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1980년부터 2000년 초중반까지 출생한 청년층을 밀레니얼 세대 또는 Z세대라 부르는데, 통칭 20대라 하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해 뒤 이들 사이에서 ‘놀족’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 김선태 편집위원

일상을 놀이로 보내고 놀이를 일상으로 여기는 가치관을 지녔다는 의미다. 해가 지나자 ‘소소잼’이라는 말이 이를 대체했는데, 소소한 것에 재미를 느끼는 세대라는 뜻이다. 그해 말 이 세대의 세계관을 근저에서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으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승리로 이끈 촛불집회가 그것이다.

촛불 혁명 앞장선 20대, 지금은

그로부터 이 세대는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존재 의미를 찾아갔고 이를 지칭하여 무민세대 즉 ‘무의미에서 꾸밈없는 의미를 찾는 세대’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 연장선상에서 향후 20대는 타인이 아닌 자기 스스로 만든 기준을 지키고 따르는 관점을 형성해 갈 것이며 이를 ‘마이싸이더’라 부르고자 한다. 이상은 이 책 『트렌드 MZ 2019』의 요지이자, 20년 동안 20대 문제를 파고든 대학내일20대연구소(소장 김영기)의 진단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의 20대는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세대’라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진통이 따랐다. 아마도 최순실 게이트와 국정농단에 분노해 촛불을 든 현실 참여와 기적 같은 승리의 경험이 결정적 변곡점이라 할 것인데,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20대는 한국 사회에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단숨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성세대 특히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여전히 20대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까운 추측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이 세대별 남녀 지지율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자 정치권은 다급히 원인 분석에 골몰했다. 일부는 그들의 지지율이 처음부터 낮았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계층과 달리 그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일부는 1990년대생이 이명박근혜가 낳은 정치적 허무주의 세대이며 문 정부가 이전 정권들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탓이라고 설명하는데 이 또한 두루뭉술한 평가일 뿐이다.

어찌 됐건 20대의 일상과 직결되는 사회경제적인 여건들 예컨대 성장 정체, 청년 실업, 신분 고착, 불평등 확대, 이념 편향과 젠더 갈등, 최근 크게 이슈화된 ‘위험의 외주화’ 등 난마처럼 엉킨 현안들로 인해 정부여당에 대한 20대의 이반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침묵의 시위를 벌이는 20대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며 그들의 속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책은 마케팅 트렌드 분석서라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 깊이 천착하고 있어 오늘의 20대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매우 드문 안내서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의 행동에 숨은 뜻을 아는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음악 장르로서는 전무후무한 흥행 열기를 이어나가며 관람객 700만 명을 돌파할 당시, 배급사의 중간 집계에 따르면 20~30대 관객 비율이 55.6% 즉 과반을 점했다. 영화는 1985년 7월 ‘라이브 애이드’ 공연으로 마무리되는 전설적인 록밴드 퀸과 그 리더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다룬 것인데, 그 자식 세대들이 반복해서 보는가 하면 영화관을 콘서트장으로 만들며 떼창까지 불렀던 것이다.

사실 이 영화가 20대를 불러들인 진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인데, 해답은 영화에서 리더 프레디 머큐리가 “우리는 부적응자를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들”이라 한 말, 그와 더불어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우리는 팬들이 함께 연주하는 곡을 고민한다"라고 한 말을 합치면 얻을 수 있다. 20대들은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한편 그로써 분출된 열기에 “나도 한 번 거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한국의 평균적인 기성세대가 당장 20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을 정의하면 ‘30평형대 아파트, 자동차 한 대, 몇 년간 버틸 생활 자금’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로는 20대의 경제적 독립, 결혼 생활과 자녀 양육, 부모 부양과 여가 생활을 보장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행하게도 한국의 20대가 직접 이들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작아지고만 있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면 우리의 평균적인 20대는 확대재생산은커녕 단순재생산도 힘겨워진 구조 속에 내던져졌다고 해야 옳다.

▲ 『트렌드 MZ 2019』 = 대학내일20대연구소 저, 한빛비즈 간, 2018년 11월 22일..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 조사는 이런 상황에서 20대가 갖게 된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들 다수는 ‘타인에게 인정받기보다 자신이 행복한 삶을 택하겠다’고 응답한다. ‘대학을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것, ‘결혼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꼭 출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래서 이전 세대가 중시하던 ‘공동체 의식을 굳이 따르지 않겠다는 것’,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이념이나 절대적인 가치라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수 20대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의식을 지닌 20대는 꾸준히 사회의 주류 문화를 공격했고 일부는 뒤엎는데 성공했다. 한 중소 기획사에서 배출한 아이돌 그룹은 국내에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잡기 어려운 나머지 이판사판의 각오로 미국에 진출했다. 얼마 뒤 그들은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했고, 북미 최대 음악방송인 AMA에 초대받았으며, 이어 전 세계에 자신의 충실한 팬클럽 아미(ARMY)를 조직하더니, UN에서 세계의 청소년을 향해 연설하거나 대형 무대의 백스테이지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팝스타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이야기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은 두어 해 전까지만 해도 ‘주목받고 싶지만 밑천이 없는 개인들의 싸구려 가판대’ 정도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이제 유력 방송들은 젊은 유튜버를 앞 다투어 모셔 메인 프로그램에 출연시킨다. 일례로 jtbc는 “상위 1%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리얼한 일상을 공유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프로그램 ‘랜선 라이프’에 대도서관, 윰댕, 씬님, 벤쯔 등 유튜버 스타들을 대거 내세웠다. 20대의 채널 장악력이 거기에 이른 것이며, 기존의 주류 문화가 그들에게 굴복한 결과다.

독서 인구의 감소는 월드와이드웹이 활성화된 2000년 이래 쭉 이어지고 있어 새삼 언급할 가치가 없다. 이처럼 종이책이 벼랑 끝에 이른 상황인데 지난해 전국에 걸쳐 일주일에 1개꼴로 통칭 독립서점이라는 작은 서점들이 생겨났다. 전직 아나운서인 김소영, 오상진 부부가 문을 연 당인리책발전소는 그 정점을 찍은 사건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이들 서점 몇 군데를 방문하면 짐작할 수 있다. 독립서점들은 서가로 실내를 채우는 기존의 서점 관행을 거부한다. 대신 책과 생활용품과 심지어 카페가 들어서 있고 서점 주인은 방문객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지식 경험 감성이 뒷받침된 책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추천된 책이 입소문을 타자 급기야 민음사는 동네 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동네서점 에디션’을 내놓기도 했다.

“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2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종종 자신과 아이들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심연을 느낀다. 언어에 이르면 이 심연은 사회 전체의 불안정성 문제로 확장된다. 20대의 언어는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난해할 뿐만 아니라 그마저 빛의 속도로 대체되는 속성을 지녔다. 기성세대의 눈에 20대의 언어는 차라리 하나의 마술이다.

문제는 그것들을 모든 20대가 매 순간 스펀지처럼 흡수해 공용어로 사용하므로 이를 외면하는 한 그들과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고독한 OO방, 탈코르셋, 로우로우, 소신 태클, 핵인싸, 갑분싸 따위 말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지 알지 못한 채 그들의 대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다음은 이를 실감하게 하는 어느 신입생 대화방 풍경이다.

<첫날 반에서 인싸 되는 법>

복학생 :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애들 : …(으, 찐따인가;?)

새내기 : 만반잘부.

애들 : !(오우~ 놀 줄 아는 놈인가ㅋ?)

‘낯설렘’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용어다. 사진작가 홍산이 ‘영정 사진 촬영’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실험적인 제안에 젊은이들이 크게 호응한 일이 있다. 지금이 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유서를 쓰고 카메라 앞에 서서 꾸미지 않은 나의 모습을 찍는 일이다. 가볍게 임한 젊은이들은 막상 영정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자 무거운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기 어려워하는데 그 심경이 카메라에 오롯이 담긴다.

익숙한 매체인 사진이 지극히 낯설게 여겨지는 바로 그 낡고 낯선 순간이 젊은이들을 매료시킨다. 소니사가 29년 만에 레코드판을 다시 생산하게 된 배경도 이와 같다. 고향, 시골길, 향수, 빈티지, 평양 등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 시절이나 시공간을 뛰어넘어야 닿을 수 있는 장면에서 단단한 실존의 뿌리를 느끼는 것은 그만큼 이 세대가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오감으로 향유하는 삶을 갈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팔로인’은 첨단 신조어다. 이전에 기성세대들은 외식을 준비할 때 대개 정형화된 지상파의 맛집 탐방 프로그램에 의지했다. 하지만 20대는 SNS나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자신들이 믿는 사람에 의지해 맛집을 챙겨 왔다. 그 결과 이제는 기성세대도 지상파도 기존 방식을 버리고 20대의 방식을 따르게 되었는데, 지상파의 <전지적 참견 시점> 프로그램으로 이영자 신드롬이 일어난 경우가 그렇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배우 최자는 인스타그램에서 미각의 대동여지도라 불리는 최자로드를 개척했고, 인터넷 축구 해설사 감스트는 당당히 MBC 스포츠 특선에 진출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넘사벽의 경험에서 우러난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자본과 연출에 근거한 기성 프로그램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Follow+사람 인’ 즉 포털 검색보다 사람을 따른다는 의미의 팔로인이라는 말이 득세하게 되었다.

팔로인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터넷의 흐름까지 바꾸는 중이다.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가 검색 포털인 네이버와 다음을 밀어내는 과정은 대표적인 현상이다. 유튜브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초등학생 희망 직업 순위에서 유튜버가 5위에 등극한 사실에서 짐작되며, 20대의 경우 네이버, 카톡, 페이스북을 모두 합쳐도 유튜브 사용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인터넷 방송의 신뢰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을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또는 ‘1인 크리에이터’라 하는데, 연구소에 따르면 유튜브에서 그들의 콘텐츠를 이용하는 인구는 최근 1년 새 51.3%에서 70.6%로 급증했다. 일반 연예인과 유튜브 인플루언서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화장품의 경우 26.6% 대 73.4%, 전자기기의 경우 13.1% 대 86.9%, 식품의 경우 16.9% 대 83.1%, 도서의 경우 28.3% 대 71.8%로 비교불가다.

‘하많하않’. 2017년도에 20대에서 가장 유행한 단어 중 하나다. “굳이 말도 통하지 않을 너와 언쟁으로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들은 일상의 불편을 최대한 참으려 하지만 그 도가 지나치면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그 같은 노력은 서점가의 이상 징후로도 나타났으니 지난 1년간 ‘무례한 사람에게…’, ‘죽고 싶지만…’, ‘하마터면 열심히…’, ‘나는 나로 살기로…’ 등의 제명을 가진 이른바 대처법 또는 대화법 서적들의 판매가 전년 대비 62%나 증가한 것이다.

‘보여줘’를 넘어 ‘만들어줘’를 요구해

촛불혁명 뒤 20대는 정의로운 예민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었으며 이를 지칭하는 말이 ‘화이트불편러’였다. 오늘 그들은 자신의 소신을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려 하며 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바 소(또는 작을 소)’에 스피커를 합성한 ‘소피커’다. 대학내일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92.3%가 최근 6개월 이내에 불편한 상대에게 소신을 표현한 경험이 있고 65.6%는 “사소한 일이라도 불편하다면 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소피커와 화이트불편러 사이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는 점이다.

‘존버’는 ‘존X게 버틴다’의 줄임말로 제법 거친 아이들에게나 어울릴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 말을 실감 나게 한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맛집 방송 프로그램인 <백종원의 골목 식당>이 관례를 깨고 한 가게를 여러 회 방영한 때가 있는데 ‘서울 홍은동 포방터시장 홍탁집 아들’로 알려진 모자 가게가 그것이다.

처음 이 가게의 아들 사장은 지나친 게으름과 무책임 탓에 네티즌들로부터 무수한 질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이 나간 뒤 회를 거듭할수록 이 가게를 구경하려는 젊은이들로 포방터시장은 때아닌 장관을 연출했고, 경위야 어찌 됐건 아들 사장이 심기일전한 모습을 보이자 가게 안은 격려의 메모지로 도배되다시피 되었다. ‘존버만이 답’임을 믿고 싶어 하는 20대들을 열광하게 만든 이 사례는 안타깝게도 “누구라도 좋으니 자영업자 잘 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존버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지난 수 년 간 20대는 자신이 몰입하고 자신을 내세우기 좋은 대상을 찾는데 분주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그 대상 속에서 자신이 특별해지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자기 전시에 만족하던 데서 자기 증명을 중시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인데, 이와 같은 개인주의조차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처럼 용광로 같은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것이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의 불확실성이 지속될수록 미래를 믿지 못하는 20대의 양면성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불안정한 신자유주의와 개인이 희석화되는 디지털 시대가 맞물려 개인의 존엄성을 박탈당할 위험에 처할수록, 사람들은 국가나 국민 같은 (신성불가침의) 정체성을 획득하여 타인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서고자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말의 연장선상에서, 대학내일 정은우 파트장은 진퇴양난의 처지가 20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며 그들의 생각을 아래 문장으로 압축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현재를 잡을 것, 가급적 미래는 믿지 말 것)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의 이 명언을 사람들은 종종 앞의 반쪽 구절만 알고 뒤의 반쪽은 알지 못한다. 그것이 20대를 보는 자칭 사회 지도자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라 말하면 비난이라 비난 받을지 모른다. 다만 필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20대의 신조어인 ‘여포’라 부르는 것으로 갈음하고 싶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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