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 남경우 대기자

새로운 정치생태계가 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는 변화 혹은 전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변화의 패턴’에 대해 수없이 많은 모형을 제공하고 있는 전통고전 주역(周易)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판단했다. 이 코너를 통해 주역 읽기에 필요한 몇 가지 배경지식을 소개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주역의 정신은 ‘중용(中庸)’이다

주역의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중용의 개념으로 사물과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주역의 괘를 해석하는 중심 개념이 중용이라고? 필자의 이 말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 하다.

나에게 주역 공부에 대해 많은 조언을 주었던 조 아무개 교수의 일화다.

조 교수는 20여년 전 오랫 동안 주역을 공부하고 있었던 목사에게 “주역을 읽는데 반드시 필요한 글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을 꼭 보라”고. 조 교수는 ‘주역을 공부하는데 뭔 ’중용‘인가’하고 의아해 하며, 그 목사가 ‘엉뚱하게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조언이라고 했나’하고 의심했단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주역을 깊게 이해하게 되면서 그 분의 조언이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 주역에는 중용이 정신이 면면히 흐른다. 그렇다면 중용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주역에 중용이 어떻게 녹아있는가?

중용이라 할 때,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글 ‘중용’에서 나오는 단어 중 중(中)이나 시중(時中) 혹은 적중(的中)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 하다. 시의 적절하게 어떤 상황에 꼭 맞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지나치지 않고(無過) 미치지 못하는(不及)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 주역 텍스트에 끝없이 반복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한 것보다 차라리 못 미치는 게 낫다는 표현이다. 주역은 과하면 흉이 되고 못 미치면 그래도 허물은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과한(오버하는) 사람들이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소인(小人)의 사회다.

하늘이 낸 사람, 예금주 할머니

친구 한명이 강남의 모 은행 지점장을 했다. 그에게 억대 이상의 예금자들의 행태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물론 모두 익명을 전제로 했다. 우선 단계별 예금자 수를 이야기 해 주었다. 100억원 이상 예금자가 한 명이었고, 50억원~99억원, 20억원~39억원 이런 단계로 예금자 수가 많아졌다. 현금으로 10억원 이상이면 모두 엄청난 부자다. 난 친구에게 10억원 이상 부자 중 가장 기억 남는 이가 누구이며, 왜 기억이 나는지를 물었다.

친구의 이야기가 기상천외다. 그 분은 유일한 100억원대 이상 예금자로 70대 할머니인데 ‘하늘이 낸 분’이라고 말했다. 난 친구가 그러한 표현을 한 것에 놀랐다. 그 친구 성향 상 그런 표현은 지극히 예외적 것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분석해야 하고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를 매일 읽으며 분석적이고 이성적 사고로 무장한 친구였다. 왜 ‘하늘이 낸 분’인가 또 ‘어떻게 돈을 벌게 되었나’하고 물었다.

땅부자집으로 시집을 간 맏며느리가 적격인 할머니였다. 지점에는 큰 예금주들이 들락거린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는 선물도 가지고 온다. 대개는 으시대고 거들먹거린다고 한다. 헌데 이 할머니만은 전혀 달랐다. 언제나 행원들에게 조심스럽게 인사했고 선물도 어쩌면 받는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것을 준비하는지 놀랄만하다고 했다. 그것도 한 두 번에 그친 게 아니라 수년 동안 늘 한결 같았다.

행원들을 응대하는 것에만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판단한다 던지 가족사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에도 늘 시의적절했다. 나는 당시 이 할머니야말로 시중(時中) 즉 때와 장소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는 것에 도가 튼 분으로 느껴졌다.

우병우 진경준 케이스

주역 55번괘(雷火豊) 단전(彖傳)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일중즉측 월영즉식 천지영허 여시소식 이황어인호 황어귀신호(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중천에 있는 해도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 천지의 차고 비움도, 흥망성쇠도 때에 따른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에게서랴. 또 귀신에게서랴.”

즉 해와 달, 하늘과 땅도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서는데 사람이나 귀신은 말해서 무엇하랴. 즉 사람이 나아갈 때 지나치거나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못하면 과해서 흉하다. 주역은 늘 오버하는 것을 경계한다.

▲ 약관을 갖 넘긴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 소년급제한 진경준 검사장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권력을 과하게 탐한 죗값을 치루게 됐다. /뉴시스 자료사진

최근 한국사회를 시체말로 멘붕에 빠뜨리고 있는 진경준 검사장이나 우병우 민정수석 등도 대표적으로 과한 케이스 중 하나일 것이다. 서울법대를 나와 일찌감치 사법고시에 합격, 소년급제한 뒤 갑(甲)중 갑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면 세상 무서운 것 모른다. 이러면 공정함을 다뤄야 하는 자신의 처지도 망각한 채 공적 지위를 남용하여 사익을 극대화하게 된다. 말로가 흉하다.

주역은 풍요로움, 완성, 혁명, 물러남, 위태로움 등 수 없이 많은 주제를 다룬다. 이런 주제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려낸다. 특히 오버할 때 빚어내는 위험을 수없이 경고한다. 심지어 ‘겸손함’에도 과도할 경우 비굴함으로 떨어질 것을 경계한다.

주역은 군자가 중용을 취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에 합당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공자는 중용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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