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일본은행(BOJ)이 1월 29일 현재 0.1%이던 기준금리를 다음달 16일부터 –0.1%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시중은행이 일본은행에 신규로 돈을 맡기면 이자가 아니라 연간 0.1%의 수수료(보관료)를 물리게 된다. 일본 최초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다.

▲ 이동준 교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세계 금융시장 리스크로 기업 실적 악화와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면서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 가능성을 일축해온 터라 일본은 물론 세계 곳곳의 시장이 출렁거렸다.

특히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2% 급락하며 121엔 선을 뚫고 올랐고,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강한 랠리를 연출했다.

일본은행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카드가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처럼 비쳐진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자금을 예치하면 수수료를 뗄 테니 돈을 예치하지 말고 기업이나 가계 대출에 적극 나서라는 뜻이다. 실물경제로 돈이 풀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통화가치 약세도 유도해 수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꺼낸 것은 일종의 극약 처방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려고 갖은 처방전을 내놨지만 경제성장률은 0%를 오르락내리락하고,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 탈출이 쉽지 않자 전례 없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하면서 ⧍재정확대, ⧍금융완화, ⧍구조개혁이라는 ‘3개의 화살’을 앞세워 아베노믹스에 시동을 걸었다. 엔화는 약세를 거듭하며 수출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리며 일본 경제는 잠깐 활력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 해법이 못되는 가운데 일본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광공업생산은 전달에 비해 1.4% 감소하며 두 달 연속 하락했다.

실질소비지출도 전년 동기 대비 4.4% 줄었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에 비해 0.2% 오르는 데 그쳤다.

▲ 일본의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도입 소식이 들려온 29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 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보다 9.40원 내린 1199.10원을 나타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물가상승률 목표치 2%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하반기 일본의 부동산 거래가 31% 감소하는 등 아베노믹스의 ‘돈 풀기’ 정책으로 유일하게 ‘성과’를 내는듯했던 집값 인플레이션마저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연초 중국발 주가 폭락과 국제 유가 하락으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경제 회복의 불씨가 아예 꺼져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특히 신흥국들의 경제가 불안해지자 ‘안전 자산’으로 불리는 엔화 수요가 급증해 오히려 달러보다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기도 했다.

따라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제로 금리에다 연간 80조엔(약 798조원) 규모의 양적완화 등을 이미 동원한 상태에서 꺼낸 최후의 카드라고 볼 수 있다. 돈을 무한정 풀어 투자와 소비를 진작시킨다는 데 아베 정권과 일본은행의 생각이 일치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의 속살을 살펴보면 사실상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행은 금융권 지급준비금 가운데 기초 잔액에 대해서는 0.1%의 금리를 적용하고, 매크로 가산 잔액에 대해서는 제로금리를, 이 밖에 초과 지준금에 대해서는 마이너스 0.1%의 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금리의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 잔액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인 것을 의미한다. 기초 잔액이 218조 엔, 매크로 가산 잔액이 총 40조에 이르는 반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해야 하는 소위 정책 금리 잔액은 거의 제로 수준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라는 보다 공격적인 부양책을 추진한 의미는 간단치 않다.

이는 기존의 양적완화(QE) 정책에서 금리인하 정책으로의 사실상의 레짐 전환에 해당한다.

또, 거꾸로 보면 일본은행이 이런 정책변환에 나선 것은 기존의 비전통적 자산 매입 프로그램의 실패를 자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기존의 양적완화만으로는 인플레이션 2%를 달성하는 데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구로다 총재는 현재 0%대 초반을 기록 중인 물가상승률을 2%로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다”고 추가적인 양적완화 조치의 가능성도 여전히 열어뒀다.

금리인하 정책을 새롭게 동원하면서도 지금까지의 양적완화 정책까지 유지하겠다는 것은 일견 총력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시장에 심각한 혼선을 줄 여지가 있다.

사실 이런 일종의 ‘꼼수’는 일본은행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도 양적완화의 냉정한 평가에서 낙제점을 면할 수 없다.

유럽중앙은행은 양적완화로 충분하지 않자 2014년 기준금리 중 초단기 수신금리를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만든 데 이어 지난해 12월 이를 –0.3%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올해 봄 물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중앙은행의 부양책이 상품가격 하락에 따른 파장을 상쇄하지 못하는 정황을 보여준다. 유로존 1월 소비자물가는 연율 기준으로 0.4% 상승해 2014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이는 정책자들의 목표치인 2.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나자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4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0.7%로 후퇴했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은 2.4%로 2014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고, 2010년 2.1%에서 0.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7년간의 제로금리와 수조 달러에 이르는 양적완화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기에는 초라해 보인다.

주요국이 앞 다퉈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꺼내 드는 것은 유동성을 가계와 기업으로 공급해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키는 한편 실물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언뜻 경제논리에 부합하는 전략으로도 보이지만 이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것으로, 자칫하면 자폭 행위가 될 수 있다.

임금상승이 정체된 상황에 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은 무엇보다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시장에 돈을 아무리 풀더라도 기업이나 은행이 투자나 대출을 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기업은 투자 수요가 없으면 결코 투자하지 않고,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권의 수익악화를 부채질할 수 있다.

이런 정책이 약발이 먹히지 않아 장기화하게 되면 디플레이션 탈출은커녕 경제 전체가 파탄날 수도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 사이에 환율전쟁을 더욱 부추기는 행위는 글로벌 금융시스템과 경제 전반에 리스크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일본은행까지 확산됐는데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를 비난할 명분도 희석됐다. 이런 통화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많은 신흥국들은 경상수지가 악화돼 외국자본의 유출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이런 통화경쟁과 눈치 보기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책자들의 시각이 처음부터 잘못됐을 수도 있다.

물가는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척도일 뿐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선 것은 멀쩡한 몸에 마약을 투여하는 것과도 같다.

각국 중앙은행은 유동성 공급을 위해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의 수위를 높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들이 보유한 엄청난 규모의 현금 자산을 방출시키는 묘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현금을 움직여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높이도록 유도하지 않고서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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