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결혼 후 남편이나 아내의 한쪽 성씨를 따르는 일본의 부부 동성(同姓) 제도가 합헌이라는 일본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12월 16일 일본 최고재판소(헌법재판소의 기능을 겸하는 대법원) 대법정(전원합의체)은 민법 750조에 규정된 ‘부부동성제’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민법 750조는 ‘부부는 혼인 시에 정해진 바에 따라 부(夫, 남편) 혹은 처(妻)의 씨(氏)를 칭(称)한다’고 규정해 부부가 같은 성씨를 쓰는 것을 강제하고 있다. 또 호적법 74조에는 ‘혼인을 하는 자는 부부가 칭하는 씨를 신고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의 부부동성제는 메이지(明治)시대부터 10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오는 제도로, 일본의 구 민법에서는 ‘결혼은 아내가 남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를 반영해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랐다.
양성 평등을 규정한 전후(戰後)의 헌법에서 아내의 성도 따를 수 있도록 개선됐지만(24조), 실제로는 부부의 96%가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남녀차별이 존재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데릴사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남자 성을 따르는 것이다.
이에 도쿄(東京) 등에 거주하는 사실혼 관계의 남녀 5명은 “혼인의 자유 등을 보장한 헌법에 위반한다”면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총 600만 엔(약 58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위헌 소송을 냈다.
원고 측은 “선택적 부부 별성(別姓)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혼인의 자유를 불합리하게 제약하고 있고,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하지 않고 않다”면서 “민법은 여성에 대한 간접 차별에 해당하는 법으로, 이는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성씨만으로 사람을 부르고 구분하는 문화적 특성이 있어, 결혼 후 여성의 성씨가 바뀌면 정체성이 떨어지고 사회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2013년 도쿄 지방법원은 1심에서 “부부 별성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는 아니다”고 판결, 도쿄 고등법원도 2심에서 이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원고 측은 상고했으나 이번에 일본 최고재판소도 “부부동성은 합헌이다”면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부부별성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적지 않다.
이탈리아(1975), 오스트리아(1975, 1986), 서독(1976, 독일 1993), 덴마크(1981), 스웨덴(1982) 등은 원래 남편 성을 강제하는 시스템이었다가 별성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거나, 혹은 결합성(남편성과 부인성의 결합)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진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프랑스, 영국, 미합중국, 호주, 스페인에는 결혼과 성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이 없고 관습으로 처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지만, 물론 별성도 선택 가능하다.
스웨덴은 1983년 ‘이름에 관한 법률(씨명법)’에서 동성, 별성, 복합성 중에서 선택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물론 한국 등의 나라는 완전한 부부별성제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지역이 반드시 일본보다 가족 간의 유대가 약하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한편,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은 같은 날 ‘여성은 이혼 후 6개월 동안 재혼할 수 없다’는 민법 규정에 대해서는 “100일을 넘는 부분은 합리성이 없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최고재판소가 법률 규정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전후 10번째다.
앞서 1996년 두 규정을 둘러싸고 법상의 자문기관인 법제심의회가 ‘선택적 부부별성을 도입하고, 재혼금지기간은 100일로 단축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국회와 여론의 반대가 많아 개정 작업은 뒤로 미뤄졌다.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기에도 법 개정 움직임이 있었으나 내부 반대 등으로 법안 제출 단계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여전히 ‘근대의 주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도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도쿄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의 관련 사설을 소개한다.
가족과 법, 최고재판소, 시대에 맞게 유연해져야
<도쿄신문> 2015년 12월17일자 사설
부부 별성(別姓)과 여성의 재혼금지 기간을 둘러싼 최고재판소의 첫 판단이 나왔다. 사회현상에 대한 사고방식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시대에 맞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한 후 ‘가위 바위 보’로 성을 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아보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일본 유니세프협회 회장인 아카마츠 료코(赤松良子) 씨의 경우이다.
“둘이서 이야기한 결과 호적상으로는 저의 성(姓)으로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남편은 과거의 성을 필명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카마츠 씨는 과거 노동성의 국장 시절에 남녀의 고용기회균등법을 제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문부성 대신을 역임한 적도 있다. 결혼 후 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부부가 논의해서 정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 부부 별성에 대해 더 논의하자
‘가위 바위 보’를 통해서라도 정할 수 있다. 민법은 “남편이든지 아내의 성을 갖는다”라고만 되어 있을 뿐, 반드시 남편의 성을 강제하고 있지는 않다.
이 규정 만으로는 남녀 차별을 운운할 수 없다. 부부 별성을 요구한 이번 재판에서 최고재판소 대법정은 “가족은 사회의 기초적인 집단단위이므로 호칭을 하나로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면서 민법의 규정은 합법‘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한 쪽의 성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96%가 ‘남편의 성’을 선택하고 있다. 여성이 “내 성씨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법률적 혼인관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혼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 관계에 만족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실혼 관계에서는 세법상 부양가족이 될 수 없어 배우자 공제 등의 적용을 받지 못 한다. 상속의 경우에도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해진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남편의 성을 따른 다음에 과거의 성을 통칭(通稱)으로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등 근무처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경우가 늘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은행계좌를 개설하거나 건강보험증, 운전면허증 등을 새롭게 만들 때에는 통칭은 사용할 수 없다. 많은 여성들이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논의를 더욱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제이다.
◆ 성씨는 인격권의 속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성명(姓名)이라는 것은 개인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식별표와 같은 것이다. 개인 인격의 상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격권의 한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성을 개인의 의사에 반해 빼앗는다고 한다면 이익을 잃는 경우도 발생한다. 해외에서도 부부 동성(同姓)을 의무화한 나라는 지금까지 거의 없다.
법제심의회가 1996년에 원한다면 각자의 성을 가질 수 있는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를 제안한 것도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이었다. 모두에서 언급한 아카마츠 씨는 “나는 여성이 오랫동안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결혼 후 어느 한 쪽이 성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일을 계속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부부 동성으로 하든지, 별성으로 하든지,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법에서도 성을 바꾸는 것을 강제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메이지(明治)시대 민법은 ‘가족제도’를 골간으로 삼았다. 남편의 성이 당연했던 시대였다. ‘가족의 일체감을 상실할 수 있다’는 의견은 이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 사회는 글로벌화했고, 가치관도 다양화 과정을 겪고 있다. 선택적 부부 별성 등 21세기에 맞는 제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할 것이다.
◆ 여성에게만 재혼 기간 제한, 타당한가
여성의 재혼 기간 금지 규정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최고재판소가 “이혼 후 100일 초과후 재혼 금지는 위헌”이라고 한 것도 종래의 6개월 간 금지가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재혼금지 제도는 고대 로마법에 그 기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이 사망했을 때의 복상(服喪) 기간이라는 것이다. 메이지 민법에서는 “혈통의 혼란을 피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한다.
임신 사실을 모른 채 재혼할 수도 있으므로 의사를 통하지 않더라도 임신 유무를 알 수 있는 ‘6개월 간’이라는 제한을 전후의 민법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번에 재혼 금지를 ‘100일’로 한 것은 아버지를 추정하는 민법 규정과 관련이 있다. “이혼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이전 아버지의 자식,” “혼인 후 200일 후에 태어난 아이는 현재 아버지의 자식”으로 한다는 두 가지 규정이 있어 중복을 피한 것이다.
오히려 입법부에서 논의해야 할 것은 재혼 금지 규정 그 자체를 없앨지 여부이다. 확실히 규정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둘러싼 분쟁을 사전에 막겠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령 이혼 시에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등 그 대체 기능을 맡는 방법은 있다. 세계적으로는 재혼 금지 기간을 설정하지 않은 나라가 상당히 많다.
◆ 아이의 입장도 필요하다
지구적 규모로 성차별 철폐를 철폐하자는 커다란 흐름이 있다. 일본에서도 여성의 활동이 커다란 정책 과제이다. 최고재판소의 위헌판결에 의해 민법은 개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때에는 여성은 물론, 아이의 이익이라는 입장에서 서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법률은 살아서 움직인다. 사람들의 생활과 합치되도록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부부 동성’은 합헌, 국회는 재조정을 위한 논의를 하라
<마이니치신문> 2015년 12월17일자 사설
이 판결은 국회의 승인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
최고재판소 대법정은 부부 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 민법 규정을 ‘합헌,’ 이혼 후 재혼하는 것을 여성에게만 6개월 금지하는 규정을 ‘100일을 넘는 부분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둘 다 메이지시대부터 계속되어온 규정이다. 부부 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규정과 관련해 대법정은 “성을 바꾸는 자가 정체성을 상실하는 느낌을 갖는다든지, 여성이 불이익을 받는 등의 경우가 있다는 것을 추인할 수 있다”면서도 “성의 통칭적 사용이 확산됨으로써 일정 정도는 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최고재판소는 충분히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았다
뒤집어 보면 최고재판소의 판단은 일정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괜찮다는 것인가. 이런 주장이 특히 여성들로부터 양해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판결은 입법부인 국회에서의 논의를 촉구했다. 부부 동성과 더불어, ‘각자의 결혼 전 성‘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에 대해서도 “합리성이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가족의 모습은 국민생활의 기초가 된다. 국회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가면서 제대로 법률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
부부 동성을 정한 것은 1898년 시행된 구(舊) 민법이다. “아내는 혼인에 의해 남편의 집에 들어간다”라는 가족제도가 그 배경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족제도는 폐지됐지만, 부부 동성 규정은 남았다. 현재 민법은 결혼 시에 “남편 혹은 아내의 씨(氏)를 칭한다”라고 되어 있다. 중립적인 규정이지만, 사실은 남편의 성을 선택하는 부부가 약 96%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진행되어 “성을 바꾸지 않을 자유도 인정해주길 바란다”는 여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법제심의회는 1996년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를 도입하는 민법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오랫동안 여당으로서 정권을 담당해온 자민당 내에는 “별성은 가족의 일체감을 훼손한다”는 반대론이 강하고, 결국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 정권 하에서도 이뤄지지 못했다.
가족이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단위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성이 다르면 가족의 연대감이 흔들린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도 늘고 있지만, 가족 일체감이 훼손되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부부가 같은 성이라고 하더라도 매년 이혼 건수가 20만 건 이상이다.
결혼하는 커플의 약 3할은 어느 한 쪽이 재혼이다. 미혼이나 싱글맘도 늘고 있다. 시대는 변했고 가족의 형태도 다양화하고 있다.
다시 확인해야 할 사실은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가 같은 성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부부의 의사도 존중하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이 이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부부로서 같은 성’을 갖겠다는 사람이 73%나 되고, ‘부부 별성’은 13%에 그쳤다.
원치 않게 아내의 성을 따른 남편을 포함해, 부부 별성을 원하는 소수자의 인권은 존중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이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고재판소가 판결에서 “결혼 시에 성씨의 변경을 강제할 수 없는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격권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라고 판단한 것은 유감이다.
15명 가운데 5명의 재판관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3명의 여성 재판관은 모두 위헌 판정을 내렸다. 이들 3명은 “96%의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은 여성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약하다는 점을 반영하고 현실적인 불평등과 역학관계가 작용한 결과”라면서 개별적 의견을 진술했다. 사회 전체, 특히 남성은 이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 재혼 금지 기간도 불합리하다
여성에게 6개월 간 재혼을 금지한 것도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규정이다. 판결이 ‘100일을 넘는 부분’을 위헌이라고 하면서도 ‘100일의 재혼 금지 기간은 합리적이다’고 판단한 것은 의문이다.
이 규정은 여성에게 이혼 직후 재혼을 인정할 경우 바로 태어나는 아이가 이전의 남편의 아이인지, 현재의 남편 아이인지 추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전남편의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할 때까지는 재혼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도 그 배경에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과학의 진보 등으로 아버지를 특정하는 게 가능하다. 과학적인 감정이 가족을 결정짓는 모든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지만, 여성에게만 장기간 재혼을 기다리도록 해야 할 근거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판결에서 다수의 재판관이 ‘이혼 후 100일 이내라도 아버지의 추정이 중복될 경우는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전체 여성에게 필요 이상의 제약을 가하는 규정은 폐지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민법은 별도 규정으로 “재혼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전 남편의 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친 여성이 다른 남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경우, 그 적출(嫡出) 추정을 피하기 위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아이가 무호적 상태가 되는 문제가 최근 클로즈업되고 있다.
민법을 개정할 때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더불어 논의해야 한다.
국회의 책임은 무겁다. 가족 문제는 전통이나 습관, 국민의식 등을 무시한 채 제도를 변경하기 어렵다. 하지만 법제심이 민법 개정을 제안한 이래 19년 동안 이 문제를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 동안 해외의 많은 나라가 부부 동성 규정이나 여성의 재혼 금지 기간의 규정을 수정했다.
최근 상기 두 가지 규정과 관련해 유엔의 여성차별철폐특별위원회 등이 반복해서 폐지를 권고해온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국제사회의 흐름도 의식하면서 논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