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올해 봄엔 서해안 생선 맛기행을 했다. 5월초부터 6월까지 충남의 아산만, 부여와 전북의 군산 그리고 충남 예산과 홍성군 접경 지역에 있는 덕산면까지 등산, 골프를 겸한 맛기행을 다녔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서해안 생선의 고장을 바꾸든지 아니면 출하시기를 조정해야할 정도로 상식과 달랐다. 온난화로 바다가 더워져 고기의 생활 환경이 바뀐 탓이 주요인인 듯하다.

▲ 남영진 상임고문

게다가 서해5도 쪽에는 남북한, 중국 어선까지 합세해 조기나 꽃게를 남획해 씨를 말린 것도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우리 어선이 이 바다에서 중국어선 2척을 나포한 사건도 ‘꽃게전쟁’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그 지역의 특산과 제철 음식을 맛보려는 것이 맛기행의 목적이다. 5월 중순 군산에 갔을 때 10여년 전까지 푸짐한 회를 먹었던 ‘쬐보선창'의 잡어맛을 기대 했다.

저녁에 들렀는데 일제 강점기때인 1920~30년대 만든 중앙로의 세관, 동양척식회사 건물 등은 잘 정비돼 보기가 좋았다.

조정래의 ’아리랑‘에 나오는 ’징게밍갱‘(김제 만경강) 평야에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었던 쬐보선창은 기능을 상실해 그 많던 횟집이 다 폐허가 되어 있었다.

횟집들이 새로 만든 군산 남쪽의 새만금지구 들어가는 입구로 옮긴 것이다. 선창에서 어선 한척이 들어와 무얼 잡았나 물으니 ’웅어‘란다. 기수어인 웅어가 아직도 잡히긴 하는 모양이다.

부산의 다대포 하단포 등지에서도 많이 잡히니 꼭 서해안 고기라 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시내의 ’어부가‘란 횟집에서 자연산 광어회로 만족했다.

서해안 봄철 어신은 꽃게와 쭈꾸미와 함께 온다. 벌써 몇 년 전부터 꽃게가 잘 잡히지 않아 어느 음식점이고 국적불명의 간장게장만 나온다.

강남 신사동의 마산골목에 가면 맛있는 꽃게 간장게장, 게장무침이 지천이다. 지난 30년 조기를 대체해온 서해먹거리가 꽃게였다.

▲ 서해 5도 지역인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당섬선착장에서 어민들이 조업을 위해 꽃게 통발을 어선에 가득 싣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봄에 잡히는 꽃게는 주로 노란 알이 통통한 암컷이고 가을 꽃게는 다리에 살이 꽉찬 수컷이었다. 강화연안부터 저 아산만, 안면도앞, 대천앞바다, 군산과 변산반도 앞까지 무진장이었다.

그런데 이 꽃게가 요즘은 현장에서도 잘 안보이니 시중에 나온 것도 수입품일 거다. 대천이나 보령에는 바다에서 바로잡아 노란 알이 통통한 것을 쪄서 그냥 먹는 데가 거의 없어졌다. 시장 가격도 비싸다.

소라껍질을 바다에 넣어두면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잡혔던 봄철 쭈꾸미도 적어져 중국산이 주로 나온다.

온양의 한 음식점에서는 '쭈꾸미 샤부샤부'대신 갱개미(간재미)무침이나 갑오징어회를 권했다. 주로 목포 앞바다에서부터 신안, 홍도 제주도까지 따뜻한 바다에서 많이 잡히던 갑오징어가 위로 올라왔다.

보통 서울사람들은 말린 울릉도 오징어가 깨끗해 보여 이를 좋아한다. 오징어회도 설악산에 놀러갔다가 대포항이나 동명항 등에서 먹기 때문에 오징어가 찬바다 고기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한치 갑오징어 오징어 쭈꾸미 바다낙지 등 연골류는 따뜻한 데서 더 많이 난다. 한치가 제주도 근해에서 많이 잡히고 일본인들이 스시로 많이 먹는 갑오징어는 서해남쪽에서 많이 잡혔다. 그런데 온양 재래시장에서 한손(2마리)에 2만5천원 정도니 많이 싸진거다.

물론 거의 멸종된 것은 조기다. 조기는 서해안 어디 음식점에서나 구이로 작은 거 한 마리씩 주는 게 전부다.

60~70년대까지 북방한계선이 그어진 서해안 최북단인 서해5도중 연평도 근해에서 조기파시가 섰다. 이젠 알밴 조기는 구경도 못한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굴비’라는 봉고 좌판 광고처럼 영광의 법성포 근처에서 말린 조기가 전부다. 이것도 중국 어선이 동지나해부터 작은 것을 잡아 우리에게 팔면 이것을 영광근처 갯벌에서 말린 것이 요즘 먹는 작은 굴비다. 20㎝ 가까운 ‘대딱’은 백화점에서 한 마리에 10만원을 호가한다.

예부터 우리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생선이 서해의 여름 조기, 동해의 겨울 명태였다. 지금은 둘 다 천연기념물 취급을 받는다.

▲ 조기구이 밥상

서울 양반집에서는 산란하러 강화쪽으로 올라온 조기를 말려 굴비로 만들어 구워 먹기도 하고 가마니안에 소금절이했다가 찌개를 끓이기도 했다.

봄 산란기에 서해연안을 오르는 조기는 노란 기름이 올라 감칠맛이었다. 중국은 주로 쪄서 먹고 일본인은 비린내가 많아 회로 먹지 않고 어묵을 만드는데 쓴다.

굴비살을 찢어 만든 죽은 노약자를 위한 영양식이었다. 조기는 머리에 돌 같은 ‘이석’(耳石)이 두 개 들어 있다 하여 한자로 ‘석수어(石首魚)’라 하고 일본에서는 ‘이시모찌’(石持)라고 한다. 지금도 작은 조기를 젓갈로 만든 ‘황석어(黃石魚)젓’에 그 편린이 남아있다.

3,4월에 회로 먹으면 그 맛이 감성돔 못지 않다는 게 볼락이다. 예로부터 봄을 알리는 물고기, ‘춘고어’(春告魚)라는 빨간 볼락이다. 검은 우럭과 비슷하지만 색깔이 붉다.

서해는 황볼락이고 동해는 좀 퍼래서 청볼락, 남해것은 참볼락이라 부른다. 이것도 구이가 제맛인데 크기가 작아야 더 맛있는 게 특징이다.

자연산 볼락은 조금 밝은 색이 나고 양식은 어둡다. 볼락은 맛이 워낙 좋아서 회, 구이, 탕, 조림 등 어떤 음식으로 요리해 먹어도 좋다.

부드러운 식감과 고유의 쫀득함을 지닌 볼락회, “타닥타닥” 익는 소리까지 맛있는 볼락구이, 머리부터 통째로 씹어 먹으면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맛에 '어두일미'를 느낄 수 있다.

우럭젓갈국이 유명하지만 볼락젓갈도 있고,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 볼락을 넣고 담근 볼락김치 등 밥도둑이 따로 없다.

이번 기행중 새로운 발견이 가야산 밑의 밴뎅이 찌개였다. 예산 덕산면읍내 ‘또순네 식당’(041-337-4314)에서 밴뎅이를 맛볼 줄이야. 집에서 기른 상추에다 어리굴젓, 강된장을 넣어 입맛을 돋운다.

밴뎅이에 고추장을 넣어 칼칼하게 끓인 찌개맛이 일품이다. 5~6월 강화도나 인천 연안부두 횟집에서 맛 볼 수 있는 밴뎅이회도 이제는 부러 찾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

우리가 즐기는 광어 도다리회가 쫄깃한 맛이라면 밴뎅이는 고기가 물러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다. 길거리에서 할머니들이 좌판에서 칼질을 해서 초장에 찍어먹는 맛이 최고지만 잘 만나기 힘들다. 작은 고기 회를 뜨는 인건비가 더 들어 돈이 안되는 거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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