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비단뱀. 주로 흰색 검은색이 엇갈린 무늬의 길이 4~-5m 정도되는 큰뱀이다. 영어로는 파이튼(PYTHON)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물무늬비단뱀. 흑백의 무늬가 돌아가면서 그물코같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끔 ‘동물의 세계’에서나 봤던 무시무시한 비단뱀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1시간거리 구찌 지역의 농장에서 구경했다. 그것도 새끼부터 어미까지 1만 마리를 철망 안에서 키우는 농장이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7월초 태국 방콕에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호찌민시에 잠깐 들렀다. 호찌민시에서 10여년 살고 있는 후배와 식사 중에 비단뱀농장을 구경하자고 했다.

이미 집사람과 수차례 호찌민을 다녀와 이번엔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메콩 하류의 델타지역에 파인애플농장도 다녀왔고 6시간 걸쳐 산중 휴양도시인 달랏초대소에서도 쉰 적이 있다. 이번엔 후배가 법인회원권으로 예약해준 롱탄CC에서 골프도 치고 호텔옆 벤탄시장에서 싼 쇼핑정도 할 생각이었다.

근데 구찌지역 이름이 귀에 익었다. 20년 전에 갈때는 3~4시간이 걸렸는 데 하루 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단다.

그 지역은 베트콩의 사이공지역 지하사령부 구찌터널이 있는 곳이다. 구찌터널과 비단뱀. 원가 땅속에서 맺어진 인연인가? 지하 총길이 200km에 달하는 지하사령부인데 들어가는 입구는 깡마른 베트남인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었다.

미군이 고엽제를 뿌리고 네이팜탄을 퍼붓고 군사견을 풀었지만 결국 입구를 찾지 못했다.

74년 월맹 정규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사이공에 들어오기 전에 이곳 베트콩사령부가 먼저 사이공을 점령했다.

호찌민 호텔로 차를 갖고 온 주인은 놀랍게도 30대의 여성이었다. 베트남인 치고는 꽤 영어를 잘한다. 집사람과 후배 나, 셋이 그녀가 모는 차를 타고 아스팔트길을 지나 시골길로 들어섰다.

▲ 구찌터널 입구/구글 이미지 캡처

프랑스 등 유럽에서 본 풀밭이 펼쳐있는 별장 같은 집들이 이어졌다. 건너편에는 많이 보던 베트남 무논이 이어졌다. 차에서 내려 주인 딸인 그녀를 따라 조심스레 대문에 들어서니 중국풍의 저택이 보였다. 양친이 반갑게 맞으며 차를 내왔다.

놀랍다. 우리나라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비단구렁이가 1만 마리라니. 몇 백평 크기에 어떤 상태로 기를까 궁금했는데 집사람은 벌써부터 얼굴이 질린다.

농장관리 책임자인 아들이 돼지막사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느끼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른다. 들어가 보니 4~5m인줄만 알았던 비단뱀의 1~2m정도에 불과한 새끼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한국뱀보다 조금 큰놈이라 안심했다. 모든 새끼들은 다 귀엽다. 아가리를 벌리고 쥐나 치킨을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1~2m의 새끼부터 5~6m의 어미까지 6개의 막사에 나뉘어 크기에 맞게 철망에 들어있다.

비단구렁이는 7종이 있으며, 인도에서 중국 남부 및 말레이 제도에 걸쳐 분포하는 인도비단구렁이(Python molurus)와 태국에서 말레이 제도를 거쳐 필리핀에 걸쳐 분포하는 그물비단구렁이(P. reticulatus)가 유명하다. 이들 종류는 물가 나무 위에서 살면서 나무 밑을 지나는 쥐나 새 등을 몸으로 감아 질식시킨 다음 잡아먹는다.

크기가 최대 10m에 이르는 그물비단구렁이는 사람을 잡아먹은 기록도 있다. 개, 사슴, 돼지를 먹기도 한다. 뱀이 성장하면서 먹이도 커진다. 작은 뱀들은 쥐를 좋아하지만, 3~4m가 되면 곧 천산갑, 고슴도치, 원숭이, 멧돼지, 사슴 등을 잡아먹는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 삼킨 보아뱀도 비단뱀의 이종이란다. 구찌농장에서도 새끼들에게는 전국에서 수거해온 쥐와 닭새끼, 애저 등을 먹이고 어느 정도 크면 닭, 돼지고기 등을 혼합한 소시지를 먹인다. 위턱에 작은 이빨이 있는데 독이 없어 먹이를 물고 넘기는 기능만 한다.

태어날 때는 46~89cm이고 성체가 되면 3.7~4.6m에 이른다. 9~3월 사이에 번식을 한다. 햇볕이 줄고 기온이 떨어지면 번식을 서두른다.

번식기에는 암수 모두 먹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전에 많이 먹어 체중을 늘린다. 암컷은 2~4년이 지나 3.3m가 되어야 번식을 한다. 한배에 10∼100개의 알을 낳고, 암컷이 알을 감아서 보호하는데 88~90도로 유지되어야 하니 뱀이 정온동물임에도 이때는 신기하게 체온이 높아진단다.

이 구찌농장에서는 전기로 열을 올려주어 알을 부화시켜 이를 키운다. 비단뱀은 간혹 먹이를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이런 사냥 방법은 에너지 소비가 많아 잘 하지 않는다. 다른 파충류처럼 대사 속도가 느려 오랫동안 먹이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어느 동물원에서는 23개월 동안이나 먹지 않고 살았다는 기록도 있다.

▲ 비단뱀과 악어의 사투/영국 BBC 웹사이트 캡처

그물무늬왕뱀은 안개가 낀 열대우림 지역의 작은 강이나 연못 근처에서 산단다. 비단뱀은 몸체가 커서 공격적으로 보인다. 1930년대 기록영화를 보면 비단뱀과 벵갈호랑이, 표범, 악어 등과의 사투장면이 나와 이 뱀이 무시무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격을 받을 때 살아 남기위한 싸움인 것이다.

야생에서 포획한 왕뱀을 사육하다 보면 때로 사육사를 물려고 한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구찌농장같이 부화해 키우는 뱀은 아주 순하다. 나도 큰 뱀을 만져보고 시원한 피부감을 확인했다.

비단뱀은 세계에서 가장 긴 뱀이지만 아마존의 아나콘다가 더 무겁다. 초록아나콘다는 같은 길이의 비단뱀 무게의 두 배나 된다. 아나콘다도 독이 없어 아마존 원시부족이 이를 한 마리 잡으면 온 마을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베트남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에는 5500곳의 뱀농장이 있다. 구찌농장이 베트남에서는 가장 크다. 뱀의 껍질이나 고기를 얻기 위해서다.

구찌농장에서는 이 껍질을 중국으로 수출한다. 껍질은 우리나라 전통악기인 아쟁같이 생긴 중국 현악기의 울림통으로 쓰이고 일본의 샤미센의 울림통을 만든다. 지금은 구찌 페라가모등 세계적 명품브랜드 핸드백의 재료다.

그간 질긴 악어가죽을 많이 썼지만 가벼운 비단뱀 가죽이 핸드백용으로 인기가 있단다. 육식이라 배에서 나오는 기름은 화장품용으로 개발하고 있다.

농장에서 나오는 길에 베트남인과 비단뱀이 생리가 닮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땅굴속에서 생활하며 미국의 침략을 물리친 구찌터널과 23달 동안 먹지 않고도 버티는 비단뱀.

라오스와 베트남 국경지역인 디엔비엔푸의 프랑스군을 54년 보구엔 지압장군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 무장해제시켜 항복받은 끈질김. 먼저 공격을 않지만 공격하면 되치는 의지가 닮았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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