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의 마술, ‘슬로건’의 힘 – 소프트뱅크의 경우

김선태의 경제신간 리뷰 김선태 편집위원l승인2018.12.04l수정2018.12.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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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일본 소프트뱅크사는 초기에 잡화 자영업점(나까마)으로 시작하여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일본 시중에 판매하는 소매유통점으로 간신히 자리 잡았는데 이후 급성장하여 2018년 3월 결산 기준 총자산 300조원과 매출 100조원으로 도요타, NTT와 함께 하는 일본 3대 그룹, 알리바바를 거느리는 세계 최대 규모 유통회사, 그리고 자체 자산 110조원을 운용하는 초거대 대안투자그룹으로 성장했다.

▲ 김선태 편집위원

현재의 모습만으로는 손정의 회장이 옛날 직원 두 명과 길거리에서 보따리를 풀어 오가는 손님을 향해 외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옛 모습이 매우 중요한 요소에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 회사의 슬로건인 ‘Beyond Carrier’가 그것이다.

Beyond Carrier - 회사의 역사와 지향을 담다

손 회장의 발자취는 만신창이의 역경 그 자체라 할 수 있는데 기업사적으로 그의 회사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허다하게 변신해 온 사업 내력에서 잘 알 수 있다. 그 모든 변신을 넘어 변치 않는 한 가지가 현재 슬로건으로 굳어진 경영 철학이다. 손 회장 어법으로 해석하면 “기존 이력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추구하는 기업” 쯤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가벼운 상술로 치부할 수 있지만, 손 회장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두 단어에 회사의 역사와 지향을 한꺼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의 지향이란 자신의 특정한 업력을 기반으로 사업을 키우는 일반적인 영미 기업과 달리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자금 인맥 기회 등(손 회장은 이를 종종 네트워크라 요약한다)을 종합하여 회사의 지속성장에 가장 유력한 사업에 집중 투자, 그 성장 여부에 따라 주력 사업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인데 그 결과 현재 소프트뱅크의 주력사업은 이동통신 부문(이 분야 일본 2위인데 국영인 NTT를 제외하면 사실상 1위)이지만 캐시카우는 글로벌 투자부문이므로, 이 회사의 미래가치 창출은 투자펀드가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손 회장은 이미 소프트뱅크를 글로벌 정보혁명의 리더로 규정하고 있어 조만간 새로운 변신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 슬로건에 대한 소프트뱅크의 공식 설명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우리는 <Beyond Carrier> 전략을 내걸고 정보 혁명의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려 합니다. 우리는 그룹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AI · IoT · 로봇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정보 혁명의 새로운 무대를 향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의 그룹들과의 사업 시너지를 추구하면서 폭 넓은 영역에 동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며 기존 통신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https://www.softbank.jp/corp/aboutus/에서 요약)

평범한 경영자에게 보이지 않는 것

잠시 이 회사의 과거사 하나를 살펴보자. 2010년 초 일본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설립을 맞아 회사의 비전과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손 회장의 계획이 다소 황당했다. 향후 30년간 시가총액을 100배 늘리고, 조인트 벤처 파트너를 5000개로 늘리며, 이후 300년간 지속될 회사의 초석을 놓겠다는 것이다.

당시 소프트뱅크사의 시가 총액은 2.5조엔 내외. 손 회장은 30년 후 이를 200조엔, 세계 톱 10회사로 끌어올리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카데미아 설립도 그 임무를 달성할 후계자 양성에 가장 큰 목표를 둔다고 말했다.

▲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 스기모토 다카시, 서울문화사, 2018. 2. 5.

누가 뭐라 하건 그의 경영 인생에서 이날 연설은 일대 전환점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이 될 것”이라고 말한 이 순간을 위해 손 회장은 트위터로 1년간 2만 명의 자사 직원들로부터 의견을 구했다. 아카데미아를 통해 후계자로 뽑힐 그룹 사장에게 스톡옵션으로 100억 엔을 주겠다는 말도 보탰다. 물론 손 회장은 “내 말이 허풍으로 들리더라도 일기에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의 표정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이 프리젠테이션을 본 국내 중견기업 대표는 “손정의라는 인물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나 늘어놓는다”며 소프트뱅크가 곧 망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평범한 사업가들의 상식적인 판단이 대개 그와 같을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소프트뱅크의 시가총액은 대략 8.7조 엔으로 뛰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사 알리바바와 미국 굴지의 통신사 스프린터 등이 자회사(또는 관계사)로 포진해 있으며, 그룹사(파트너사)는 1300개다. 야후 설립자 제리 양의 여행 가이드였던 마윈이 1999년 알리바바를 창업했는데 자금이 없어 제리 양의 소개로 찾아오자 손 회장이 6분 만에 2000만 달러(235억 원) 투자를 결정했고, 이후 알리바바의 뉴욕거래소 상장으로 손 회장이 59조 원의 수익을 올린 일은 전설로 회자된다.

특이한 것은 그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때마다 수없이 자문자답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과 비즈니스의 방향을 결정해왔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허황된 것 같은 비전이지만, 실은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사유, 치밀한 계산 과정이 뒷받침되었음을 알게 한다.

모든 글로벌 기업이 자신의 슬로건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하나를 연구해야 한다면 소프트뱅크의 ‘Beyond Carrier’를 추천할 수 있다. 이 슬로건이 다음과 같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 소프트뱅크 직원들은 자신의 회사에 대해 풀어낼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고,

- 고객들은 회사의 변신을 쉽게 수용하고 직원들은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 시장은 거기에 호응해 소프트뱅크의 프레임 변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한다.

Think different, 슬로건의 슬로건

일반적으로 기업의 전략 슬로건은 고객들이 자사 사업 방향에 동참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향타라 할 수 있다. 일단 전략 슬로건이 결정되면 그에 맞추어 개별 제품이나 서비스, PR 등에 맞는 전술 슬로건을 결정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므로 전략 슬로건(이하 슬로건)은 전체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통일시켜 사업 시너지에 기여한다.

Think different! 기업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전략) 슬로건인 이 작품은 1997년에 로스앤젤레스 광고 대행사 TBWA의 리 클로우(Lee Clow)가 애플사를 위해 만들었다. 그 이전에 애플은 1984년 미국 슈퍼볼 경기에 내보낸 광고로 전대미문의 광고 효과를 얻었는데, 당시 광고 내레이션에서 이미 저 문구가 사용되었지만 완전한 슬로건으로 자리잡기까지 무려 13년 걸렸다.

그러므로 이 슬로건은 스티브 잡스가 독자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지만 잡스의 생각에서 알맹이를 건진 것이라 보는 것이 좋다. 당시 컴퓨터 업계의 황제로 군림하던 IBM의 메인 슬로건이 ‘생각하라(Think!)’였는데, 스티브 잡스가 이를 겨냥하여 애플을 공룡 IBM과 차별화시키려 한 표현이 ‘Think different’였다. 즉 “Think of Apple different from IBM.”이라는 내용을 압축한 것이다.

애플은 많은 행사에서 다양한 슬로건을 채택해 왔고, 이 슬로건을 처음부터 대표 슬로건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므로, Think different는 광고의 성공으로 확정된, 즉 고객이 결정한 애플의 대표 슬로건이라 해야 옳다.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이를 모방했다.

기업 이미지와 콘텐츠의 총화

기업들은 대개 두 개의 단어로 구성된 슬로건을 선호하는데 이는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며 기억하기 쉬운 가장 짧은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두 단어로 슬로건의 핵심 요건을 충족할 수 있으면 그만큼 지속성을 확실하게 보장해줄 문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말하는 슬로건의 핵심 요건은 두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하나는 이미지의 측면으로 이는 슬로건이 유일성, 선동성, 지향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콘텐츠의 측면으로 통시성과 공시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이 두 측면에서 ‘Beyond Carrier’와 ‘Think different’를 살펴보자.

먼저 두 슬로건 모두 평이한 두 단어로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강력한 유일성을 지닐 뿐 아니라 고객과 시장이 슬로건과 기업을 자발적으로 동일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선동성을 발휘한다. 이 선동성의 결과 “모든 회사가 업력(Carrier)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업력을 항상적으로 부정하며 성장하는 기업은 소프트뱅크 뿐”이라는 이미지, “모든 회사가 생각(Think)을 하지만 늘 다른 방법으로 사고하여 혁신을 주도하는 회사는 애플 뿐”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기여한다. 지향성은 두 단어의 관계에서 발휘된다. “업력(Carrier)을 일상적으로 넘어서는 것(Beyond)”, “사고하기를(Think) 늘 달리하는 것(different)”, 슬로건은 이 근본적인 미래지향성 즉 혁신의 일상성이 이들 기업의 핵심 역량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기여한다.

회사는 슬로건을 통해 이미지를 심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로건을 매개로 고객과의 소통을 손쉽게 이어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슬로건은 회사의 모든 콘텐츠를 고객에게 풀어내기 위한 포털(관문)이자 마중물이다. 이처럼 고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회사의 콘텐츠는 다시 통시성과 공시성이라는 두 잣대로 파악할 수 있다.

통시성이란 회사의 출발에서 성장을 거쳐 미래 모습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역사적 흐름을 말한다. 통시성의 관점에서, 회사는 실천과 더불어 성장하고 발전해 가므로 좋은 슬로건은 회사의 다양한 실천 내용에 대해 고객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내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Beyond Carrier에서 Beyond가, Think different에서 Think가 이와 같은 역할을 하여, 전자는 소프트뱅크가 항상적으로 Carrier를 넘어서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주고 후자는 애플이 항상적으로 different한 사고를 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준다.

공시성이란 회사에 고유한 스타일 또는 회사를 이끌어 온 기본 철학과 전문 분야로 종종 핵심역량과 동일시된다. 공시성의 관점에서, 회사의 핵심역량을 고객이 인정하면 할수록 고객 충성도는 강화되므로 좋은 슬로건은 회사의 콘텐츠를 적절하게 담은 용기라 할 수 있다. Beyond Carrier, Think different가 이들 회사의 핵심역량을 압축한 문구이기도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코노뉴스]

 
김선태 편집위원  kstkks@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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