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들은 7주기를 맞아 지난 5월 1일 사저를 일반에 공개했다.

퇴임 후 1년 만인 2008년 2월 준공돼 언론에서 ‘아방궁’논란이 일었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던 노대통령이 나고 자란 집을 개조한 것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

아담한 시골 부자집 형태의 한옥에는 2009년 5월23일 아침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기 전 오전 5시20분께 5분간 유서를 써서 저장한 안채의 컴퓨터와 의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침실과 연결된 안채 외에 손님을 맞던 사랑채, 회고록 자서전 집필을 위해 지인들과 토론을 하고 글을 쓰던 서재, 그리고 경호동 등이 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밀짚모자를 쓰고 손녀를 태우고 다녔던 자전거 4대와 4륜 오토바이도 전시됐다. 이 집은 5월 한달 간 주말마다 일반에 공개됐다. 권양숙 여사는 지난 연말 인근 주택으로 이사했다.

지난 23일은 노무현 대통령 7주기였다. 46년생이니 살아계시면 봉하마을서 방문객들과 함께 조촐한 70세 고희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전날 밤 노무현재단에거 주최한 봉하마을 추도제에 여야 대표들과 노사모 회원, 전국에서 모인 추모객들, 지역주민 등 6천명이 모였다니 아직 가슴속에 그를 추모하는 분들이 많은 거다. 하기야 역대 대통령 인기조사에서 한때 부동의 1위였던 박정희 대통령을 앞선 적도 있고 지금은 비슷비슷하게 나온다.

아직도 7년 전 TV뉴스에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이라는 스팟 자막의 충격이 느껴진다. 한창 검찰조사를 받으러 봉하에서 서울에 오던 버스길이 TV로 생중계되고 검찰청사로 들어가던 모습이 전국민의 잔영에 남아있을 때였다.

때문에 급작스런 투신자살은 전 국민을 경악케 했고 유서가 공개되면서 타살논란까지 일었다. 새벽에 경호원과 집을 나서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집마당에 있는 풀을 뽑는 모습이 CCTV에 잡혔고 부엉이바위에 올라가서도 경호원에게 “담배있느냐”고 물어보고 경호원이 담배 가지러간 사이 혼자 있다 뛰어내렸다는 것 등이 석연치 않다는 이유였다.

초임 국회의원으로 88년 5공청문회 때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지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을 공격하다 말을 못하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 야당 불모지였던 부산에서 국회의원, 부산시장 선거에 떨어지기를 밥먹듯 했다.

종로에서 이명박과 싸워 국회의원 떨어졌다가 선거법위반으로 이명박 의원이 사퇴한 보궐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됐다가 재선이 보장된 종로를 버리고 다시 부산에 국회의원 후보로 내려간 4전5기의 신화.

2002년 대선 때 경선에서 이인제대세론을 누르고 민주당 후보가 된 뒤 인천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경제가 좀 깽판이 나도 어떻겠습니까”로 보수신문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막말파동, 민주당 후보로 지지율이 떨어진 여름 대구의 영남대에 강연하러 가서 대학생들의 열화같은 지지에 흥분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좀 반미하면 어떻습니까?”라고 큰소리치던 그 당당함. 국민들은 노 대통령의 자살을 쉽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이 엄수된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시민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추도식을 보고 있다./뉴시스

당시 컴퓨터에 저장된 대통령의 유서가 곧바로 공개됐다.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잘못됐다고 비판받아 정말 괴로웠다. 지금 마치 나를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처럼 비춰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위작 논란이 있지만 전반부는 미리 써놓은 것 같고 후반부가 자살당일 5분간 쓴 것으로 보인다. 모 신문사 주필이 노 대통령이 언론인이 됐으면 성공했을 거라던 그의 짧은 유서에 모든 게 압축돼있다.

후에 출판된 노 대통령의 회고록 ‘운명’ 92페이지에는 그가 평소 민중가요 <어머니>란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이 노래 첫 구절 ‘사람사는 세상’을 꿈으로 삼았으며 88년 13대 첫 부산 국회의원 선거때 구호로 썼고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국민경선 때도 이 노래를 종종 불렀다고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

해방의 거리로 달려 가누나 /아아 우리의 승리 /죽어간 동지의 뜨거운 눈물 /아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려움 없이 싸워 나가리 /어머니 해맑은 웃음의 그날 위해”

그는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았던 어머니의 해맑은 웃음을 위해 대한민국을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려 노력했으나 오히려 10시간 이상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찰수사를 받자 그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고통을 받는 상황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무력감에 평소 잘 다니던 부엉이바위 위에서 온몸으로 그답게 마지막 싸움을 한 것이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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