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국 편집위원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맹자(孟子)는 말하였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고 있을 때에는 덕이 작은 자는 덕이 큰 자의 쓰임을 받으며, 현명한 자는 보다 더 현명한 자의 쓰임을 받는다. 그러나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게 되면, 작은 나라는 힘이 큰 나라에 추종하지 않을 수 없고,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 종속해야만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자연의 이치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이치는 순종하는 자는 존속하고, 그것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逆天者亡)”(맹자 이루(離婁) 상편)

◇ 야합, 단식, 대립, 후진정치에 머무른 국회시계

연말 정치판이 혼란스럽다. 예산안 처리를 놓고 대치하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소수 3야당의 반발 속에 12월 6일 전격적인 공동 합의문을 발표하고 예산안을 처리했다.

여당은 예산안 처리가 시급해 불가피했다고 했지만, 야 3당 중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가 11일 현재 6일째 단식 농성중이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청와대앞 1인시위를 벌이는 등 국회 상황은 혼란스럽고 암울하기만 하다.

특히 북미 관계의 긴박감과 침체된 민생경제, 여야 정치권의 극한적인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맞는 한국정치 내부의 상황은 암담해 보인다.

촛불혁명에 이어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적폐를 청산하는 개혁에 나섰지만, 여권 내부의 개혁동력 미비 빛 분열, 야권의 발목잡기에 사로잡혀 국내정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예산안이 진통 끝에 처리됐지만, 선거제 개혁을 제외한 예산안만 합의한 데 대해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은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 6일째인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오른쪽은 윤소하 원내대표가 앉아있다./뉴시스

이들 야 3당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개혁과제에 앞으로 협조하기 어렵다고 밝혔고, 두 대표의 단식투쟁에 이어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협치종료 정식 선언”까지 내놓았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비리와 탈법을 개혁할 ‘유치원 3법’을 포함한 민생법안과 사법개혁, 공공부문 채용비리 국정조사,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등 시급한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일쯤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현안을 처리하자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10일 정도의 임시국회를 열어 전반적인 국정현안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고,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개혁은 야당의 묻지마반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상황은 실업률이나 가계부채 등 발표되는 지표마다 악화되고 있고, 내년 전망도 계속 하락 또는 침체를 나타내는 지표만 제시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지연되고, 김 위원장의 남한 답방도 지체되는 등 외교안보 분야도 지지부진한 흐름에 머무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동력이 약해지면, 국정농단 세력과 분열됐던 보수 세력들이 ‘반문연대 결성’ 등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5월9일 대선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위기 국면이 심화되고 있고, 정국의 혼란상도 더욱 어두워지는 형국이다.

◇ 여당: 선거제 개편 이뤄야, 야당: 무조건반대 고쳐야

이렇게 꼬인 정국 상황의 가장 큰 책임자는 여당인 민주당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초기 지지율 고공행진에 안주해 개혁입법 추진 및 민생경제 회복에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개혁을 주도하지 못하고 야권의 공세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 수용 없이 2019년 예산안을 합의한 것에 반발해 7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뉴시스

국회 의석분포의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협치를 이끌어 내지도, 치열하게 정책을 개발하고 실천하지도, 국민지지를 얻어내지도 못하고 있다. 무기력한 집권 여당의 모습이다.

이번 예산안 정국도 마찬가지다. 야 3당이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총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로, 그동안 민주당이 개혁입법으로 추진해온 것이다.

정당별 총 의석수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뺀 만큼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할당하는 방식으로 사표(死票)를 방지하고 유권자 의사를 정확히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정치권뿐 아니라 정치학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아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총선 및 대선에서 주장해왔고, 지난 3월 청와대가 발표한 정부 개헌안에서 ‘국회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해 배분해야 한다’고 거듭 확인했던 사안이다.

그렇다면 의석수의 손해를 보더라도 당당하게 정치개혁에 앞장서면서 국민 지지를 요청하는 담대한 정공법의 정치를 해야 할텐데, 기득권의 수성에 나서는 모습만 노출하고 있다.

야당의 문제점도 크다. 새누리당에서 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은 국정농단과 적폐에 가장 큰 책임이 있고, 당내에서는 아직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해 매번 묻지마반대에 개혁입법을 방해하거나 막는 행태를 보여왔다.

▲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 정치하는엄마들 및 시민단체들과 박용진3법 관련 기자회견을 하면서 아이를 가진 엄마의 발언을 듣고 있다./뉴시스

사립유치원의 각종 비리와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행태를 개혁하기는커녕 ‘유치원 3법’으로 불리는 개혁법안을 막기 위해 보여준 모습은 추악하기까지 하다.

‘자체 법안을 내놓겠다’고 한달여 시간을 끌더니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놓고, 병합심리도 사실상 거부했다.

그 결과 유치원 3법의 연내 개정이 사실상 무산됐다.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고 아이들을 안심하고 유치원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한유총의 방패막이가 된 셈이다.

한유총이 한국당 의원들에게 조직적으로 ‘쪼개기 후원’을 한 의혹도 새롭게 드러났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전 세계가 축복하는 판문점선언과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의 비준을 거부하고, 개혁입법마다 발목을 잡는 모습도 반드시 혁파해야할 구악이자 폐습의 정치 그 자체다.

▲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엠더블유 컨벤션에서 제8대 이사장 선출을 위한 대의원임시총회를 개최해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덕선 비대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바른미래당도 심각하다. 보수도 중도도 아닌 모습으로 매 사안마다 문재인 정부의 발목잡기에 나섰고, 예산안 국면에서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국회를 여러 차례 보이콧하면서 예산심사를 부실하게 한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

전 세계가 기원하고 박수를 보낸 대북 화해의 국면에 냉전적 사고로 일관하면서 판문점선언을 막아서는가 하면, 개혁입법을 저지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화와 협상이 중심이 되어야할 국회에서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단식투쟁과 같은 철지난 정치행태를 벌이면서 민생경제의 회복과 한반도 평화의 길목마다 방해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부 갈등으로 정치적 존재감이 상실되고, 5~6명의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에 복당할 의사를 표명하는 등 분당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 역시 우려스럽다.

◇ 순천자의 길, ‘국민 뜻 따라야’ 성공 맹자 교훈 새겨야

국회는 갈등과 대립을 하면서도 막전막후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고(故) 노회찬 의원의 유지를 받들고 그동안 주장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롯한 정치개혁에 나서는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 단식투쟁을 마다하고 대화와 협상, 시민단체의 의견 수렴, 1인시위 등 정상적인 정치활동을 하는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의 노력은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1위만 당선되고, 60%를 득표하고도 80%의 의석을 독식하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개혁대상임은 그동안 정치권의 합의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승자 및 거대 양당의 독식 체제, 지역구도를 고착하고 분열과 대결의 정치를 해온 현행 선거법은 시민과 시대의 요구에 맞도록 바꾸는 게 당연하다.

민주당이 대의 민주주의 발전과 정치개혁을 추구해야 하는 정당의 소명에 맞게 과감하게 기득권을 내려놓고 결단해야 할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 개편, 의원정수 확대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데 시일이 촉박하다는 점에서, 큰 틀의 선거제 개혁에 합의하고 정치개혁특위 활동 시한을 연장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과를 내야할 것이다.

▲ 참여연대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3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정치는 개혁되어야 하고, 지금이 적기임에 틀림없다. 정치권은 힘을 합쳐 촛불혁명이 제시한 민주주의와 정의에 기반한 사회, 정치개혁과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내면서 민생경제도 살려내는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가 돌아올 것이다.

맹자의 교훈대로 ‘하늘과 국민의 뜻에 따르는 정치는 흥하고, 거스르는 정치는 망한다’(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하고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한다)는 진리를 돌아볼 때이다. 공자 역시 명심보감 천명편에서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에 거역하는 사람은 망하니라”라고 설파했다. 과거 기득권에 안주해온 우리 정치권의 각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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