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5월 말 버럭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995년 수교 이후 21년 만에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의 숙원이었던 무기금수조치를 해제한 것과 함께 베트남의 주변국 외교가 활발하다.

그간 남지나해(남중국해)의 남사군도와 동지나해의 서사군도등 양국의 해양영토 문제로 중국과 대립하던 베트남은 미국이 대신 해양영토 문제를 떠맡아 중국을 압박하자 아예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해 대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

베트남은 무기금수해제의 대가로 국적항공사인 비엣젯이 미국의 보잉항공기 100대를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나아가 베트남전때 미국의 해군기지였던 캄라인만을 다시 미국의 항공모함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거라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과 남중국해 패권을 겨루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신경이 곤두서있다. 1961년 소련이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던 것과 같이 중국의 코앞에 미국 함대가 왔다갔다 하는 걸 봐야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베트남은 최근 국경 근처인 중국 난닝(南寧)시에서 중국과 국경관리규제에 관한 협정회의를 예정대로 열었다. 지난 5년간 진행해온 이 국경협정에서 3개항의 국경에 관한 협력사항이 공개됐다.

첫째 국경을 확실히 하기위한 협력과 교류강화 둘째, 국경지역의 안보와 질서의 유지 셋째, 무역 문화 관광 등 다양한 협력강화를 위한 환경조성 등이다. 베트남에서는 ‘동해’라 부르는 바다에서 영토분쟁을 벌이지만 중국과의 육지국경은 아주 자유롭다.

베트남에서 200㎞ 북쪽 산악지역에 베트남 최북단 하박(河北)성이 있다. 산악지역이라 이 지역 사람들은 거의 몽골족의 후예다. 3년 전에는 여름에 눈이 왔다고 해서 베트남전때 유행했던 ‘월남 스키부대’가 거짓이 아니라는 농담이 돌던 지역이다.

▲ 베트남 시위대가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난사군도에서 중국이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위대가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중국 지도부 퇴진’이란 피켓을 들고 있다.[하노이=AP/뉴시스 자료사진]

20년전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호텔이 없어 사회주의 국가의 객사인 초대소에 묵었는데 낮에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미국인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 국경까지 베트남전 공습 때 추락한 실종미군(MIA: Missing In Action)을 찾는 팀이었다.

당시 놀란 것은 베트남-중국 국경에 아무런 표시가 없는 점이었다. 국경이라면 철조망과 표시라도 있어야 하는데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산악족들은 자유롭게 양쪽을 왔다 갔다 한다.

고갯길에 작은 세관이 있고 보따리 장수들이 통행증만 들고 지나다녔다. 이곳이 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자행한 폴 포트 정권을 공격해 그 보복으로 덩샤오핑(鄧小平)이 포병을 이끌고 와서 국경전쟁을 일으켜 결국 지고 철수했던 격전지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중국-베트남 국경협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 거기보다 조금 북쪽인 중국 최남단 윈난(雲南)성의 성도 쿤밍(昆明)시에서는 제24차 중국-남아시아 무역엑스포가 있었다.

이 행사에 베트남에서는 찐딘덩 경제부총리가, 중국 측에서는 왕양 쿤밍 부시장이 국경무역진흥에 관한 회의를 개최했다. 80개국 4,000여 기업이 참가한 이 엑스포에 베트남은 4회에 이어 이번에도 메인 게스트였는데 베트남은 8,000개 부스 중 250개를 설치하면서 적극 참여했다.

지난달 23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주일간의 아시아 순방길 첫 기착지가 베트남이었다.

지난해 7월 '최고 실력자'인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이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을 공식 초청한 데 따른 답방형식을 취했다.

외신은 물론 국내 언론도 오바마 대통령이 2차대전후 60여년만에 원폭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하느냐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남중국해의 영해문제 때문에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미국 등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중국은 오바마의 첫 방문지인 베트남에서의 정상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오바마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과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이번에 16년 만에 처음으로 하노이에 와서 새로 선출된 쩐 다이꽝 국가주석(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무기수출까지 전면 허용하는 파격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은 1984년부터 베트남에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한 뒤 95년 수교 이후 점진적으로 해제해오다 이번에 완전히 푼 것이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국방력 강화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보잉항공기 100대를 팔면서 오바마의 10번째 아시아 순방중 최대실리를 챙겼다. 미국 국가수립 후 처음 패했던 베트남이 관계정상화를 위해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 방문이후 최대의 선물을 안긴 것이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동남아시아 청년 지도자 이니셔티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마친 후 인파에 둘러싸여 있다.[호찌민=AP/뉴시스 자료사진]

오바마는 사흘간 하노이와 호찌민을 방문하면서 쩐 주석은 물론 친중파로 알려진 응우옌 푸 쫑 서기장과 응우옌 쑤언 푹 총리 등과 만나 2017년 베트남이 주최하는 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APEC) 지원을 약속하는가 하면 베트남 의회에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비준을 촉구했다.

일본으로 가기 전에는 시민사회단체 인사와 기업가도 만났고 문화재도 돌아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오바마는 아시아 문화에 친숙하다.

오바마 방문 직후인 6월 12일 베트남 쩐 다이꽝 국가주석이 바로 옆 나라인 라오스의 수도 비앙티엔으로 날아가 라오스 공산당 주석인 바운항 보라칫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형제국임을 과시했다. 올해 취임한 쩐 국가주석의 첫 번째 해외방문이요 정상회담이다.

두 나라는 19세기말 프랑스가 하노이와 비앙티엔을 묶어 ‘통킹’이라는 나라를 식민국가로 만든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1954년 프랑스군이 지금 양국 국경지역인 디엔비엔푸에서 베트남의 호찌민, 지압 장군에게 패해 무조건항복하고 철수한 뒤 두 나라로 갈린 것이다.

중국이 몇 년전부터 쿤밍에서 라오스를 지나 태국 방콕까지 이어지는 아시안 하이웨이를 건설하면서 라오스, 태국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자 이에 대응한 전통적인 우호관계 확인의 제스처로 보인다. 미국 중국 양대국의 동남아시아를 둘러싼 각축에 베트남의 끈질긴 ‘역사적 DNA’가 활발해진 것이다./베트남 하노이에서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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