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아버지는 인자하면서도 무섭다. 요즘은 ‘엄모자부’(嚴母慈父)라고 엄마가 무섭고 아빠가 더 자애롭다고 할 정도다.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도 있고 워킹맘을 위한 가사전담 남편도 있다. 자식들에게 ‘프레디’(friend daddy)라 불리기를 좋아하는 아빠도 많다.

▲ 남영진 논설고문

유치원생이 아빠를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자는 모습으로 그렸다던가 초등학생이 “술먹고 소리높여 떠들고 노래함”을 4자성어 ‘( )( )( )가’로 답하라는 문제에 고성방가가 아닌 (아빠인가)라고 답했다는 ‘쉰 유머’도 있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과 억척에 이어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라는 데는 실소를 머금케 된다. 맞는 말이다. 그만치 집안에서의 아빠의 역할과 이미지가 실추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이 아빠를 더 창피하고 우섭게 만든 게 ‘어버이연합’사건이다. 10년전 출범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에 걸맞게 국가정보원의 협조요청에 따라 세월호 보상반대, 일본군 위안부 폄하,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을 반대하는 관제데모를 할 때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재벌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탈북자단체 회원에게 일당을 주고 동원했다는 의혹이다.

청와대 연루설과 개신교 목사가 세운 종교재단을 통해 돈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청 앞 데모 도중 한 회원이 “박원순 이년 빨리나와”라고 했다니 얼마나 동원된 인력이었나를 짐작케 한다. 이름만 보고 여성시장으로 알았나보다.

한 일간지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전경련, 어버이연합, 학부모 단체 등 민간단체를 활용해 비난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는 국정원 보고서로 보이는 문건을 공개했다.

다른 일간지는 "국정원 직원이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선교재단 등을 만들어 친정부 활동을 하는 탈북자단체에 자금을 대는 경우가 있다"는 탈북자단체 관계자의 인터뷰를 인용했다. 국정원은 이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한 방송은 "청와대가 국정원을 통해 어버이연합에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나 박 대통령은 언론사 국장들과의 간담회때 “청와대는 관련이 없다고 보고를 받았다”고 일축했다.

▲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탈북자 알바동원' 언론보도 관련 반박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어버이’란 말은 비교적 최근에 쓰였다. 양친이나 부모라 했지 옛글에도 보이지 않는다.

조선 명종때 주세붕이 지은 시조인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곳 아니면 내몸이 없을랏다

이 덕을 갚으려하니 하늘가이 없으샷다 ”에서 한자어인 부모라 했고

조선 선조때의 정철도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이 높고 큰 은덕을 어디대어 갚사오리“로 ‘두 분’(父母)으로 적었다.

우리 어릴 때만해도 아버지는 무서운 이미지가 더 강했다. 기독교의 ‘하느님 아버지’는 항상 나의 모든 죄를 다 알고 계시기에 더 무서운 분이셨다. 용서나 자비에 앞서 죄와 벌이 연상되는 저 높이 하늘에 계신분이다.

한편 아빠는 친근하다. 딸에게는 더욱 그렇다. 영어에서 신부님을 ‘Father’라 부르고 영성생활을 지도해주는 대부를 ‘Godfather’라고 한다. 가까운 사제나 아저씨의 이미지는 자애롭다.

영화 제목에도 쓰인 ‘군사부(君師父)일체’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동격이다. 권위의 상징이자 존경의 대상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족전체를 먹여 살리는 무한 책임자다.

이어 가정의 가르침을 대신해주는 스승이 높고 가정의 집합체인 국가를 다스리는 임금이 최고권위를 지녔다. 유교권중 중국이 사람됨(仁)을 우선으로 치고 우리나라는 효(孝)를, 일본은 충(忠)을 으뜸 덕목으로 친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간 시묘(侍墓)를 하고 부모님을 닮지 못한 것을 ‘불초’(不肖)라 하여 항상 죄스럽게 여겼다.

신록의 계절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꽃등이 화려하지만 짧은 기간 흐드러진 꽃잎을 떨구자마자 새싹 풀들과 연두색 잎들이 돋아 온통 신록이다.

나이가 들면서 꽃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지만 사실 새싹과 연녹색 잎들이 더 마음에 안정을 준다. 8일은 어버이날이었다.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는 미국의 풍습이 들여와 58년부터 제정됐다. 73년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칭하는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이 존경과 권위를 가진 ‘어버이’의 말값이 거짓과 의혹과 독재적 가부장 이미지로 바뀌지 않을까 두렵다. 권력, 재벌, 언론, 관제단체가 연합한 이런 사건은 유신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사건자체보다 가정을 지키는 어버이의 명예를 훼손한 게 더 큰 죄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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