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한국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라틴어는 2개 정도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

전장에서 승리한 장군이 돌아오면 개선문을 통과해 로마시내를 가두 행진한다. 그 앞에 노예가 ‘메멘토 모리’(죽음을 생각하라)라는 표장을 들고 나선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라는 뜻일 게다.

여기에 젊은이들을 위한 경구인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이다. 합쳐서 ‘삶과 죽음’이다. 모든 생물체의 운명이다.

지난 여름은 114년만의 호된 더위와 가뭄, 그리고 태풍, 호우 등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더위를 못 이기고 돌아가신 주위의 지인들이 10분이 넘었다.

보통 노인들은 환절기에 많이 돌아가셨는데 이번에는 어르신들이 버티기엔 더위가 너무 심해 여름 한창 철에 돌아가셨다.

‘100세 시대’가 실감났다. 풍요를 구가하던 로마시대나 가난과 질병, 전쟁으로 점철된 조선시대에는 평균 수명이 40세 초반이었지만 지금은 80세로 2배 이상 수명이 늘어났다.

우리 나이가 60대 중반이니 친구, 친지의 친부모 빙부모의 부음은 거의 90세를 넘긴 분들이다. 이젠 간간이 친구들 본인이나 부인의 상에 다녀올 정도다.

대학 동기가 이번 여름 마지막까지 버티다 죽었다. 지난 4월에 상처한 뒤 대장암이 발병돼 저 세상으로 갔다. 늦게 장가가 이제 대학생인 아들과 두 살 위의 누나, 남매가 상가를 지키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친구 부부가 눈을 감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했다.

이번 여름에 돌아가신 처의 대고모가 100세였고 대학친구의 아버지가 99세(白壽)였다.

90수 이상의 상가에서는 그동안 병치레나 오래 모신 상가 분위기라 그런지 침통하거나 슬픈 분위기가 아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상가가 생기면 집안 조문 방에 빈소를 차렸다. 문상을 마친 조문객들은 멍석 깔린 마당에서 법석였다. 낮에는 천막과 차양을 치고 먹고 마시면서 3일장을 진하게 치렀다. 향냄새가 진동하지만 동네전체로 보면 ‘잔치’에 가까웠다.

나는 18년 전 부친, 12년 전 모친 그리고 10여 년 전 장인 장모까지 보낸 ‘고아’다. 그때 오신 조문객에 대한 답례로 다른 상가에 가는 것이 익숙하다.

관혼상제(冠婚喪祭)라고 하듯 모든 인간이나 가정이 겪는 의례적인 일이다. 어릴 때 생로병사(生老病死)라기에 “왜 생병로사인가? 왜 병을 늙은 후에 겪는 것으로 했을까”라고 의문이 들었다.

살다보니 부음에 숙환(宿患), 노환(老患)으로 나오듯이 노화(老化)가 병이란다. 암이 아니더라도 병으로 죽는 것이다.

요즘은 곡(哭)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고향에서는 상을 당한 가족, 친척들이 모시 상복을 입고 머리에 갈건(葛巾)에다 새끼줄을 동여매고 허리도 같이 묶었다.

▲ 강원 영월군 지역 주민들이 전통 장례절차인 상여를 메고 곡소리를 내며 운구하는 민속예술시연을 진행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상주는 물푸레나무나 미루나무 등 가벼운 나무막대기를 짚고 허리를 숙여 조문객을 맞았다. 지금은 병원 장례식장이나 전문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조문객들이 영정 앞에서 너무 오래 통곡하거나 오열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란다.

조선시대에는 상주들이 힘들어 목청 좋은 친지에게 대곡(代哭)을 부탁해 ‘곡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대곡이 민간에서 행해진 것과 달리 궁중과 귀족들은 장례 때 곡성(哭聲)이 끊어지지 않도록 곡비(哭婢)를 쓰기도 했다. 곡을 하는 여자 머슴인 비자(婢子). 왕실에선 궁인(宮人)을, 사대부는 여자 노비(婢)를 시켰으나 여의치 않을 때는 민가의 여자를 고용하기도 했다.

전에는 망자가 80세만 넘겨도 조문객들은 ‘호상’(好喪)이라는 말을 썼다. 18년 전 아버지는 고향인 충북 영동의 직지사 앞 식당에서 큰어머니(형수)의 8순 잔치를 하고 쓰러지셨다. 50여명의 가족, 친지들이 같이 식사를 하고 나와 개울 앞 벤치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셔 119차로 김천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돌아가셨다.

서울로 모시기가 어려웠다. 고향 성당 신부님께 부탁해 지하실에 빈소를 차렸다. 성당 생긴지 50년간 3번째 장례식이었다. 고향은 물론 서울에서 친척 친지들이 몰려와 조의를 표했다. 그때 가장 귀에 거슬리는 말이 ‘호상’이란 말이었다.

고생만 하고 제대로 호강 한번 못시켜 드린 아버지에게 죄송스런 마음에 사진만 쳐다보면 눈물이 났다. 그런데 조문을 오셔서 “이게 호상이야. 이 분은 죽을 복을 타고 났네. 가족 친척들 다 모아놓고 갔으니 이런 복이 어디 있나?”라며 우리들을 위로했다.

나이 80세면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수를 누렸다지만 건강하시던 분이 졸지에 돌아가셔서 아쉬움이 많은데 주위에서는 호상이라며 위로했다. 그 뜻이야 알겠지만... 앞으로 어느 상가에서든 가족들에게 ‘호상’이란 말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상이야 친구들끼리 몰려가면 조문하고 바로 쏘주잔을 나누며 동창회 분위기가 된다. 영화 ‘축제’에서처럼 멀리 떨어져 있던 유가족들끼리 오랜만에 만나 과거의 원한과 알력 등이 드러나 한판 싸우기도 한다.

더한 경우는 바로 상속이나 재산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릴 때 동네 상가에서는 이웃 간의 묵은 원한 때문에 말싸움을 하다가 화투판을 엎고 술상을 뒤집는 것을 보았다. 옆에서 말리고해서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초상이 끝났다.

지금은 ‘병원 순위가 병을 잘 고치는 게 아니라 깨끗하고 다니기 편한 장례식장 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학병원 장례식장이 잘 되어 있다.

보통 자식들 직장의 상조회나 미리 들어둔 상조회사 등에서 나온 전문가들이 제복을 입고 빈틈없이 진행한다. 8월 중순 고향 친구의 병원장례식장에서 어릴 때 같이 자랐던 선후배들을 만났다. 이들은 오랫동안 ‘상조계’를 해온 계꾼들이었다. 부모님들의 연세가 높을수록 열심히 다녀야 한단다. 아직도 선산에 매장을 하는 자식들은 관을 운구해야할 상여꾼이 필요해 서로 ‘품앗이’를 하는 거란다.

▲ 경기도 파주 용미리 추모의 숲 수목장에서 가족들이 성묘를 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이제는 매장이 많이 줄었다. 집성촌의 선산도 많이 없어져 묘를 만들 장소가 마땅찮다. 자식들이 거의 도시 생활을 하니 성묘, 벌초하기도 힘들다. 두 자녀나 한 자녀이니 다음 세대는 거의 성묘가 힘들 거다.

그래서 공원묘지나 가족 납골당을 만들고 화장을 해서 ‘수목장’까지 늘어났다. 설날, 추석 등 명절 외에는 친척들이 모여 제사를 드리는 것도 우리세대가 거의 끝물일 거다.

기독교인들은 추도예배나 미사로 대체하고 있다. 병원 장례식장에 십자가가 보이면 영정사진을 보고 절을 하는 것이 전부다. 대곡이나 호상이란 말이 사라지고 있다.

2천 년 전 로마시대의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삶과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종교적 경구다. 중동에서 시작된 유태교와 불교와 기독교가 함께 어우러져 만든 최고의 인생 표어인 것 같다.

성경에 “웃는 자가 울게 될 것이며 우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구절이 사람의 삶이 거의 행복과 불행의 반반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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