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추풍령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옆의 괘방령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옛날 대구 의령 김천 성주 등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에 과거보러갈 때 추풍령이 아닌 괘방령(掛榜嶺)을 넘었다고 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

추풍령이 조금 더 낮지만 ‘추풍낙엽’(秋風落葉)이 연상돼 기피했고 대신 직지사를 옆으로 끼고도는 고개를 넘어오면서 과거급제의 방이 붙기를 기원해 괘방령(걸괘, 문패방)으로 불렀다.

괘방령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다. 소백산맥 줄기인 속리산이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중간인 황악산(1,111m)과 가성산(730m) 사이의 고개다.

높이는 추풍령과 비슷한 300m정도. 괘방령 정상은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김천 쪽으로 직지천을 지나 감천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고, 영동 쪽으로는 어촌천이 초강천으로 흐른 뒤 금강에 합류한다.

괘방령 아래의 마전마을은 전의 이씨(全義李氏) 집성촌이다. 조선 정조 때 경남 의령에서 과거를 보러가던 전의 이씨 형제가 괘방령 길목에 이르렀다가 직지천의 아름다운 풍광과 인심에 반해 터를 잡고 정착했다고 한다.

괘방령 옛길은 현재 상로(商路), 교통로로는 퇴색됐지만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 격전지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영동군은 추풍령과 괘방령의 역사적 의의와 조선 시대 상로로서의 사연 등을 대외적으로 부각 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 4월 15일 누나들, 형과 함께 고향인 영동군 황간 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67년 서울의 한 중학교에 진학해 사투리를 쓰니까 친구들이 고향을 묻곤 했다. 그러면 충북 영동이라 말했지만 정확히는 영동군 황간면이다.

황간국민학교를 졸업했으니 먼저 황간이라고 답하면 강원도에 있냐고 물어서 충북 영동군이라고 고쳐 답하곤 했다.

어디냐고 다시 물으면 귀찮아서 추풍령고개라고 대답했다. 서울 친구들은 제2의 도시 부산직할시도 시골이라 부르니 전국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황간을 알 리 없었다.

▲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연결하는 추풍령의 일부 모습/네이버 이미지 캡처

그런데 69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황간에 톨게이트가 생기면서 좀 아는 친구들이 생겼다.

서울에서 대전을 지나 금강휴게소에서 조금 더 가면 영동이 나오고 추풍령 올라가다가 중턱에 황간이 있다.

친구들은 동요에도 추풍령이 나오고 대중가요에도 ‘추풍령고개’가 있어 이름이 귀에 익긴 했던 모양이다. 또 경부고속도로로 대구와 부산에 가려면 딱 중간인 추풍령 휴게소가 있어 널리 알려졌다.

영남 지방에서 서울로 올 때 넘어야 하는 소백산맥의 가장 낮은 고개가 3곳 있다. 죽령, 조령, 추풍령이다. 이 3곳의 고개(嶺) 이남이 영남이다.

호남은 삼한시대 때부터 있었던 김제의 벽골제(碧骨制) 이남이라고 하는 등 여러 설이 있다.

하지만 충남 조치원, 공주, 부여, 강경으로 흐르는 금강을 옛적부터 호수같다 하여 호강(湖江)이라고도 했다니 금강 이남이 호남이라고 본다.

경북 안동에서 한양올 때 죽령을 넘어 충주 문막에서 섬강을 건너 여주를 거쳤다, 의성. 청송, 대구 지방에서는 문경을 들러 조령(새재)을 거쳐 수안보로 해서 진천의 광혜원길을 거쳤고 김천 성주 등지에서는 추풍령을 넘어 보은 청주 조치원 천안을 들렀다.

이 추풍령은 3고개 중 역사적으로는 가장 오래됐다. 신라 공주로 백제 무왕의 왕비가 된 선화공주가 경주에서 백제의 수도 부여로 시집갈 때의 국경 부근의 고개다.

고려시대에는 영남에서 개경에 가장 가까운 길인 죽령과 박달재를 넘었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의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소서행장)가 아무런 제재도 없이 쉽게 조령을 넘어 충주에서 신립 장군의 조선군 본진을 격파했다. 이어 마산으로 들어온 왜군의 본진은 밀양 대구 김천을 거쳐 추풍령을 넘었다.

추풍령이 영남에서 서울로의 주 도로가 된 것은 1904년 경부선철도가 놓인 이후다.

일제는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쓰시마(對馬島)를 거쳐 제일 가까운 부산에서 서울로 연결하는 철도를 깔면서 험한 산맥을 뚫는 터널과 낙동강, 금강을 건너는 철교를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제일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까지 6명이 추풍령을 넘어 청와대로 왔다.

20대 총선인 4.13 선거후 내년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야당의 문재인, 김부겸, 박원순이 영남이고 여당 주자인 김무성 유승민도 영남 출신이다.

괘방령을 넘던 옛 선비들처럼 영남에서는 출세를 위해 꾸준히 서울로 올라왔다. 잠재주자로 거론되는 반기문만이 죽령 북쪽인 충주 음성사람이다. 중부대망론에 편승해 ‘영북(嶺北)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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