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조선은 개국 초 명나라의 간섭과 주변국의 위협으로부터 국체를 보전하고자 사대교린을 국시로 삼았다.

▲ 김선태 편집위원

그런데 왕권이 뿌리내리지 못한 틈을 타 사대부와 권신들은 개국의 명분이 되었던 신분제 혁파와 토지개혁을 무위로 돌리려 했다. 그들이 근거로 내세운 핵심 논리가 주자학을 근간으로 한 친명 사대주의였다.

“명나라에 부끄러우니 한글은 아니 되옵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 일파의 소동은 조선 초 권신들의 사대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당시 상황은 세종실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먼저 실록 25년(1443) 12월 30일 자는 “이달에 임금(세종)이 직접 언문 28자를 만들었다.” 하여 훈민정음의 창제를 알린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뜻은 백성을 문맹에서 해방시키고자 함이었다. 실록에 “언문으로 직접 쓰고 읽어서 듣게 한다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밝힌 이유다.

그러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 일곱 명이 연명하여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의 핵심 논리는 중화 사대주의로, 최만리 등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조정은 개국 이래 지성으로 사대해서 중국의 제도를 높여왔는데 (중략) 언문을 만드신 일이 (중략) 어찌 사대 모화(慕華)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조선왕조실록 3』, 224쪽)

그런데 최만리 등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고자 무리를 범했다. 우리말에 이미 이두가 있어서 그것으로 한문에 운서하면, 즉 발음되는 소리에 따라 적는다면 백성들이 해득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두문이 한문만큼이나 난해하여 백성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세종은 친히 최만리 등에게 “그렇다면 너희들이 운서를 아는가?” 하고 물었다. 나아가 중국어의 발음 규칙(사성칠음)을 아는지, 자음과 모음은 몇 개로 나뉘는지 따져 물었고, 최만리 등이 미처 답하지 못했다(위 책 229쪽). 세종은 임금을 능멸한 죄를 물어 최만리 등을 즉시 의금부에 하옥시키고 서슬 푸르게 한글 반포와 보급을 강행했다.

조선 백성들이 중화 사대주의로 인해 두고두고 고통을 받아야 했다면 오늘 우리는 친일 매국 세력으로 인해 독립 이후 오늘까지 고통 받고 있다. 해방 공간에서 일제 잔재 청산의 사명을 안고 반민특위가 출범했으나 친일 세력들의 폭력적 준동으로 좌초되고 말았다.

▲ 『조선왕조실록 3 세종 문종 단종』 = 이덕일, 다산초당, 2019년 01월 02일.

이후 일제 잔재는 권력을 중심으로 사회 곳곳에 또아리 틀었고, 시시때때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했다. 일례로 지난 3월 14일 국회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가 내뱉은 말은 노골적인 친일매국의 표방이라는 점에서 저 옛날 최만리 일파의 소동만큼이나 상징적이다.

“우리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됐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발언은 국가보훈처가 기존 독립유공 서훈자들을 전수조사하여 친일 행위자를 가려내겠다 한 데 반발하여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날 연설이 현 정부, 나아가 진보 진영 전체를 친북 좌파로 규정한 점에 비추어 보면, 저 발언은 당사자의 친일관을 당당하게 밝힌 데 지나지 않는다.

혹자는 이 발언이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치밀한 일제 복귀 시도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발언 당사자의 사고수준으로 볼 때 이는 성립하기 어렵다. 가령 이 발언으로 역풍을 맞은 나 의원이 말을 비틀어 “나는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를 말한 것”이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반문특위는 현 정부를 심판하는 특위다. 그걸 현 정부가 만들 이유는 없고 굳이 만들자면 나 의원이 속한 자유한국당이 나설 일이다. 이를 애초의 반민특위 발언과 연결하면 나 의원은 “자신들이 만든 반문특위로 인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꼴”이 된다. 라틴어 라비린토스(Labyrinthus)는 미로를 뜻하는데 나 의원은 스스로 말의 미로를 만들어 헤매는 셈이다. 대체 이 정도 팔푼이 같은 논리에서 무슨 대단한 치밀함을 기대할 것인가.

주어 기피로 정점을 찍은 아부의 어법

그럼에도 이 일련의 발언에서는 어떤 민족반역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하루아침에 완성된 건 아니니, 진작부터 그런 전조가 있었다. 게다가 각고의 노력을 통해 개발해 낸 어떤 전매특허 어법도 있다.

그는 판사 출신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2004년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당선자 연찬회에서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는데 딱 거기까지였던 듯하다.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일본 자위대 창립 50돌 행사가 열렸는데 거기 초대되어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논란이 일자 당사자는 “제가 국회의원 되자마자였는데 일본 대사관에서 하는 행사라서 가야된다고 해서 갔는데 (...)”라고 변명했다. 배후가 한나라당인지 친일세력 후원회인지는 모르나 자기는 판단력이 없어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사실 이는 미처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재가 일개 국회의원의 후안무치한 작태로 드러난 경우다. 비교하자면 프랑스는 독일로부터 해방된 뒤 나치 부역자를 철저히 색출, 6천763명을 사형하고 2만6천529명을 징역형에 처했으며 특히 정치인 언론인 작가들을 가중 처벌했다. 이를 주도한 샤를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 지라도 또다시 민족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매국노 처단에 관용이 없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각설하고 권력 앞에 무한 충성하는 그의 해바라기형 무뇌주의는 여러 대목에서 빛을 발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그 와중에 이 후보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고 말한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이 때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있던 나 의원이 호위무사로 나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동영상 발언에) 주어는 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명박 후보가 설립했다고 단정 짓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아부와 사대를 위한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주어 기피 어법이 탄생했다.

그런 와중에도 본연의 친일 본색은 숨기지 않아 잊을 때가 되면 한 번씩 존재감을 뿜뿜 뽐냈다. 2015년 말 박근혜 정부가 당사자들을 도외시한 채 한일간 밀실 회담 끝에 일본으로부터 재단 설립 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위안부 협상을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타결 지었다고 발표했다.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역시나 나 의원이 나서 “다소 아쉬운 점은 있지만 외교적으로는 그래도 잘한 협상”이라고 거들었다. 그런저런 공을 인정받은 것인지 승승장구한 그는 어느 덧 4선 의원에 올랐다.

이후에도 그의 미색 찬연한 왜색 언행에는 거침이 없다. 2018년에는 자유한국당 정당개혁위원회를 이끌고 국회에서 버젓이 일본 자민당의 성공 사례를 연구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른바 ‘일본 자민당의 정권복귀와 아베 총리 중심의 자민당 우위체제 구축 공개 간담회’로, 제목부터 가관이다.

2019년 1월에 대법원이 일본의 강제징용 기업에 대한 압류 신청을 승인하는 판결을 내리자, 아니나 다를까 이를 현 정부의 입장으로 둔갑시켜 “문재인 정부가 신년사 등을 통해 불필요하게 일본 정부를 자극한 게 아닌지 의문”이라며 항변했다. 이쯤 되니 네티즌들이 “역시 일본의 딸”이라 개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그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가령 스스로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고서, 당내 경선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정말 이렇게 한평생을 감옥에 가실 정도의 잘못을 하셨느냐”며 눈물로 호소, 그 공을 인정받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것이다.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재판 거래와 관련하여 검찰에 소환되자 이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부끄럽고 참담한 사건”이라 주장했는데, 그럼에도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시류에 따라 말을 바꾸는 표리부동이야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두어 개 들어보면 이렇다. 2016년 10월 박근혜 정권 당시 그의 지론은 “대통령 4년 중임제가 합리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서자 “4년 중임제는 장기집권의 독재 우려가 있다”는 말로 이를 뒤집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원내대표 자격으로 2018년 12월, 여야 5당 원내대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합의했는데, 3개월 뒤 이를 뒤집어 “대통령제 국가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짝이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모양이자 사실상 의회 무력화 시도”라고 목청을 높였다.

▲ 『격언집』 = 에라스무스 저, 김남우 역, 부북스(BooBooks), 2014년 11월 07일.

근대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격언집』에 “아름다운 영혼에 정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했다. 학식을 갖추었으며 정의로운 사람일수록 정치 활동에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그럴진대 아름다움을 넘어 순수하고 투명하기가 백치 아니 백짓장 같이 타블라 라싸한 뇌를 지닌 이가 정치에 끼여 드는 일은 대체 얼마나 위험한가.

삶이 말로에 이르면 반드시 회한이 따르게 마련이니 에라스무스가 말한 ‘백조의 노래’와 ‘세이렌의 노래’로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다 같은 임종의 소리이지만 전자는 후세에 남을 유훈이고 후자는 비극적인 최후를 예고한다. 지금 베누스 여신의 허리띠를 지녀 만인을 유혹한들 무엇 하랴. 나댐이 지나치면 마침내 화를 입는 법이니 비록 기대는 않을지언정 이로써 경고를 삼고 싶다. 그러나, 이 말에 주어는 없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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