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 김홍국 편집위원

올 초만 해도 북한의 도발에 이은 미국의 제한적 폭격 등 전쟁 분위기였으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이어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평화의 길이 열리는 분위기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북미간 줄다리기와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낙관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트럼프, 미국 국익 동시에 한반도 평화 이바지해야 성공할 것

이같은 한반도의 상황에는 남북미 3국 세 지도자의 리더십과 협상력이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인물은 역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의 협상 방식은 강력하고도 변칙적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지도자가 약속을 번복하고 협박조의 언사를 통해 벼랑끝 전술을 사용하는가 하면, 상대와 사랑에 빠졌다는 레토릭을 구사하기도 한다. 놀라운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방식은 명확하면서도 혼란스럽다. 그의 협상 메시지는 정치적이면서도 동시에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가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트럼프가 사업가 시절 이야기하곤 했던 트럼프 거래 협상의 11가지 원칙을 보면 잘 드러난다. “크게 생각하라.”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 “지렛대를 사용하라.” “입지보다 전략에 주력하라.” “언론을 이용하라.”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라.” “희망은 크게, 비용은 적당히.” “사업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라.”는 것이다.

그는 부정적 사고의 능력을 믿고 상대를 불신하며 가장 나빠질 경우의 수를 언급하곤 한다. 최악의 상황을 늘 염두에 두고 있으며 따라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동시에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는 변덕과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

거래나 협상에서 치밀한 준비를 한 뒤 비난공세를 퍼부으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한순간 기회가 오면 먹잇감을 낚아채는 사냥꾼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협상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는 반면, 포기할 경우에는 아낌없이 패를 던지는 유형이다.

▲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한 모습을 이튿날인 13일 보도했다.[출처=노동신문/뉴시스]

이는 국제정치의 현실이 트럼프식 리얼리티쇼로 나타나는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는 속성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당신이 조금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하면 신문은 당신의 기사를 쓰게 된다. 따라서 나는 일을 조금 색다르게 처리했으며, 논쟁이 빚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내가 관여한 거래는 다소 허황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성격 덕분에 나는 아주 젊어서부터 꽤 사업 수완을 보였다. 신문이 나를 주목하게 되어 내 기사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됐다”라고 말하곤 했다.

앞으로도 트럼프는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동시에 이익을 최대화하는 전투적이고 강한 협상전략을 쓸 것이다. 인접국인 멕시코나 캐나다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어제까지 친구였던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이제는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좋은 관계라는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과감하게 상황을 역전시키려 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가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도 도덕적 판단보다는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강온전략에 따라 출렁거림이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김정은, 남과 협력해 평화와 개혁의 길에 나서야 성공할 것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협상방식도 독특하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아버지인 김정은 위원장과는 결이 다른 리더십과 협상력을 보여준다. 대외적으로 노출을 꺼리고 폐쇄적이면서도 도발적인 힘의 정치를 구사했던 그들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외부세계에 자신을 과감하게 노출하고 있다.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인 김 위원장의 행보와 언어 구사는 파격적이었고 대담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진솔하고 파격적인 발언으로 기존의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다른 김정은의 협상방식을 선보였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에서 밝은 표정으로 손을 잡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늘 위험을 인식하며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이용하던 할아버지-아버지와 달리 그는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과시하려는 듯 과감한 행보를 서슴지 않았다. 통큰 결단과 서구식 해법을 적극 수용하는 방식으로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위기에 놓인 북한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 북한의 광범위한 협상방식은 파괴적이며 음모적이었고, 도발적이면서 동시에 투쟁적이었다. 위협, 모욕, 아첨 아부, 방해 지연 등이 주된 발언 내용이었고, 상대방에게 늘 신속한 행동과 보상을 요구했다,

자신을 강자로 미화하기, 희생양으로 묘사하기, 비난 노출을 기다리기, 비난하며 우기기, 서로 싸우게 만들기, 권위에 문제점을 제기하기, 실제 협상장에서 대화 전제조건 내세우기, 관심 돌릴만한 사건 일으키기, 함정에 빠뜨려 궁지에 몰아넣고, 과거 결론으로 현안의제를 호도하기, 자신의 목표를 먼저 협상할 것을 우기기, 양보를 유약함으로 인식하기, 가공의 이슈를 협상칩으로 활용하기, 합의 이행에 거부권을 행사하기, 합의된 사안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하기, 벼랑끝 전술, 합의후 재해석하기, 대화 결렬 후 상대방에게 책임 전가하기, 국제적 책임회피하기 등 헤아릴 수 없는 단계적인 적대적 협상전술과 실행지침을 현장에서 실천하곤 했다.

그들과의 협상에서는 늘 속지 않기 위해 바짝 정신을 차려야했고, 통일전선전술로 이간질 당하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정은식 협상법은 달랐다. 도발과 기술개발을 통해 상황마다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폈고, 선제적으로 양보하고 통큰 결단으로 인식시키려는 노력도 나타났다. 진솔하게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이야기하면서 상황을 정리하는 과단성 있는 리더십을 과시하고 있다. 북한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그는 파격적인 발언과 외부세계로부터의 도움 요청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실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북미 협상과 경제 살리는 협상력-정치력 발휘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협상방식은 또 다르다. 그는 북미 양국처럼 벼랑끝 전술을 쓰기보다는 운전자론에서 나타나듯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중심추를 잡으면서 협상을 성공시켜야 하는 촉진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원칙을 지켜나가되, 상대와 소통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윈윈 상생의 협상이 그가 추구하고 있는 협상방식이다. 선제적으로 원칙을 천명하고 지속적으로 요청을 하되, 상대에 대해 진실성 있는 해법으로 보일 수 있도록 끈질긴 설득으로 상황을 호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 성공을 이끌어왔다.

▲ 청와대는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 및 한-불 정상 만찬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국빈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의 지인들을 소개받는 모습이다./청와대 제공

문재인 리더십은 겸손과 성실,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윈윈의 상생-소통 협상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가 평생 보여준 솔선수범과 섬김의 자세, 정의를 향한 변함없는 열정은 한국정치의 지형을 바꿨고, 전쟁 직전까지 간 트럼프-김정은 갈등을 협력과 개방의 길로 이끌어냈다.

모든 일을 방관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운전자이자 중재자며, 일의 성공을 만들어내는 촉진자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판문점선언과 가을공동선언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면서도, 모든 공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그의 겸손과 섬김은 완고한 트럼프마저 바꿔내고 있다.

그는 상황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대방들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전체적인 판의 그림을 주도적으로 그려나가는 협상 유형을 보여 왔다.

한때 80%대를 넘나드는 높은 대통령 지지율과 촛불혁명으로 상징되는 시대정신, 트럼프와 가진 지속적인 협력과 대화를 바탕으로 협상력을 높이는데 주력해왔다,

그 결과는 대통령 취임 후 유례 없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주선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북한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제재 및 체제붕괴 위기의 북한에 대한 생산적인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협상의 우위를 점하는 현명한 전략전술도 돋보인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을 주선하는 등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위한 주도적인 리더십과 협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세 지도자의 협력과 노력 통해 한반도-세계 평화 만들어야

이제 향후 과제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와 함께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가 어떻게 맞물리느냐다. 북한은 비핵화의 길을 갈 수 있지만,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체제의 안전과 경제발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의 결심은 선 것으로 보이지만, 주변의 지정학적 상황이 나빠지고 미국의 일방적 양보 요구가 계속될 경우 그가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것은 불안요소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부동반으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다.【베이징=AP/뉴시스 자료사진】

변덕과 불신으로 가득한 트럼프의 정책결정 과정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탄핵까지 거론되는 미국 국내의 정치적 요소와 중국과의 무역전쟁 등 상황이 악화될 경우 북한문제와 남북관계는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민생이 어려운 데다 극렬한 묻지마반대에 나선 야당과의 국회 관계를 풀지 못한다면 또 다른 어려움을 맞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한국경제가 침체 상황을 보이고 있으나, 상황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민 통합과 집중적인 경제력 회복에 나선다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17일 공개한 국가 경쟁력 평가 결과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140개 국가 중 15위를 기록했고, 거시경제 안정성, 정보통신기술(ICT) 보급 등 2개 분야는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발전의 가능성을 가진 국가로 평가됐다.

문제는 생산물 시장과 노동시장의 효율성이 낮고 구조개혁과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능력과 함께 기업과 시장도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위해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격렬한 수구냉전 세력의 반발을 국민의 힘과 협치적 국정운영을 통해 정치적 협력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낸다면 성공의 길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촛불혁명과 시민들의 사랑과 지지가 여전한 데다, 프란치스코 교황 등 세계사에 영향력이 큰 각국 지도자들의 지지와 협력을 받고 있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지금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만들어낼 호기임에는 틀림 없다.

한반도가 냉전과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와 협력, 화해와 번영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과거로의 회귀를 할 것인가? 치열한 지정학적 국제관계와 세 지도자의 리더십과 협상력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한반도와 동북아의 운명이 달렸다.

세 지도자가 뛰어난 협상력과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성취와 성공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는 이정표를 세우길 기원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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