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 남경우 대기자

새로운 정치생태계가 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는 변화 혹은 전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변화의 패턴’에 대해 수없이 많은 모형을 제공하고 있는 전통고전 주역(周易)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판단했다. 이 코너를 통해 주역 읽기에 필요한 몇 가지 배경지식을 소개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주역에 깊이 들어가려면 괘상을 이해하라

주역을 읽노라면 우선 부호가 나온다. 양을 나타내는 양효(—) 와 음을 나타내는 음효(– –)다. 이들 음양의 부호가 세 개씩 거듭하면 여덟 개의 소성괘(小成卦)가 만들어진다.

건(乾) 태(兑)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이 그것이다. 이를 괘의 이름 즉 괘명(卦名)이라 부른다. 이들은 각각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을 상징한다. 가령 간(艮)괘는 산(山)을 상징한다.

▲ 8괘의 괘명과 뜻

간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이 드러내는 다양한 이미지를 관찰하고 연상해야 한다. 산은 무엇인가? 우선 높다. 높은 산이 있으면 막혀있어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야 한다. 이런 상(象)이 중첩되면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 상이 된다. 즉 소성괘가 중첩되어 대성괘가 만들어진다.

간괘와 간괘가 만나면 산과 산이 겹쳐져서 중산간(重山艮)괘가 된다. 그러므로 괘를 풀이하려면 산이 뿜어내는 다양한 속성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예언하다

이토 히로부미(伊籐博文)의 죽음을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본의 역술가 다카시마 가에몬(高島嘉右衛門 たかしま かえもん 1832~1914)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사돈이자 멘토였다. 이토는 1909년 10월 26일 당시 일본 추밀원 원장으로 러시아 관할 하에 있었던 하얼빈을 방문한다.

만주 철도 부설권 등 만주문제와 한반도 침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초프(V. N. Kokovtsev)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토가 하얼빈을 방문하기 전 그의 멘토였던 다카시마는 이토에게 하얼빈 방문을 만류한다. 다카시마가 뽑았던 괘가 중산간(重山艮)괘였기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를 무시하고 하얼빈을 방문한다. 그는 거기서 조선의 청년 독립운동가 안중근(安重根 1879~1910)에 의해 저격당해 죽음을 맞는다. 이토가 안중근에게 저격당한 후 남의 일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는 일본 역학계의 호사가들 사이에서 온갖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괘 이름인 중산간(重山艮)의 중간(重艮)과 안중근의 중근(重根)이 한자가 유사했기 때문이다.

▲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암살됐다. 하얼빈으로 가기 전 이토는 자신의 멘토이자 일본의 역성이라 불리는 다카시마 가에몬으로부터 좋지 못한 주역점을 받아 가질 말 것을 권유받았으나 강행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다까시마는 중산간괘를 보고 이토의 하얼빈행을 왜 만류했을까. 앞서 주역은 먼저 상(象)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간괘는 산을 의미한다. 산이란 높고 넘을 수 없으며 그래서 멈춘다는 의미를 가졌다. 멈출 지(止)다. 즉 정지(停止)하는 것이다.

사업이 정지하거나 생명이 정지하거나 관계가 정지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는 목숨이 멈춘 셈이다. 첩첩산중 즉 산 너머 산 속으로 간 것이다. 중산간괘의 일반적 의미를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이 괘에서 죽음을 읽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역을 했다고 해서 누구나 이러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은퇴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다까시마 만이 갖고 있는 상황을 읽는 눈과 신묘한 통찰력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일본 역학의 스타 다카시마

다까시마는 일본의 역성(易聖) 즉 역학의 성인으로 불린다. 그는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기 30여년전 일본의 에도(江戶, 일본 도쿄의 옛 이름)에서 건축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업자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외국인과 금 거래를 금지했던 당시의 국법을 어겨 7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주역을 깊게 공부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주역풀이와 괘풀이를 모은 역술서 고도역단(高島易斷)을 발간했다. 이 책은 중국의 원세개와 이홍장에게도 전해졌다. 메이지 유신의 3걸 중 두 사람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의 죽음도 예견했다. 자신의 죽음 또한 예견하고 예견대로 죽었다고 한다.

조선인으로 한 때 일본에 망명했던 김옥균과 박영효가 그 문하에서 주역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이토 히로부미와 다카시마와 안중근, 다카시마와 김옥균과 박영효, 실타래처럼 이어진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