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중동산 두바이유에 이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배럴당 30달러가 붕괴되면서 국제원유가격이 12년 만에 최저치로 미끄러졌다.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다음 달 인도분 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78달러(5.71%) 하락한 29.42달러를 기록했다.

▲ 이동준 교수

최근의 유가 하락은 물론 ▲ 중국 등 신흥국의 원유 수요 감소 ▲ 거의 제어불능 상태에 빠진 산유국의 공급 과잉이 빚은 결과이다.

이 같은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의 스파이럴(소용돌이)은 세계경제만이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새로운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석유의 시대는 돌(石)이 없어지지 않는 한 결코 끝나지 않았다.” 1970년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시대를 구축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마니 석유장관이 말한 유명한 경구이다.

사우디 당국자는 지금 이 말을 되새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한다. 생산 여력 또한 다른 국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배럴당 30달러가 붕괴한 유가는 국가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사우디가 지금 수준으로 금융 자산을 갉아먹으면 5년 후에는 곳간이 바닥날 수밖에 없다. 이미 사우디 정부는 전기나 가솔린 가격을 인상했다. 복지나 교육을 100% 국가가 책임져온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 뉴시스 자료사진

그 결과로서 이른바 ‘오일 머니의 역류’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가 하락이 멈추지 않으면 산유국의 통화 하락이나 기업의 경영 파탄 등으로 인한 금융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

세계의 투자가들은 시장의 혼란을 두려워해 리스크가 있는 자산에 대한 투자를 회피한다. 투자가가 사라진 주식시장은 투기적인 매매로 폭락할 수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소비국의 무역 이익은 당연히 확대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미 저성장 기조에 진입한 한국 등에게 유가 하락은 설비투자나 개인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유가가 10% 하락하면 세계의 광공업 생산이 6개월 후에 0.76% 감소한다는 예측도 있다.

2000년대 국제 원유 가격은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국이 왕성하게 석유를 구매함으로써 견인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라고 부르는 경제성장률 하향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석유는 물론이고 철광석, 석탄 등 국제 자원가격은 일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만, 석유의 경우 1년 6개월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거의 제트코스터와 같은 급락현상을 보였고, 여기에는 셰일가스 혁명이 영향을 미쳤다.

에너지 가격 분석의 일인자로 통하는 다니엘 야긴 씨는 “4, 5년 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미국을 기점으로 하는 공급 혁명은 원유의 수급 균형만이 아니라 지정학적인 변수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갑자기 대규모 산유국으로 등장한 미국에 대해 사우디는 경계 의식을 거두지 않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 등 OPEC 산유국들은 서로 협조는커녕 으르렁거리고 있고, 비(非) OPEC 산유국의 우두머리격인 러시아와도 관계가 좋지 않다.

시리아 내전이나 이슬람 과격파 IS(이슬람국가)의 세력 확산 등으로 중동은 거의 아노미 상태로 치닫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정책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 및 유럽과 러시아 간의 대립은 쉬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 러시아, 사우디 간의 주도권 다툼이 국제 원유시장의 불투명성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제 원유가격은 2014년 여름 하락을 시작했을 때 제시된 전망보다 장기간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득세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국은 12일 올해 WTI의 예상평균가격을 38.54 달러로 산정, 종래 예상치였던 50.89 달러보다 크게 하향 수정했다. 내년도 평균 47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원유가격을 안정화시킬 새로운 질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속적인 유가 하락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셰일가스의 시대’가 앞으로도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년대에 들어가면 셰일가스의 생산량은 바닥을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IEA의 화이티 비롤 사무총장은 “원유가격 하락이 10년 단위로 지속된다면 원유의 중동 의존도는 7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지금 원전 개발을 멈추면 장래에 급격하게 가격이 오를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원유가격 하락은 소비국에겐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가격 하락의 장기화는 언젠가는 파열할 수밖에 없는 위험성을 축적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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