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설악산의 명물 울산바위가 젊어졌다.

▲ 남영진 논설고문

30여 년 전 군사도로였던 미시령을 일반에 개방하자 설악산을 찾는 외지인들은 고개를 오르면서 우뚝 선 바위산을 보며 그 위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산중턱까지 나무가 들어서 미시령 쪽에서 보면 바위의 절반정도가 숲으로 가려져 있다. 푸른 숲으로 덮여 색깔은 젊어졌으나 화강암의 산 기운이 하늘을 찌르던 위용과 기품은 많이 약해져 보인다.

해발 873m의 울산바위는 사방이 절벽으로, 둘레가 4km에 달하며 정상에서 능선으로 6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건너갈 수 있다.

울산바위는 경남 울산의 할머니가 바위를 지고 올라오다 화암사 앞의 수바위와 영랑호 옆에 범바위를 떨어뜨리고 내려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외 울타리 같아서, 소리를 내는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3가지 설이 있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 때 산 전체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아 일명 ‘천후산’(天吼山)이라고까지 불렸다. 울산바위 허리에 구름이 휘감기면 미시령 쪽에서 보면 마치 구름 꽃송이가 피어 있는 것 같다.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오르는 미시령의 해발 고도가 767m이니 2006년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고갯길 정상 휴게소에 내리면 동해 쪽에서 울산바위를 거쳐 불어오는 바람이 거셌다.

70~80년대에는 설악산을 가려면 한계령과 진부령 고개를 이용했다. 오색약수터나 백담사, 장수대의 내설악으로 가기위해 양양으로 통하는 한계령을 넘거나 진부령을 넘어 속초에 가서 외설악부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미시령이 개방돼 속초로 가는 길은 단축됐지만 겨울에 눈이 오면 태백산맥 고개들 중 가장 먼저 통제됐다.

70~80년대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내설악, 외설악 어디서 출발하든지 소청, 중청을 거쳐 대청봉을 오르는 게 꿈이었다.

▲ 설악산 대청봉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풍경이 잘 그려진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뉴시스 자료사진

대청을 한번 오른 뒤엔 설악동에서 신흥사, 비선대, 천불동 계곡 쪽으로 올라가지 않고 흔들바위를 거쳐 울산바위를 올라보는 코스를 택했다. 흔들바위 쪽의 등산코스는 철 계단이나 밧줄을 타고 오르기 때문에 그 위용을 느끼지는 못했다. 남한에서 가장 멋진 암괴인 울산바위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미시령이 개방된 후다.

지난해 가을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고교 후배와 함께 미시령터널을 넘어 울산바위가 보이는 대명콘도에 묵은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의 울산바위를 보던 이 후배가 “규모는 작지만 미국 애리조나주의 그랜드캐니언이나 기가 세다는 세도나 바위에 못지않다”고 감탄했다. 20여 년 전 중학생인 두 딸을 데리고 깎아지른 바위에 박힌 빨간 칠을 한 철계단을 타고 올랐는데 내려와서 “빨간색만 보면 무서워”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대학 동기가 35년 대기업에 근무하다 임원을 지내고 은퇴해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정리하고 속초 영랑호 옆에 새로 지은 고층아파트로 이사 갔다.

▲ 영랑호 주변 풍경

딸은 결혼해 서울에 살고 있고 아들은 호주에서 취직해 돈 벌고 있으니 부부가 지내기엔 안성맞춤이란다. 서울의 경조사 땐 30분 간격으로 있는 서울-양양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이면 올라와 일 보고 밤에 내려간다. 아침 저녁 영랑호수가의 산책로를 부부가 함께 걷고 도보 5분 거리의 9홀 골프장에서 운동도 한다.문제는 좀 심심하단다. 바쁜 직장생활이 몸에 배었고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는 시간이 많아 집에서 있는 게 고역이다.

그러나 교사 출신의 부인은 독서가 취미라 걸어서 10분 거리의 속초문화관에 가서 최신 신간서적과 잡지 등을 보곤 한다. 벌써 가까워진 이웃과 2층 커피숍에서 담소도 나누고 지하1층 식당에서 함께 식사도 즐긴다. 은퇴 후 남성들이 더 부적응이다. 근처 텃밭도 가꾸어보고 등산도 해보지만 몸에 익기가 쉽지 않다.

영랑호 주위의 산책로가 좋다기에 지난 8월말 서울에서 친구 부부 2쌍이 이 친구의 집에서 2박했다. 서울서 출발해 양양고속도로에서 속초로 빠져나오니 2시간여 만에 아파트에 닿았다. 30층 고층에 18층이라 바로 앞의 영랑호 숲과 호수물은 집안 정원안에 있는 셈이다. 멀리 속초 해수욕장과 청초호 옆 함경도 피난민 ‘아바이들’이 사는 거리도 보인다. 멀리 울산바위도 보였는데 옛 바위산이 아니었다.

둘째날 울산바위를 제대로 보기 위해 미시령도로 입구에서 대명콘도를 끼고 돌아 잼버리세계대회를 치렀던 야영장을 지나 화암사를 찾았다.

울산바위의 딸이라는 수바위에 등산객들이 올라가 있다. 한창 새로 만드는 관음보살상을 보고 녹차 한잔을 마시고 대명콘도로 내려와 울산바위를 쳐다보는데 아무래도 전과 다르다. 3분의 2까지 숲이 우거져 윗부분만 바위가 보인다.

▲ 대명콘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70년대 이후 난방과 취사가 연탄과 도시가스로 바뀌면서 전국의 산이 모두 푸르러졌다.

그런데 한반도 온난화 영향이지 남방 과일인 감의 북방한계선이 강릉까지였다는데 속초까지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저녁에 횟집에서 오징어가 귀해 한 마리에 1만원이니 ‘주문진 오징어’란 말이 없어졌다. 명태가 없어져 이제 인공부화를 해서 가두리양식을 하고 있다니 생태변화가 심각 하다. 울산바위 바로 아래에서 정상까지는 바위높이만 200여m, 30~40분이 걸리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정상 전망대서 대청, 중청봉과 천불동계곡, 화채능선, 북주릉을 아우르는 전망이 탁 트여 동해와 달마봉, 학사평저수지 일대도 보인다.

구 미시령 휴게소는 2011년부터 노후화로 인해 폐쇄됐다가 휴게소 주차장은 2014년 5월부터 다시 쓰인다. 미시령터널과 양양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미시령 옛길을 가보지 못했다. 다음엔 쉬엄쉬엄 올라가 휴게소 주차장에서 울산바위가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해볼 터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