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지금까지 한국에는 있고 일본에는 없었던 것 중에 하나가 주민등록번호였다.

그 동안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주민기본대장이나 운전면허증, 건강보험증 등이 신분증명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 이동준 교수

하지만 내년 1월부터 일본은 일본판 주민등록번호 제도인 ‘마이넘버’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마이넘버’ 제도는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12자리의 고유번호를 부여해 납세와 사회보장 등의 개인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제도이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흡사하지만 생년월일과 출생지역, 성별 등 개인정보는 알 수 없고 개인식별 용도로만 쓰인다. 일본에 거주하는 필자도 최근 이 번호를 통지받았다.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이 제도의 목적은 ‘IT국가’ 및 ‘공평사회’의 구현이다.

내년 1월부터 마이넘버를 이용해 구청에 가지 않고 편의점 등에서도 주민표 등을 출력할 수 있게 된다.

2017년 1월부터는 전용 사이트 ‘마이나포털’에서 자신의 개인정보를 국가나 지자체가 어떻게 이용했는지도 확인할 수도 있게 된다.

또 내년 하반기부터는 국가와 지자체의 시스템에도 연결돼 관청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줄어들 전망이다.

2018년에는 개인의 동의를 전제로 은행구좌와 마이넘버를 연결할 수 있으며, 호적이나 여권 등에도 마이넘버를 이용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일본 정부는 이 제도를 세금이나 사회보장과도 연계해 행정 업무의 효율화와 함께 ‘공편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본내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다.

개인에 대한 국가의 관리 강화나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베 정부의 우경화를 염두에 두고 이 제도가 향후 ‘징병제’ 실시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 일본 관방성 홈페이지 캡처

사실 일본이 이런 기초적인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던 이유는 국가가 개인에게 번호를 부여해 개인 정보를 관리하게 하면, 개인이 사전에 허가하지 않은 정보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했기 때문이다.

조세 관리와 행정 효율 증대라는 명목으로 국가에게 개인 삶 전체를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권리를 줘도 되는가 라는, 국가와 개인 간의 갈등이 강하게 존재한 것이다.

변호사와 시민들로 이뤄진 일부 단체는 사생활권을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면서 마이넘버의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인들이 마이넘버 제도를 그다지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특히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전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연금정보관리시스템이 해킹돼 125만 명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 네트워크 보안협회(JNSA)에 따르면, 2013년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총 1388건으로 정보 유출 인원이 925만2305명에 달한다.

더욱이 시행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았는데 준비가 부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경제 신문>이 최근 중소기업 경영자와 임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마이넘버 제도 준비를 ‘대체로 완료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6.6%에 불과했다. 응답한 기업의 48.2%는 제도를 이해하지 못해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는 남북 분단체제를 이유로 도입됐다.

박정희 정부는 지난 1968년 1월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자 간첩 식별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도입했다.

주민등록번호로 범인을 검거하거나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주민등록번호는 없다. 호주 정부도 1980년대 주민등록번호와 비슥한 제도를 도입하려다 국민들의 반발을 사 중도 포기했다.

독일 역시 주민등록번호 도입을 검토했지만 의회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포르투갈은 헌법에서 주민번호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12월10일자 9면에서 마이넘버 제도의 시행을 앞둔 기업들의 동향을 소개했다.

<마이넘버 제도 도입 초읽기>

세금과 사회보장을 통괄하는 마이넘버 제도가 내년 1월부터 운용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통지(通知) 카드의 배달이 늦어지는 등 불상사가 잇달아 발생, 최첨단의 IT(정보기술) 입국을 추구하는 정부의 이상과 현실 간의 격차가 확연하다.

엄중한 정보관리가 요구되는 기업, 지방자치단체 간에는 혼선이 일고 있다. 이래서야 IT국가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11월2일 세븐 & 아이·홀딩스그룹이라는 기업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개인번호 제공서’라고 적힌 문서를 받았다. 배달된 통지카드 등을 복사해 받아 직원들의 마이넘버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제도상 기업은 정업원이나 가족 등으로부터 마이넘버를 확보해 보관함으로써 세무서나 시청 등에 제출하는 장부에 기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회사의 경우, 입수해야 할 마이넘버는 이토요카도 등 18개 그룹으로 10만 명 이상에 달한다. 장부는 약 100 종류나 된다. 통지카드의 배달이 늦어졌기 때문인지 회수율은 3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보누출 1호는 되지 말자>

기업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은 개인정보의 안전관리이다.

세븐 & 아이는 10월 데이터 관리를 위해 본부에 전용 보안관리 센터를 2곳이나 설치했다. IC카드와 패스워드, 정맥(靜脈)인증, 감시카메라도 준비했다.

입·퇴실이나 컴퓨터 조작 기록을 남기도록 하는 등 24시간 점검 태세에 들어갔다.

“정보 유출은 돌이킬 수 없는 데미지를 준다. 개인정보를 관리할 수 없다는 인상을 주면 끝장이다. 반드시 막아낼 것이다”라고 업무지원부의 데지마(手島) 주임은 강조한다. 산업계에서는 지금 “정보누출 1호만은 절대로 되지 말자”라는 위기감이 넘친다.

정부는 성장전략의 주축으로 IT의 활용을 내걸었다. 지향하는 바는 ‘세계 최첨단의 IT 국가’이다.

마이넘버는 그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세금 부담의 공평성의 확보나 행정업무의 효율화를 기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번호를 관리하는 기업들의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너무 크다. 누출되면 그 기업은 물론, 마이넘버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성도 흔들릴 수 있다.

히다치(日立)제작소는 새롭게 64개 조항에 달하는 개인정보 관리 기준을 설정해 19만 명 이상의 그룹 종업원을 대상으로 마이넘버에 대한 인터넷 교육을 실시했다.

“마이넘버를 추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종업원이 제도를 정확하게 이해는 것”(IT보안통괄부 담당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보인다. 세븐 & 아이는 마이넘버에 대한 대책으로서 자물쇠가 있는 커다란 가방들을 준비했다.

왜인가. 시청 등 공공기관에 장부를 제출할 때는 암호를 풀어 외부기록매체에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종이에 인쇄하는 등의 방법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특수한 가방에 넣는 것은 이를 운반하는 와중에 내용물을 도난당하거나 분실할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마이넘버가 IT화의 상징이라면, 공공기관에 데이터를 전송하는 과정을 포함해 모든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길 바란다.” 히다치 측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주장했다.

<편리성을 실감하기에는 좀 더 기다려야>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NTT그룹 출신의 구마가야 도시히토(熊谷俊人)씨가 시장인 지바(千葉)시. IT 활용에 적극적인 구마가야 씨조차 “국민이 편리성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이 인터넷 상에 본인 전용의 페이지를 갖는 ‘마이나 포털’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2017년 1월부터이다. 여러 가지 정보를 획득하거나, 전출이나 전입 등 이사 절차를 원스톱으로 하겠다는 것이 특징인데, 지방자치체 간의 연계 등 서비스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은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수록 시청 홈페이지에 액세스하는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복지에 관한 안내 광고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면 효과적이겠지만, ‘마이나 포털’이 없으면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구마가야 씨는 말한다. 그는 이런 도움이 되는 행정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정부는 차근차근 현실화를 추진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11월말로 기한을 정해 실시한 통지카드의 배달은 12월로 미뤄졌다. 일부 주민의 데이터가 인쇄 공정에 들어가지 못해 카드가 작성되지 못하는 형편없는 실수가 발각됐다.

세븐 & 아이나 히다치와 같이 문제의식을 갖고 임하는 예는 오히려 소수인 것 같다. ‘제국 데이터뱅트’가 10월 후반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응을 마친 기업은 6.4%에 불과했다. 마이넘버를 활용하기 위한 체제가 아직 전혀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이와 같은 번호 제도가 이미 존재하는데 반해 일본은 후발주자이다. 그만큼 마이넘버는 본인확인 절차에 보다 완벽을 기하려 한 측면도 있다. 초기 투자만으로도 3,000억 엔이나 되는 거금을 들여 이 제도를 도입한 이상 최대한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과 공공기관 간의 정보 교환을 그야말로 디지털화하거나, 개인정보 보호를 염두에 두면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한 지혜를 짜낼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증과의 일체화 등으로 개인번호 카드가 보급이 되면, 하나의 IC카드를 국민들이 갖고 다니게 된다. 인터넷뱅킹 시에 이용하거나 콘서트 티켓으로도 활용하는 등 아이디어가 점점 새로운 수요을 불러일으키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국민의 총의(總意)를 모아가며 유연한 발상을 자아낼 필요가 있다.

소자(少子)고령화,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일본에게 IT국가로의 변신은 나라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하는 요소이다. 마이넘버를 생활화하겠다는 각오가 요망된다.

<업무 효율화의 계기로 삼아야>

우메야 신이치(梅谷真一郎) 노무라(野村)종합연구소 제도전략연구실장

마이넘버의 도입으로 업무의 시스템화나 자동화가 가능하게 됐다. 기업으로선 총무나 경리 등 관리부문의 인원을 줄일 수 있고, 관공서도 서류를 늘어놓는 일을 없앨 수 있다. 그만큼 부가가치를 낳는 분야에 인재를 집중시킬 수 있다. 향후 더욱더 노동력 부족해지는 일본의 성장을 위해서는 사무 부문의 생산성 향상이 필수불가결하다. 마이넘버는 이러한 사회변혁의 출발점이다.

예·저금 등에도 마이넘버를 활용하게 되면 개인수입에 대한 투명성이 높아진다. 불투명한 상태로는 세금 부담 등에서 불공평이 발생한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올바르게 징수할 있으면 향후 그다지 증세하지 않아도 세수를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로서 당연히 지향해야 할 바이다. 이것이야말로 마이넘버 제도가 갖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개인번호 카드가 널리 활용이 되면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기거나, 경쟁의 룰을 변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본 독자적인 IT 사회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2020년에 열리는 도쿄 올림픽에는 많은 외국인이 일본으로 몰려온다. 일본의 IT 인프라나 서비스를 보여줌으로써 아시아 등에 이를 확대 보급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건강관련 정보는 다른 번호를>

미야시타 히로시(宮下紘氏) 쥬오(中央)대 부교수

마이넘버 제도는 행정의 효율화나 공정공평한 사회의 실현을 지향하는 것으로, 도입 자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올해 9월의 법 개정으로 특정질환 건강진단, 예방접종 이력 등 건강정보에도 마이넘버를 적용하는 데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건강 관련 정보는 외부에 누출될 경우 악영향이 막대하다. 소득 관련 정보와 연결될 수도 있다. 같은 번호에 많은 정보가 연결됨으로써 본인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개인정보가 분석되는 프로파일링의 위험도 커진다. 건강 데이터의 활용이 필요하다면, 마이넘버와는 다른 번호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개인번호 카드의 활용 방법에도 의문점이 남는다. 정부는 장래에 건강보험증이나 신용카드 등과 일체화하는 것을 검토할 태세이다. 그러나 개인번호 카드는 휴대해서 돌아다닐수록 분실 위험성이 높아진다. 개인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패스워드가 필요하므로 분실하더라도 바로 정보가 누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자 등의 경우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패스워드로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위험한 카드를 갖고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정책적으로 분명히 모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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