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일본 경제가 2분기 만에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추진해 온 ‘아베노믹스’가 사실상 파탄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차원’(異次元)의 금융완화라는 ‘마약’을 계속 투여한 결과, 일본 경제가 장기적인 쇠퇴의 나락으로 떨어져 사회의 존립기반마저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 이동준 교수

저명한 경제학자 가네코 마사루(金子勝)와 고다마 다쓰히코(児玉龍彦)가 최근 내놓은 『일본의 병: 장기 쇠퇴의 다이내믹스(日本病: 長期衰退のダイナミクス)』(岩波新書, 2016년 2월)를 통해 아베노믹스로 인해 심화한 ‘일본의 병(日本病)’을 살펴본다.

이 책은 아베노믹스가 일본의 건강을 되찾기는커녕 ‘일본의 미래를 싼값에 마구 내다파는’ 병적인 정책이라고 단언한다.

아베노믹스는 “일본은행이 물가목표를 내걸고 금융완화로 통화 공급량을 늘리면 소비가 늘고 경제가 좋아진다”는 이른바 인플레이션 타깃(물가목표)론에 기초하고 있다. 금융완화를 통해 엔화 약세를 유도하면,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져 결국 경제 전반적으로 투자 증가와 임금 상승이라는 선순환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마구 구입함으로써 시장에 막대한 돈을 방출했음에도 불구하고(작년 12월 현재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량은 326조 엔(약 3260조 원)이었다), 기업이나 개인은 은행으로부터 그다지 대출을 받지 않았고 추가적으로 소비하지도 투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막대한 엔화 방출은 엔화 약세와 주가 상승을 유발, 대기업의 이익만을 극대화했다.

당연한 결과로서 일본 대기업들에 대한 외국자본의 침투가 본격화했다. ‘외자계(外資系) 기업’(외국자본의 주식보유가 3분의 1을 넘는 기업)이 된 일본 기업들은 오로지 당기순이익을 늘려 내부 유보와 주식배당을 늘리는 것에만 몰두하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실질 임금이 지난해 6월까지 26개월 연속해서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는 통계가 말해 주듯이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국내경제는 점점 쪼그라들었고 특히 지방경제는 더욱 만신창이가 됐다. 아베노믹스가 주장한 ‘낙수 효과’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모두들 아베노믹스를 통해 버블을 꿈꿨지만 거품이 생기기도 전에 일본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일본의 병’으로 대변되는 증상을 4가지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다.

첫째, 연금 재정이 파탄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주가 상승을 지상명제로 삼고 있다. 닛케이 평균 주가는 아베 내각이 출범한 2012년 12월 1만 395엔이었는데, 작년 7월에는 2만 841엔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주가가 떨어질 기색을 보이면 일본은행이 ETF(지수연동형 상장투자신탁 수익권)를 구입하고, 더욱이 GPIF(연금 적립금 관리운용 독립행정법인)와 3개의 공제연금(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 사립학교공제) 자금을 반복해서 마구 투입했다는 것이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24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아베노믹스의 2단계 방편인 새로운 세 개의 화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AP=뉴시스 자료사진

특히 GPIF는 아베 정부가 주식투자 비율을 올려놨기 때문에 작년 7~9월에는 약 8조 엔(약 80조 원)의 손실을 낸데 이어 지난해 연말부터 올 1월에 걸쳐 추가적으로 7조~10조 엔의 손실을 봤다. 일본 국민의 재산인 연금이 주가 부양에 이용되어 거덜이 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대로라면 향후 연금지급 수준을 다시 내려야할 사태가 발생할 여지가 커졌다.

둘째, 일본은행이나 GPIF에 의한 ‘관제(官製) 시장’이 형성되자 외국계 금융기관 등 외국인 투자가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이들은 일본 주식 보유비율을 대폭 올렸고, 일본기업에 대한 침투를 본격화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일본의 ‘관제 시장’은 수익이 보장된,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 투자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주주의 일본 주식 보유비율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 비약적으로 늘어 20%에 이르렀는데, 2014년도에는 31.7%에 달했다. 어느덧 일본 주식시장 거래액에서 외국인이 점하는 비중도 60%를 넘어섰다.

외국인 주주가 4할을 넘는 주요한 ‘외자계 기업’은 다음과 같다. 금융기관으로 미쓰이스미토모FG, 리소나홀딩스, 다이이치(第一)생명, 손포(損保)재팬닛폰코아, 부동산회사로 미쓰이 부동산, 미쓰비시 지소(地所), 제조업 회사로 닛산 자동차, 스즈키, 고마츠, 히다치 제작소, 소니, 닌텐도, 코니카미놀타, 츄가이(中外)제약 등이다. 하나같이 일본식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탄탄한 기업들이었다.

셋째, 기업 자체를 매매의 대상으로 보는 금융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자 기업들은 무엇보다 회사를 지키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떻게든 주가를 유지시키고자 했고, 매수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선 거액의 현금자산을 쌓아놓아야 했다. 어느덧 일본 기업들도 채산이 맞지 않는 부문은 처분하고 모자란 부문은 사들이는 등 단기적인 이익을 우선하는 미국식 경영에 익숙해졌다.

이렇게 일본 기업들이 확보한 이른바 내부 유보금은 2014년도에 약 354조 엔(약 3540조 원)에 달했다. 더구나 배당을 늘리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가를 불러들일 수 없고 주가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2014년도에만 순이익의 약 4할에 해당하는 13조 엔을 주주에게 환원했다. 반면, 주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근로자 임금은 삭감되었고 비정규직 고용이 크게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정부는 법인세 인하나 잔업수당 제로법안 등 노동법 개악을 추진, 대기업을 측면 지원했다. 주주이익 제일주의가 일본식 자본주의를 근본부터 흔들어댄 것이다.

기업은 살이 찌는데 근로자는 가난해졌다. 근로자가 가난하면 일본 경제의 60%를 점하는 소비의 부진은 극복할 수 없다.

여기에 2014년 4월 단행된 소비세율 인상(5%→8%)과 엔저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의 여파로 지난해 실질임금은 0.8%나 감소했다. 2012년부터 무려 4년째 감소 행진이다.

넷째, 일본 기업의 국제경쟁력 저하,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장인정신)’의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의해 엔화 약세가 급속하게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무역적자는 오히려 확대되었다.

예전 같으면 엔화가 내리면 수출이 증가, 지방의 공장에 발주가 쇄도하는 등 전국적으로 경기가 좋아졌지만,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 공장들이 아시아를 포함해 해외로 이전됐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제 근로자 해고와 기술자 유출이 일반화했다. 일본 총무성의 노동력조사 결과를 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는 215만 명이 늘었지만, 같은 기간 정규직은 오히려 20만 명이 줄어들었다. 현재 일본의 실업률은 3%로 사회 전체적으론 일손이 부족한 상태지만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저임금 비정규직인 셈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노믹스의 유일한 희망인 주가마저 무너지게 되면 리먼 쇼크 때와 같은 경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연초부터 이런 위기 상황이 현실화했다.

중국 경기 둔화,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이 엔화에 몰리면서 엔화 가치가 올랐다. 엔화 강세로 지난해 4/4분기 일본 기업들의 이익도 10% 가까이 떨어졌다. 아베노믹스의 버팀목이던 닛케이 지수도 지난주 이후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전대미문의 처방전을 내놨지만 하락세를 멈출 줄 모른다. 일본은행이 금융완화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후의 주가지수 상승분을 모두 까먹어버렸다. 사면초가에 처한 아베노믹스에 대한 사망선고가 이쪽저쪽에서 내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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