다. ‘처세술’ ‘처세의 달인’ 이라고 한다면 잔머리나 굴리고 힘있는 자에게 아부하는 기술 정도의 비속한 뉘앙스가 있다. 하지만 처세(處世)라는 원래의 뜻을 살펴보면 ‘세상에 대처한다’라는 말로 때와 장소에 맞게 적절히 행동한다는 의미가 있다.

필자가 주역을 더 일찍 이해했다면 지금보다 지난 날을 깊고 풍부하게 살아왔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주역에는 이견대인(利見大人)이란 표현이 많이 나온다. 훌륭한 멘토 혹은 스승을 만남이 이롭다는 말이다.

필자는 훌륭한 스승과의 인연이 별로 없다. 고교시절이나 대학시절 훌륭한 선생님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운동권이 된 이후로는 더욱 과거의 이런 저런 인연이 끊어졌다. 젊고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되면 자칫 오만에 빠져 스승이 필요없는 것처럼 여긴다. 사람들은 대체로 스승이나 선배 없이도 잘 살아간다. 하지만 최근들어 훌륭한 멘토나 스승이 있다면 삶이 훨씬 풍요로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스승의 복이 있었다면 훨씬 넓은 시야를 갖고 삶을 준비하였을 것이라며 지난 날을 아쉬워 한다. 당시만해도 누가 나의 스승인지를 분별하고 알아보는 눈이 없었으리라. 스승이라면 대개 나이가 많겠지만 나이가 어려도 무슨 문제랴.

학교 시절의 인연이든 직장 인연이든 혹은 우연히 맺어진 인연이든 훌륭한 선생을 만난다면 그는 큰 복을 갖는 것이리라. 한나라 고조 유방이 장량을 만나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을 만나 천하를 얻은 것처럼.

처세의 으뜸은 인연의 복을 얻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주역에 대한 공자의 이야기가 있다.

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자왈 가아수년 오십이학역 가이무대과의)

스승께서 말하시길 “나에게 몇 년이 더 보태져 오십까지 역을 익히면 큰 허물이 없을 텐데”

주역이 도대체 무슨 글이길래 동아시아의 사유를 집대성한 공자가 가죽 끈이 세 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었던가? 또 왜? 수명이 더해져 오십에 이르도록 주역을 익힐 수 있다면 허물이 없겠다고 했던가? 허물이 없는 삶(無大過)을 기대하는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주역은 최고의 처세서다.

사원은 사원다워야 하고 임원은 임원다워야 한다

허물이 없는 삶, 혹은 훌륭한 처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주역을 읽어라. 특히 리더가 되어 많은 업적을 남길 운명이 있는 사람은 주역을 읽어라. 또 웅대한 포부가 있는 사람이라면 주역을 읽어라. 과거 주역은 군자의 학문이었다.

이제 모든 신분은 폐지되었다. 종이와 컴퓨터의 발달로 주역은 모든 이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이 되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주역은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은퇴를 앞 둔 사람에게도, 임원 승진을 앞둔 회사원에게도, 막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과장급 사원에게도 주역은 최고의 처세서다.

주역의 처세에 대한 주문은 괘가 시작되는 첫번째 중천건괘(重天乾卦, 乾爲天卦라고도 한다)로부터 시작된다. 전체 국면을 설명하는 것이 괘사(卦辭)라면 하나의 국면 안에서 전개되는 여러 단계를 설명하는 것이 여섯 개의 효사(爻辭)다.

64개의 괘는 삶의 다양한 국면을 다룬다. 명예 재물 교육 기다림 이별 관찰 겸손 소유 전진 은둔 여행 가정 분열 등으로 64개의 국면을 설정했다. 각 국면들은 또 다시 여섯 개의 소국면으로 구분된다. 주역은 이를 통해 각 국면마다 다른 처신 방법과 각 단계별 고유의 어려움을 설파했다.

중천건 괘로 들어가 보자.

중천건괘는 천괘가 두 개 겹쳐서 이루어졌다. 중천건괘는 군자가 자신의 포부를 펴가는 단계를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천건괘에는 아래로부터 위로 여섯 개의 효가 있다. 이름하여 초효 이효 삼효 사효 오효 상효다. 초효 이효 삼효를 하괘(下卦)라 부르고 사효 오효 상효를 상괘(上卦)라 부른다.

하괘는 아랫 것들의 이야기이고 상괘는 윗 것들의 이야기이다. 또 하괘는 사태 진전의 전반부의 이야기라면 상괘는 사태 진전의 후반부의 이야기이다. 하괘는 사원들의 이야기라면 상괘는 임원들의 이야기이다.

중천건괘에서 초효는 잠룡(潛龍)이라 표현했다. 이런 방식으로 이효는 현룡(見龍) 삼효는 종일건건(終日乾乾) 사효는 혹약재연(惑躍在淵) 오효는 비룡(飛龍) 상효는 항룡(亢龍)으로 표현했다.

중천건괘는 건실한 용들의 이야기이다. 모두가 건실하지만 자신이 처해있는 위치는 제각기 달라 처지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후회가 있게 된다. 초효는 신입사원에 해당한다. 신입사원은 재능과 패기가 있어도 그 재능과 패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후회한다. 주역은 이 재능을 쓰지 말라고 했다. 이를 물용(勿用)이라 한다. 과욕을 부리면 바로 위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대리 과장에게 찍힌다. 다음은 이효에 대한 이야기로 과장급에 대한 설명이다. 과장은 사원들 사이에서 중심이다. 재능이 드러나도 좋다. 현룡(見龍)으로 그 재능이 세상에 드러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평사원들 사이의 중심일 뿐이다. 이 때 주역은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 했다. 자신을 이끌어 주는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했다. 이 때 대인은 직장 내 훌륭한 상사일 수도 있겠다.

이제 평사원들의 으뜸, 부장들의 이야기인 삼효에 대해 살펴보자. 주역은 종일건건(終日乾乾) 이라 했다. 종일토록 건실하게 일하고 스스로를 돌봐야 하며 저녁이 되어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회사로 가보자. 이미 실무는 과장들이 다 하고 있다. 또 중요한 정책결정은 임원급이 담당한다. 자칫하면 아무 역할이 없는 채 가시방석에 앉아 전전긍긍하는 수가 있다. 더 승진하느냐 아웃되는냐 기로에 섰다. 종일건건하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로 넘어가면 사효가 나온다. 혹약재연(惑躍在淵)이다. 간혹 뛰기도 하지만 여전 연못에 있다. 날아오르려면 장(長)이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연못에 있는 사효다. 대표이사 아래에 있는 임원들의 이야기이다. 가끔 기량을 발휘하지만 여전히 최고 결정권자는 아니다. 원래 오르락 내리락할 때이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의기소침하거나 오버하면 기회는 사라진다. 자리가 원래 그런 것이다. 사효에 해당하는 사람들 중 가장 어려운 사람은 조직의 2인자다. 궁예 밑의 왕건처럼 수십 년을 2인자로 처세할 수 있으며 힘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왕조를 연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밑의 이학수 실장 처지로 설명할 수 있겠다.

오효의 이야기이다. 제왕의 자리이고 장의 자리이다. 나르는 용으로 표현했다. 비룡(飛龍)이다. 주역은 다양한 방식으로 장(長)을 설명한다. 씩씩한 장과 부드러운 장, 씩씩한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장과 부드러운 부하에게 둘러싸여 있는 장 등 수 없이 많은 상황을 언급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또 다시 훌륭한 선생이 필요한 지점이다.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 즉 리더의 자격이자 환경에 대한 다양한 경우를 설명한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다

마지막으로 물러날 때의 이야기이다. 주역은 항룡(亢龍)으로 표현했다. 고문이나 뒷 방에 앉아 있는 명예회장의 이야기이다. 롯데의 신격호 회장이 ‘주역 상효의 교훈’ 물러나는 자의 덕목을 알았더라면 저런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죽어야 끝이 난다. 이를 사이후이(死而後已)라고 했던가? 임종(臨終) 즉 마침에 임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주역의 64괘 중 상효는 다양한 국면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 자리에서의 처세이면서 종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제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또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다. 각 단계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모든 사람들의 숙제이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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