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결국 나는 1일 방송된 JTBC 드라마 ‘스카이(SKY)캐슬’의 마지막 회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치받쳐 오는 국외자 한 명 죽여 놓고 너무도 희희낙락 개과천선이지 않은가.

▲ 김미영 칼럼니스트

너무나 훈훈한 모습들을 닭살 눌러가며 봤다. 중간 광고에서 염정아가 참하고 유능한 엄마/코디의 모습으로 학습지 광고를 한다. 그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군. 이건 뭐 너무 익숙한 포르노그라피잖아.

한서진네가 이사 나가고 그 자리에 한서진보다 더 징글징글한 엄마가 이른바 반전의 이름으로 등장해 시청률을 올리겠지. 텔레비전 앞을 뜨며 이렇게 예상했다. 이 글을 쓰기 전 조금 불안하여 검색해보니 내 예상이 틀리지 않더라. 민자영이라나 뭐라나.

천진무구, 그저 불쌍하고 가녀리기만 한 희생자 모습에서 벗어난 혜나가 시청자의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드라마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동일시하며 보다가 그의 죽음에 믿을 수 없어하고 허탈함을 느낀 시청자도 있다.

혼외자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고아 아이는 다만 여리고 아름답게 눈물을 흘리며 우주나 예빈 같은 이의 호감과 연민에 기대 살아야만 하는가?

병마에 시달리는 엄마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소녀가장 혜나가 같은 학교 부잣집 아이의 수행평가를 도와주고 그 불법성을 빌미로 수고비를 좀 넉넉하게 뜯어내는 모습이 칼만 안 든 강도로 보였나?

우주의 호감과 사랑에 똑같은 사랑으로 화답하며 해롱대지 않고 예서의 질투를 사기 위해 애정을 연기하다 정작 우주 생일선물로 문화상품권을 주는 무신경을 보란 듯이 노출하는 모습이, 착한 아들 신세 망치는 팜므 파탈처럼 보였나?

▲ JTBC 금토극 ‘SKY(스카이)캐슬’/JTBC 제공

어린 예빈을 꼬드겨 자기 편으로 만들고 급기야 입주과외 선생으로 ‘거기가 어디라고 감히’ 친부의 집으로 잠입해 한서진을 겁박하고 예서를 조롱하며 아빠를 간보는 모습이 간뎅이 부은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나?

교사 같은 아담하고 안전한 꿈을 꾸지 않고 감히 서울대 의대를 가겠다고 나서고 전교 일등을 못하자 공정치 않은 경쟁이라고 분개하고 시험지 유출을 짚어내며 불공정의 대마왕 김주영 코디에게 쳐들어가 예서를 떨어뜨리라고 협박하는 모습이 무시무시한 ‘요즘 애들’ 보는 기분이었나?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혜나가 너무 유능해서 현실감이 떨어졌지만 (그 고생에도 불구하고 전교 일이등을 다투고 무려, 인기도 좋아 전교회장을 넘본다. 막강 지능, 막강 멘탈. 유전자의 힘에 환경의 힘이 더하다?) 때로는 통쾌하게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조마조마한 마음이 압도적이었으니 결국 그의 패배를 예감했기 때문이다.

▲ JTBC 금토극 ‘SKY캐슬’의 연출자 조현탁 PD가 드라마의 제작 의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뉴시스

그런 존재는 무섭도록 똘똘 뭉친 4인 혈연가족에게 그 반쪽 핏줄의 친연성으로 인해 그 어느 외부자도 가지지 못할 공격력을 가진 바이러스 같을 것이며 결국은 폭력적으로 제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협적인 도전자,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체제를 통해 생존, 성공, 인정, 승리를 추구한 혜나는 죽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찌 되었나.

예서는 우주에 대한 죄책감을 말끔히 벗고 검정고시라는 (아마도 더 유리할) 우회로를 거쳐 ‘자기 주도 학습으로’ 수능 고득점을 하여 서울대 의대를, 여의치 않으면 연대 의대라도, 이제는 엄마가 원해서도 아니고 할머니가 겁박해서도 아니고 자기가 원해서 가겠지.

가짜 하버드생은 파티 플래너로 몇 달 새 수백만원을 벌어 부모께 바치는 걸 보아하니 본토에서 좀 놀아본 이력이 무척 도움이 되어 다들 머리 나쁘게 공부만 파고들 때 시대의 새로운 화두, 마시고 춤추고 힐링하라에 최적화된 문화 아방가르로 거듭나겠지. 피라미드를 오르는 다양한 방법을 그 아빠는 늘그막에 강의하려나.

우주는, 전 같으면 국토순례와 인도 여행 정도 하겠지만 지금은 국토순례와 네팔 여행 정도 하려나? 그의 진정성은 의심할 수 없으니 부모 돈으로 편하게 다니지는 않을테고 개고생하며 다니겠지, 새엄마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여행 작가로 입신하려나? 그의 사연은 하도 예외적이라 다른 애들한테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게 흠.

남자 중학생, 초딩같은 중3은 아름다운 엄마의 가슴에 안겨 노골노골, 말랑말랑해져서 결국은 학원으로, 입시 코디의 손아귀로 안내되겠지. 사랑하는 부모 밑에 자라는 아이가 공부 스트레스도 잘 이겨낸다는 희망의 푯대를 찾은, 그러나 ‘최종 국면에서’ 비빌 언덕이 막강하니 아무래도 좀 엄살 떠는 것 같은 건물주 부모가 어느 날 벼락같이 학벌자본에 목멜 이유가 뭐야 깨닫는 날까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반에서 20등 정도 하고 학교 벗어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그 밖의 아이들은, 그 엄마들은 한서진이 광고하는 학습지로 갈아 타며 조금 위안을 얻을까?

강남의 모모한 코디는 몇 억 한다더라 반에서 꼴찌를 서울대에 보냈다더라, 풍문을 뉴스처럼 나누며 미움과 선망이 섞인 성토장을 벌이고. 그 전업주부들의 커피 브레이크에 끼지 못하는 취업엄마는 불안 초조가 섞인 죄책감에 휘둘려 아이 눈치를 보고. 영악한 아이는 엄마의 죄책감을 적당히 운용하면서 보잘 것 없는 성적을 코디 없는 탓으로 돌리고?

징글징글하다. 많이 묵었다 아이가. 비판의 탈을 쓴 강화의 이야기.

돈, 문화자본, 학벌자본 빵빵한 이들이 할 만한 학교 벗어나기/ 대학 안가기(조금 늦게 가기)를 대안인 양 보여줄 게 아니라 돈, 문화자본, 학벌자본 없이 그저 공교육에 기댈 뿐인 이들에게 희망과 신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미안하다. 한 막장 드라마에 너무 정색했다. 초반의 블랙 코미디는 볼 만 했다.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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