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과거청산과 따뜻한 용서…‘만델라 정신’ 꽃피어나길

김홍국 편집위원/경기대 겸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l승인2018.12.06l수정2018.12.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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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12월 5일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자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투쟁으로 헌신한 넬슨 만델라(1918~2013) 전 대통령이 5년 전 타계한 날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

만델라 대통령의 삶을 탐구해왔고, 서거 1주기를 맞아 <넬슨 만델라 위대한 조정자>를 저술하는 등 그의 위대한 삶과 업적을 연구하고 기려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평생을 돌아보게 된다.

2013년 겨울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70명이 넘는 전 세계의 최고지도자와 20여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그의 서거를 애도했고, 서울 중구 정동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필자를 포함해 많은 한국인들이 모여 그의 아름다운 95년간의 생애를 기렸다.

◇ 무장투쟁 등 저항정신과 헌신적인 사회공헌으로 존경받다

만델라 대통령의 삶은 고통과 질곡의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힘겨운 나날이었지만, 장벽에 굴하지 않는 당당하고 정의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백인과 흑인, 유색인종을 구별하고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은 3백여년간 갈등과 대립, 혼란과 차별의 나라였다.

그는 흑인인권 운동을 비롯하여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위해 비폭력 저항운동, 무장투쟁운동을 전개하면서 남아공과 전 세계의 수많은 흑인들에게 빛을 보낸 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외딴 섬에서 27년간의 수감생활 이후, 남아공에서 투표로 선출된 첫 번째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그는 자유투사로서 세계의 존경을 받았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백인 사회에 대해 보복하지 않고 화해와 평화, 단합을 주장하여 피 흘리는 일 없이 과거사를 정리했다. 정계에서 물러난 후에도 에이즈 퇴치, 어린이 교육, 아프리카 분쟁 조정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삶을 살았다.

1918년 7월 18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트란스케이 움타타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등교육을 받고, 몇 되지 않은 흑인 변호사로 성공가도의 길을 달렸다.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에 분노한 그는 극단적인 인종 분리 및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학생운동, 불복종운동을 벌였고, 이후 무장투쟁에 나서면서 엄혹한 길을 선택했다. 1960년 3월 샤퍼빌 대학살 이후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느낀 만델라는 1961년 무장단체인 ‘민족의 창’(움콘토 위 시즈웨)을 결성하고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본격적인 무장투쟁운동을 전개했다.

당국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에티오피아 등지를 체류하던 그는 1962년 귀국길에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1964년 ‘리보니아 재판’에서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로벤 섬 교도소에 수감된 뒤 1982년 폴스무어 교도소, 1988년 빅터 퍼스터 교도소로 옮겨져 1990년 석방되기 전까지 장장 27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참으로 험난한 세월이었다.

◇ 27년 옥고 이겨내고 제8대 대통령으로 남아공을 이끌다

그가 로빈섬을 비롯한 외딴 곳의 교도소에서 27년간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뒤 세계적인 민주투사로 존경을 받고, 노벨 평화상을 받고, 대통령 현직과 퇴임 후에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길에서 보여준 것은 원칙을 잃지 않은 삶이었다.

백인 독재정권에 대해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았고, 죄를 저지르지 않은 백인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그는 대통령이 되어 많은 업적을 남겼다.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뒤 흑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택·교육·경제개발 계획을 도입했고, 새로운 민주주의 헌법 제정을 지휘하는 등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1997년 ANC 의장에서 물러난 그는 1999년 제8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자 재임하지 않고 대통령에서 물러나 정계를 은퇴했다.

▲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2005년 12월 7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한 넬슨 만델라 재단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요하네스버그=AP/뉴시스 자료사진】

퇴임 이후의 삶도 존경을 받았다. 그는 퇴임 이후 만델라재단, ‘46664’ 자선단체, 어린이재단을 통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퇴치 활동을 벌였고, 어린이 교육 및 자선활동, 반전활동, 아프리카 분쟁 조정 등 사회공헌 활동에 헌신했다.

정계 은퇴와 공식 활동 중단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에서 만델라는 성인으로 존경 받았으며, 흑인들의 영웅으로 사랑을 받았다.

국민들이 만델라를 부르는 호칭인 ‘마디바(Madiba, 어른)’, ‘타타(Tata, 아버지)’, ‘쿨루(Khulu, 위대하다, 훌륭하다)’를 통해 그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과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유엔은 2013년 그의 생일인 7월 18일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로 제정해 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그는 특히 자신처럼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투쟁을 평생 펼쳐왔고, 역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신이 쓰던 시계와 가방을 선물하는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연대와 교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모색하며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 무조건적 용서 아닌 철저한 청산과 국민통합-국가발전 병행

변호사로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걸었던 만델라는 부정부패와 비리, 범죄에는 철저하게 원칙을 지켜 엄단하되, 남아공의 국민통합을 위해 용서와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중요한 건 만델라가 보여준 용서와 화합의 리더십은 무조건적인 용서나 관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범죄와 부패, 비리를 고백한 뒤에 국민들의 용서를 받은 뒤에 관용과 화해, 갱생의 길을 걷도록 하고 적극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1994년 5월 10일 만델라 대통령의 역사적인 취임을 계기로 과거사 청산 작업 열기가 커지면서 억눌려왔던 흑인들의 목소리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전체 인구의 16%에 불과한 백인들이 84%의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을 지배하기 위해 자행한 살인과 고문, 납치 등 반인권 범죄의 진상을 밝히는 동시에 흑인과 백인이 공존하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범사회적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대통령에 취임한 만델라가 한 일은 존경받는 종교인이자 민주투쟁에 앞장섰던 데스몬드 투투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설치해 과거사와 적폐를 청산한 것이었다.

이 위원회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일어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인권 침해와 인종 차별을 저지른 백인들의 죄상을 조사한 뒤 자신의 죄과를 고백하도록 했다.

과거의 잘못이나 범죄를 고백하지 않은 채 거짓말과 기득권에 안주하려던 인사들은 모두 감옥으로 갔고, 철저한 처벌과 단죄를 받았다. 거짓말로 과거 범죄를 은닉하고 감추려던 이들은 법정에서 구속되거나 교도소에 가기 직전에 이를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곤 했다.

▲ 2013년 12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 남아공 대사관에 마련된 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 분향소에서 조문객이 방명록을 쓰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이를 학계에서는 ‘만델라 식 해법’이라 부르며, ‘망각에 대항한 기억의 전쟁’이라는 별칭에서 보듯 사실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은 철저히 하되, 법적,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사면과 화해를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TRC는 1995년 ‘국민 통합과 화해 촉진법’에 따라 설치돼 1996년 4월부터 98년 7월까지 청문회를 개최했고, 모두 2만 1천명에 달하는 피해자의 증언을 청취하는 등 진상규명 작업을 실시했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진정 접수에 들어간 TRC는 30여 년간에 걸친 아파르트헤이트의 인권유린 희생자의 증언을 듣고 백인들이 저지른 암살, 고문, 실종 등의 실상을 낱낱이 조사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또한 백인들의 인권유린뿐만 아니라 ‘민족의 창’ 등 흑인들의 군사조직과 만델라 대통령이 이끌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가혹행위, 극좌세력들의 테러 행위도 예외 없이 모두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최근 우리 사회뿐 아니라 독재정권이나 극단적 갈등을 겪은 사회에서는 극우 국정농단 세력이나 사이비 학자들이 만델라의 삶이나 철학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 안에 넣어 그의 진실과 역사적 진정성을 왜곡하곤 한다.

범죄와 부정부패, 비리를 저지르고도 무조건 화해와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범죄와 그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고 반성과 참회의 길을 걸어야 용서와 화해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만델라식 용서와 화합이다.

최근 사법정의를 부인하고, 독재와 국정농단, 국기문란 등 무수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행사하려는 이들이 적폐 청산을 비난하는 모습도 자주 나타난다.

만델라의 용서와 화합은 처절한 반성과 참회를 통해 죄값을 치르고,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피해자에 대해 고백하고 사과와 반성을 통해 거듭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철저한 적폐청산과 과거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더불어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을 위로하고 사회 및 경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제의 실천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 철저한 적폐청산과 관용-통합의 가치 함께 실천해야

우리가 살펴보고 성찰하며 나가야 할 길은 과거에 대한 진실한 반성과 새로운 통합을 위한 참여와 헌신의 문화가 정립되는 가운데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델라의 삶에서 일관된 철학과 가치를 살펴본다면 휴머니즘, 민주주의, 통합주의, 관용주의, 긍정적 낙관주의와 같은 요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유니온빌딩 앞에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프리토리아=신화/뉴시스 자료사진】

천부적인 협상가이자 조정자였던 만델라는 이런 가치관을 바탕으로 삶의 고비고비에서 마주친 고난을 헤쳐 나가는 다양한 난관 돌파 전략을 사용하면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뤄나갔다.

부정부패와 불의, 무능력과 국정농단의 어두운 시절을 보낸 대한민국이 새로운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와 통일을 거침없이 질주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참여와 실천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정의, 범죄와 적폐에 대한 철저한 단죄라는 원칙과 함께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현실에서 실천한 관용과 통합의 가치에 기반한 만델라 정신이 2018년 대한민국에서도 꽃피어나길 기대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김홍국 편집위원/경기대 겸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  archomme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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