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술고문] 1986년 12월 성수대교로 넘어가는 서울 행당동 언덕 옆 선술집.

보도지침을 폭로한 한국일보 편집부 김주언 기자와 사회부 경찰기자 남영진이 술잔을 기울였다.

▲ 남영진 논술고문

편집부에서 같이 근무할 땐 매일 술을 마셨는데 6개월 전 내가 사회부 발령을 받아 영등포경찰서와 남부지검 등에 출입하다 보니 자주 만나질 못했다.

안국동 회사 근처에서 1차를 파할 즈음 김주언 선배가 행당동 자기집 앞에 가서 한잔 더하잔다. 새벽에 경찰서 기자실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멈칫했지만 그날따라 한잔 더하자는 느낌이 묘했다.

‘하마’ 김 선배는 맥주, 나는 소주를 시켰다. 잠깐 침묵하던 ‘쭈언이형’이 술버릇대로 꼽슬한 앞머리를 꼬면서 “딸 소현이가 곧 돐이 된다”는 둥 몇마디 하고는 집에 가잔다. 언덕길을 지척지척 올라가는 모습이 추레해보였다.

다음날 김주언 선배가 경찰에 잡혀갔다. 81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언론대학살 이후 1년이 지난 82년 입사한 나는 ‘기자가 잡혀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편집국 농성이 시작됐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일보 분회 부총무였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선배들과 경영진은 ‘나쁜짓하다 들킨’ 것처럼 전전긍긍했다.

반면 언론 현실에 불만이었던 후배 기자들은 세게 밀어붙이지 못한다고 나를 압박했다.

김 선배가 구속된 다음달인 87년 초부터 열린 서소문 법정에서의 재판은 들뜬 분위기였다.

‘보도지침’(press guideline)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외신기자들도 몰려들었다. 한국일보에 전달된 6개월치 보도지침 154장을 복사해 월간 ‘말’지에 넘겨준 김주언 기자와 이를 말지에 실은 김태홍 발행인(작고·후에 국회의원), 신홍범 인쇄인(74년 조선일보 해직기자) 등이 왜 외교상 국가기밀누설죄, 국가모독죄, 집시법 위반이 되는지가 관심거리였다.

김주언 선배가 잡혀가자마자 나는 월간 말지가 1986년 9월호 특집호에 실은 ‘보도지침’이 내가 석사논문을 쓰려고 복사해 집에 보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지를 확인해봤었다.

몇 군데 표현을 달리했을뿐 내용은 같았다.

기협 한국일보 분회는 보도자유위원장인 김주언 기자 등이 편집부 데스크와 기자들에게 전달되는 ‘보도지침’ 복사지를 근무가 끝나면 모아두기로 했었다.

편집국 부국장이 매일 청와대와 문화공보부, 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 등에서 전달된 ‘보도협조사항’을 종합해 각 부장과 편집자들에게 돌려 신문기사 작성과 편집에 참고하라고 돌렸던 바로 그 문건이다.

▲ 연극 '보도지침'/뉴시스

당시 군사정권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성추행으로 할 것‘ ’김수환 추기경 권양 위로방문 사진은 2단 이상 안됨‘ 등 국내외 중요한 기사들을 처리하는 방향을 협조 내지는 지시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기자들이 야근 후 피곤해서 ‘그 문건’을 방치하고 그냥 퇴근해버려 5~6개월 지나도 20여장 정도밖에 안됐다.

그래서 나는 편집국 서무가 모아둔 보도지침철을 빌려와 김주언 선배와 함께 회사 7층 중앙복사실에서 복사해두었다.

김주언 선배는 감옥에서 6개월을 보냈다. 그해 겨울 딸 소현이 돐때 형수 혼자 있는 행당동 단칸방을 찾았다.

임승무(뒤에 목사가 됨) 선배와 원인성(후에 런던특파원) 이유식(현 뉴스1주필) 유종필(현 관악구청장) 등 직장 동료 7명이 케이크에 초 하나를 켰다.

장로였던 임 선배의 “이 시련이 훗날 큰 복으로 돌아올 거”라는 긴 기도가 생각난다. 기도대로였다. 그는 국제적 관심 덕분에 석방됐고 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한가닥 불씨가 됐다.

이 사건은 이후 대법원에서 10여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한승헌 홍성우 등 인권변호사들이 꾸준히 변론해주었다.

김 선배는 88년 자매지 서울경제 증권부로 복직해 ‘선봉’ 한국일보 노조의 산파역을 맡은 뒤 한국기자협회장을 거쳐 프레스센터 이사, KBS이사 등 언론계 진보의 아이콘이 됐다.

말지의 보도지침 폭로 기사는 내 기자질 20년 동안 최대의 낙종인 셈이다. 기사를 다른 매체에 넘길 줄이야.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이 보도지침 사건이 30년 만에 대학로 수현재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나타났다. 이 연극은 블랙코미디와 엄숙함이 깃든 법정 신과 유쾌함과 문제 의식을 갖게 되는 대학 동아리 신을 오가며 긴장과 이완을 조절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7명의 젊은 배우들이 열연해 2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내가 찾은 9일 토요일은 저녁공연인데도 20~30대 젊은층 110여명이 앉아 진지하게 보다 웃다가 한다. 관객이 꾸준해 6월 19일까지 계속하고 이후 전주와 광주 순회공연을 계획이라고 한다.

그날 밤 김중배 전 한계레신문 사장 장행훈 전 동아일보 유럽특파원 등 70대 언론계 선배들이 40대의 기획, 연출자, 배우들과 뒷풀이를 했다.

현재의 언론은 과연 군사정권 시절과 달라졌는가가 화두였다. 당시는 외부 권력기관의 보도지침이 있었지만 지금은 언론사주와 편집 간부들이 권력과 재벌에 알아서 기는 진짜 ‘보도협찬’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13일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됐다. 한국의 어느 언론도 이를 예상치 못했다. 그만치 민심을 몰랐다. 언론인 스스로가 ‘내부검열’로 눈이 멀어 있다.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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