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역사는 늘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간다.

때로는 성공의 역사를 쌓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와 비극을 이끌어내는 역사도 있다.

▲ 김홍국 편집위원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과 재난의 기록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격동의 땅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말처럼 “인류의 역사는 커다란 하나가 되기 위한 행진이다”라는 말이 더욱 큰 울림을 갖고 다가온다.

한반도는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친 뒤 광복을 맞았지만, 분단에 이은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남과 북 모두 지난 65년 동안 슬픈 이별과 분노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올해 무술년 추석을 맞는 우리 한민족은 어느 때보다 기대와 긴장감이 높은 한가위 명절을 보내고 있다.

9.19 가을 평양공동선언을 내놓은 제5차 남북 정상회담의 감동적인 순간과 함께 한미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숨가쁜 외교안보 상황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항구적 평화정착 위한 평양공동선언으로 새 출발

그 출발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발표한 ‘9월 평양공동선언’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을 가졌다.

두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도 함께 채택했다.

남북의 ‘종전선언’으로 평가받고 있는 군사분야 합의서 채택으로 항구적 평화의 새 역사를 썼으며, 4.27 판문점선언에 이어 한반도 평화에 돌이킬 수 없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에 비핵화 의지를 육성으로 밝힌 것과 김 위원장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내에 서울을 답방하기로 한 것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중대한 성과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에서 밝은 표정으로 손을 잡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두 정상은 이번 평양공동선언에서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가기로 했다.

부속합의서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으로 평가할만하며,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세계인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한반도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특히 두 정상이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뛰어넘는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밝힌 것 역시 세계평화를 향한 큰 진전이다.

문 대통령이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과 북한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핵화 연설을 하고, 두 정상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찾아 평화와 번영의 길을 다짐한 것은 커다란 역사적 진전을 보여준다.

특히 평양공동선언은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 제2항에서 기존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훨씬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4.27판문점선언은 "10·4선언(2007년)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취해나가기로 했다"는 선언적 문구에 그쳤다.

그러나 평양공동선언은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연내 개최하고 △조건이 마련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문제를 협의하며 △자연생태계의 보호·복원을 위한 환경협력을 추진하고 산림협력이 성과를 내도록 노력한다는 3가지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당장 경협을 위한 현지조사, 공동연구, 사업계획 수립 등은 제재 해제 전이라도 어느 정도 진행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정세가 개선되고 북미 관계 정상화가 가시화되면 북한 개발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신북방정책의 본격화를 통해 그동안 고전해온 우리 경제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진전이다.

◇ 유엔총회와 한미정상회담, 트럼프의 적극적 역할 기대

이제 그 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23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방문하는 유엔총회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질 한-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다.

두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비핵화 문제,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주요 의제를 집중 논의하게 된다.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73차 유엔총회 참석차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방북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 전달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듣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결단한다면,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은 급진전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조속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밝힌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 등이 미국이 요구해온 불가역적 핵 폐기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연내 종전선언 등 대북 적대관계 종식으로 나갈 것을 요청할 전망이다.

회담의 성패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담긴 내용의 수위와 진정성,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수용 여부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협상은 각 주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성공을 위한 윈윈협상으로의 상생정신이다. 북한의 적극적인 비핵화 노력도 필요하지만, 미국 역시 평양공동선언과 김 위원장 메시지를 긍정 평가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여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회담이 상생의 윈윈협상으로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밝혔고, 문 대통령과의 협의를 통해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처를 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평양공동선언에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에서 미국과 협의한 메시지를 전하고 김 위원장으로부터 전향적인 자세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이제 공을 넘겨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에서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드는 마지막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 역사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것, 한반도 평화에서 시작돼야

역사의 진전은 늘 과거를 돌아보고 통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자는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 인간사는 선대의 그것을 닮게 되나니, 이는 그 사건들이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든 현재를 사는 사람이든 동일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그로써 필연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한 모습을 13일 보도했다.[출처=노동신문/뉴시스]

20세기의 냉전 시기에 이어진 이념의 대립과 분단, 그로 인한 무수한 갈등과 소모전을 딛고, 이제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할 때다. 인도의 총리였던 네루는 “역사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마음이 끌리고 흥미있는 것은 역사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새 역사를 만드는 일에 문 대통령, 김 위원장과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과 주변 국가들이 발 벗고 나서주길 기대한다. 온 겨레가 손잡고 세계인들의 도움을 받아, 백두산 천지에서 발흥한 화해와 번영의 기운으로 한반도와 세계에 평화의 태양이 떠오르게 해야 할 것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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