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회의실에서는 KBS의 유일한 복지재단인 KBS강태원복지재단(이사장 이세중)과 미국의 글로벌 사회 혁신 조직인 '아쇼카'(Ashoka 공동대표 윌리엄 카터)재단의 향후 10년간 사회복지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식이 있었다.

앞으로 양측은 프로그램 교환, 공동 행사등을 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 강태원재단 이사 자격으로 참석한 나는 ‘왜 아쇼카인가? 공공을 위한 혁신자?’ 등이 궁금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아쇼카재단이라고 해 고교시절 세계사 수업시간에 배운 인도에서 불교를 진흥시킨 왕의 이름일 거라 생각은 했다.

미국에서 성공한 인도계인들이 우리의 세종연구소 등과 같은 재단을 만들어 해외 장학사업을 할 거라고 추측했다.

이 재단은 빌 드레이튼이 1980년 미국에서 비영리 국제단체로 설립, 81년 인도에서 1호 '아쇼카 펠로우'를 선정한 이후 그간 70여개국 3,000여명을 선발했다.

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체인지 메이커)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복지사업을 추진해왔다. 수준 높은 이론가가 아니라 ‘내공’을 지닌 실천가와 행동가를 키워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체인지메이커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 한다. 재원은 기부금(개인 30%, 재단 30%, 기업 40%)으로 예산은 연 3,000만~3,500만 달러 정도란다.

우리나라에도 2013년 지부(이혜영 대표)가 설립돼 현재 7명의 펠로우가 활동하고 있다. 첫해 제주 올레길 개척자 서명숙, 시니어 펠로우로 학교폭력예방특별법 제정에 큰 기여를 한 김종기 푸른나무청예단 이사장, 아이들의 인터넷폭력방지를 위해 노력해온 인폴루션제로 대표 박유현씨 등 3명이 선정됐다.

2014년에는 청소년범죄 예방을 위해 활동해온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명성진 대표, ‘상처입은 치유자’들의 시민치유릴레이를 개발한 ‘치유공간 이웃’의 정신과 의사 정혜신 등이 지정됐다.

지난해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공동대표, 북한이탈청소년 교육기관인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까지 7명이 선정돼 지원받고 있다. 이들 일곱 분의 면면과 활동상을 보니 재단의 취지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이 자리에서 이세중 이사장은 "두 지원 재단의 만남을 통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끌어내는데 시너지 효과를 거두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이세중 이사장(오른쪽)과 윌리엄 카터 대표가 사회복지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KBS 제공

협약식을 위해 미국에서 방한한 카터 대표는 한국 측 이사들과 저녁만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이사가 “왜 이름을 아쇼카라 했느냐”고 묻자 “아쇼카는 인도의 기원전 불교왕으로 통일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이를 뉘우치고 복지, 혁신사업을 벌였다. 그의 업적을 본받아 타인을 위해 혁신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발굴해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쇼카를 찾아보았다. 그는 BC 269년(272년, 273년 등 이설) 태어나 BC 232년에 죽어 40년도 못살았는데 인도를 통일했다.

찬드라굽타가 세운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3대왕. 아버지인 2대왕 빈두사라는 16명의 부인에 101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아쇼카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나머지 100명의 형제들을 모두 죽였다.

왕위에 오른 뒤에도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500여 명의 신하들을 죽였다는 전제군주였다.

인도 남단 타밀 지역을 제외한 전인도(북위 14도 이북)에 첫 통일제국을 세우고 철저히 통치했다. 지방 4개 지역에 총독을 파견하고 5년마다 순찰관을 보내 감시했다.

각종 사회경제 개혁도 추진했다. 대규모 관개사업과 이정표를 세워 운송체계를 정비하며 도로를 만들었다.

여행자들을 위해 길 양측에 나무를 심고 우물을 파 숙박시설을 갖추었다. 정책이나 칙령, 법령 등을 새긴 석주(石柱)를 전국 30여곳에 세웠다.

높이 13~16m에 50~60톤이나 되는 이 석주의 머리를 장식한 사자나 코끼리, 소의 석상은 우람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 사자머리 석주 사진이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다.

아쇼카가 성왕(聖王)으로 추앙된 것은 호불(護佛) 정책 때문이다. 즉위 7년 만에 불교에 입문한 뒤 다음해 동남 벵골만 해안의 칼링가(Kalinga)국 정복전쟁에서 10만명을 죽이고 15만명을 포로로 잡는등 수십만 명이 질병과 고통으로 사망했다.

이 참상을 보고 아쇼카는 참회했다. 급기야 불법(darma)에 의한 덕치주의를 추구했다. 그의 불법에 의한 통치와 공자의 덕치주의가 비교되기도 한다.

그는 상용어인 팔리(Pali)어로 불경을 수집하고 10년간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불탑을 세웠다. 효를 중시하고 자비, 자선을 장려했다.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고 타 종교도 허용했다.

그는 불교를 지방(북인도) 종교에서 세계적 종교로 격상시켰다. 그는 스리랑카, 미얀마 등 이웃은 물론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그리스, 북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에 포교단을 파견했다.

특히 스리랑카에는 두 차례나 왕자 마헨드라(Mahendra)와 딸 산가미트라(Sanghamitra)를 보내 포교에 성공했다. 이로 인해 스리랑카는 남방불교(소승불교)의 근거지가 돼 미얀마, 태국, 수마트라, 자바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불교가 전파됐다.

불교가 4세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아쇼카식 소승불교 실천은 1700년을 지난 21세기 미국을 돌아 들어온 셈인가?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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