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맥주 종량세, 산업 공동화 막고 일자리 창출 크게 기여”

[이코노뉴스=최아람 기자] 현행 주류 과세 체계를 종량세로 전환하면 해외 유명 맥주들의 국내생산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수입 맥주와 국산 맥주간 과세 불평등 문제가 사라질 경우 가격이나 품질 경쟁력 측면에서 맥주 제품을 한국에서 현지 생산해 공급하는 게 훨씬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13일 정부와 맥주업계 등에 따르면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등 국내 주요 맥주 회사들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종량세 전환에 발맞춰 해외 유명맥주 브랜드들의 국내 생산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수제맥주 업체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성수점에서 열린 ‘수제맥주 종량세 데이’에서 시민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한국수제맥주협회 제공

현재 국내 주세법은 원재료비에 인건비, 판매관리비, 이윤 등까지 포함한 가격을 원가로 해서 세금을 매기도록 돼있어 이윤이 늘어나면 세금도 늘어나도록 돼있다.

하지만 수입맥주 등 수입 주류의 경우 수입사가 신고한 수입가격에 관세를 붙인 뒤 이를 바탕으로 주세를 부과하도록 돼있어 수입가격을 낮게 신고할수록 세금이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현행 출고가 기준의 '종가세'(從價稅) 대신 알코올 도수나 전체 양으로 매기는 '종량세'(從量稅)로 전환하는 방안이 합리적이고 과세 형평성에도 부합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맥주 업계 관계자는 "종가세가 맥주 시장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내 생산 맥주와 수입 맥주 사이에 기형적인 역차별을 일으킨다"며 "국내 생산 맥주와 수입 맥주 사이에 공정한 가격 경쟁이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나 고용은 국내 기업이 많이 하는데 주세법은 수입 맥주에 유리하다"며 "주세법의 경우 종가세인데 종량제로 바뀌어야 공평하다"고 덧붙였다.

◇ 오비맥주, 버드와이저와 호가든 100% 국내 생산 전환 방안 추진

맥주업계 1위 기업인 오비맥주는 캔 제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던 버드와이저와 호가든을 100% 국내 생산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뿐만 아니라 스텔라 아르투아, 코로나 등 글로벌 브랜드를 새로 국내에서 제조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트진로의 경우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기린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합작, 또는 수탁 생산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맥주 과세 체계가 종량세로 바뀌면 한때 매물로 내놓았던 마산공장을 맥주전용 공장으로 다시 전환해 글로벌 맥주 브랜드의 제조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기지로 활용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롯데주류의 경우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지 않은 아사히 등 일본 브랜드를 충주 제2 공장에서 생산하거나 최근 협력을 모색 중인 몰슨 쿠어스 브랜드 생산기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국내 생산…수입 물류비용 절감, 품질유지, 지리적 근접성 등 경쟁력 높아져

국내 맥주 제조사들이 이처럼 해외 맥주의 국내생산을 검토하는 것은 종량세 개편시 수입 물류비용 절감, 품질유지, 지리적 근접성 등의 측면에서 국내에서 생산하는 맥주 제품의 경쟁력이 월등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맥주는 식품이고 숙성을 오래 해야 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완제품이 만들어지면 빨리 소비되는 게 중요하다.

▲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 수입맥주 행사장 판매대에 다양한 맥주들이 진열되어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맥주 업계 관계자는 “하이네켄이나 칼스버그 같은 해외 유명 맥주들의 경우 1980년대에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한 적이 있으나 한국 내 생산 여건이 나빠지면서 다시 본국으로 생산기반을 옮겼다”며 “종량세가 시행될 경우 당장 한국 현지 생산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외국 유명 브랜드들의 한국 생산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류업계 다른 관계자는 “세제 개편의 가장 큰 효과는 국산 브랜드의 시장점유율 회복이 아니라 글로벌 인기 브랜드 사의 맥주를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됨으로써 경쟁력 있는 맥주 생산기지로 탈바꿈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은 물론 경제적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입맥주는 유리한 주류 세제에 FTA로 인한 관세인하 혜택까지 누리며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34%씩 성장하며 시장점유율을 4.3배 늘려왔다.

반면 국산 맥주 제조사들의 출고량은 13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추락했다. 이 때문에 국내 맥주시장의 ‘산업 공동화’ 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 “맥주 시장점유율 1%가 감소할 때마다 일자리 250개 사라진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맥주 제조 3사의 연간 생산 능력은 346만6050KL인데 반해 지난해 실제 생산한 물량은 절반을 조금 넘는 57.66%인 199만8539KL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건설해 놓고도 판매가 부진해 생산하지 못한 물량이 146만7511KL나 되는 셈이다.

이처럼 수입 맥주 물량 32만6978KL의 4.49배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놀고 있는 상태이다.

이와 관련, 시장점유율 1%가 감소할 때마다 일자리 250개 사라진다는 한국은행 산업연관 지표를 근거로 추산해 볼 때 현행 추세가 지속되면 2019년 한해 동안 국산 맥주의 시장점유율이 7.7% 포인트 하락할 경우 1925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한 맥주 전문가는 “현행 추세라면 내년 말 수입맥주 시장점유율이 3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은행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2012년 이후 2019년까지 맥주 제조분야에서 약 75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산업공동화를 막고 일자리 창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수입맥주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불합리한 과세체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종량세)로 시급히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는 “종량세 전환을 통해 해외 고급 브랜드의 국내생산이 늘어나면 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신선하고 맛있는 맥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도 크나큰 편익이 돌아간다”며 “국가경제와 시장,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종량세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