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올해 노벨평화상은 콩고의 의사인 드니 무퀘게(63)와 이라크 북부 니네베주에 살던 야디지족 출신인 여성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25)에게 돌아갔다.

▲ 남영진 논설고문

야디지족은 이라크, 시리아의 수니파 이슬람국가(IS) 무장조직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14년부터 간간이 국제뉴스에 등장했다.

IS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과 모술, 니네베주 등을 먼저 점령한 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이들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거부하면 살해하거나 노예로 삼았다.

니네베라면 기독교도들에게는 꽤 친근한 지명이다. 구약성서 <요나서>에 요나가 야훼의 명령으로 니네베성읍에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곧 멸망한다”고 외쳐 왕을 비롯해 성민들이 자루옷을 입고 단식하며 회개해서 멸망을 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프랑스 파리의 루부르 박물관에는 벨기에의 화가 마틴 데 보스(Martin de Vos)가 16세기에 그린 <니네베로 가라고 요나에게 명령하는 신>이라는 소묘작품이 전시돼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예수가 바리사이파들이 계속 기적을 요구하자 “나는 요나의 기적밖에 보여줄게 없다”며 니네베 성민들의 회개를 언급한다.

요나서에는 요나가 니네베성을 가로지르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는 큰 성이다.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티그리트시에서 모술사이에 있는 큰 평원의 중심지다.

▲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성폭행 여성피해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 데니스 무퀘게와 이라크 야지드족 여성운동가 나디아 무라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했을 당시의 무라드. 【빈=AP/뉴시스】

유엔 시리아인권 조사위원회는 2015년 보고서에서 IS 무장조직이 2014년 8월부터 니네베주의 신자르 산악지대를 장악하고 이슬람교 개종을 거부한 남성과 소년들을 즉결 처형하는 등 야디지족 수 백 명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IS는 3200여 명의 야디지족 여성과 아이들을 붙잡아 여성들은 성노예로, 소년들은 전사로 키웠다고 보고했다. 살아남은 야디지족들은 산악지대로 피신해 식량과 식수, 의약품 부족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전했다.

IS는 고대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계열의 종교를 신봉하는 야디지족을 "우상 숭배자들"이라며 짓밟았다. 남성들은 학살하고 여성들은 감금한 채 '성 노예'로 부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소녀들은 ISIL 전사들에게 팔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달아나다 붙잡히면 구타와 집단 강간 등 극도의 폭력을 당했다.

이때 20살의 처녀 무라드는 모술지역에 6700여명의 여성과 아이들과 함께 붙잡혀 있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이라크 북부 난민캠프로 도망쳤다.

IS는 야디지족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발을 모조리 빼앗았는데 무라드는 우연히 버려진 신발을 주워 감춰뒀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에 성공했다. 달아난 사람들은 신자르 산악지대에 고립돼 있었다.

2015년 11월에는 이라크 당국이 이곳에서 야디지족 여성 수십 명이 IS전사들에게 살해돼 집단 매장된 곳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당국은 “40∼80대 야디지족 여성 78명이 이곳에 집단 매장돼 있었다”며 “IS가 어린 여성만을 성노예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IS는 5000여명의 남자들은 살해하고 여성들은 개종을 강요하고 성노예로 삼아 탈출하다 붙잡히면 능욕하고 인신매매까지 했다.

▲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성폭행 여성피해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 드니 무퀘게와 이라크 야지드족 여성운동가 나디아 무라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2014년 2월 26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당시의 무퀘게(왼쪽)의 모습.【워싱턴 =AP/뉴시스】

탈출한 무라드는 이듬해 난민 캠프를 찾은 벨기에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전 세계에 참상을 알렸다. 2015년 12월 유엔 안보리 연설에서 IS 납치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그들은 우리를 모욕하고 더럽혔다"면서 “심지어 내가 졸도할 때까지 성폭력을 가했다. 제발 IS를 완전히 제거해달라"며 국제사회의 응징을 촉구했다. 연설 후 인신매매 피해자인 난민 여성과 소녀들의 참상을 알리는 유엔 친선대사로 활동해왔다.

2015년 독일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무라드는 2016년 "나는 IS 대원 10명 이상의 성 노예가 됐지만 그건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다른 여성들은 20~30명을 상대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IS를 민족 학살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고 국제사회가 IS를 처벌해줄 것을 호소해왔다. 이 같은 공로로 무라드는 2016년 이번에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한 무퀘게와 함께 서울평화상을 받고 그해 유럽인권상인 사하로프상도 받았다. 2016년 말에는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위대한 월드리더 50인’에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미국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의 부인인 인권 변호사 아말 클루니의 도움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IS에 붙잡혀 있는 야지디 여성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무라드는 자서전 ‘마지막 소녀’를 발간해 그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며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무라드는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모든 이라크인, 쿠르드족, 소수자, 전 세계에서 성폭력으로부터의 생존자들과 노벨평화상을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린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비를 막기 위한 우비가 씌워져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무퀘게는 수상 직후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을 비롯한 세계인이 성폭력에 맞설 책임이 있다”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염두에 둔 듯 발언을 했다. 무퀘게는 2016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방한했을 때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을 봤는데 마음 깊이 박혔다”고 말한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 군인들이 점령지에서 수십 만 명의 여성들을 납치, 매춘을 강요했다”며 20세기에 일어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한 것이 오늘날의 전쟁 성범죄로 계속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노르웨이의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 ‘한방’ 먹인 셈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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