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8일 저녁 7시 서울 강남 교보빌딩 23층 대강당에는 평양의 현재 실상을 들으러 온 200여명의 청중이 꽉 찼다.

▲ 남영진 논설고문

한창 더위를 뚫고 참석한 이 자리는 한겨레신문 사진기자로 최근 2년간 4차례나 북한을 다녀와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타커스 출간)라는 책을 펴낸 진천규 기자(59)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느라 진지했다.

그는 책 제목에 대해 “알게 모르게 지난 10여 년간 남북은 여러 모로 많이 닮아갔다”며 올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표준시를 한국과 맞춘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5일 여름휴가 때 한강의 '소년이 온다', 김성동의 '국수'와 함께 읽었다고 공개한 후 주요 서점가의 종합 차트에서 20위권 이내에 진입했다.

이들 책은 교보문고에서 전 주에 비해 20배나 많이 팔렸다. 소위 ‘문프(문재인 프레지던트) 셀러’ 형상이다.

이날 문대통령의 추천사도 스크린에 떴다. “우리의 일상과 비슷한 최근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글과 사진으로 담아있다.” 진 기자를 jtbc 뉴스룸에 초대해 인터뷰했던 손석희씨도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고민은 참으로 두껍다”는 추천사를 보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그가 나온 배재고, 단국대 동창들로부터 한계레신문 식구들 그리고 언론계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물론 네이버와 다음을 보고 저자 사인을 받기위해 달려온 순수 독자들이 주축이었다. 중1학년 담임선생도 첫 축하인사말에서 “어릴 때부터 예의가 바른 진천규 학생을 한겨레신문을 보다 이름을 발견해 만났다”며 이후 4번에 걸친 인연을 소개했다.

▲ 서울 강남 교보빌딩 대강당에서 열린 진천규 기자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출판 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영길 전 국회의원과 전 외국어대 부총장 이장희 민족평화통일시민연대 대표도 축사에서 이 분위기를 바탕으로 함께 <통일TV>를 만들어 민족동질성 회복에 일조하겠다는 진 기자의 노력을 치하했다.

진 기자는 스스로 ‘평양 순회특파원’이라고 소개했다. 평양에 상주하진 않지만 비정기적으로 방북취재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7월 초까지 네 차례에 걸쳐 40여 일간 북한 주민 250명을 만나고 이를 포토 에세이집으로 만든 것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금강산에서 남한 관광객이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 이후 북한 방문을 금지한 2010년 5,24 조치로 기자들의 방북취재가 불허됐다. 이후 박근혜정부까지 9년간 남북관계가 경색돼 평양과 북한의 변화모습을 취재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 영주권자인 그가 최근 4차례 방북해 평양은 물론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등 각지의 풍경을 객관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북한 당국은 진 기자에게 세 가지 약속만 지켜주면 비교적 자유롭게 찍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즉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과 사진은 전체 모습이 온전히 나오게 해달라, 둘째와 셋째는 건설노동자와 그리고 남루한 노인 모습을 찍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17년만인 지난해 10월 방북했을 때 놀란 것은 자동차가 많아졌고 택시와 핸드폰이 보편화된 점이다.

▲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김성동의 '국수', 한강의 '소년은 온다'/창비, 솔, 타커스 제공

그는 한겨레 기자시절인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 취재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간 크게 변해 평양에 아파트와 호텔도 많이 들어섰고 지난해 10월만 해도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음에도 평양은 활력이 넘쳤다고 말했다.

호텔 앞과 평양역 앞, 옥류관 식당 앞 등에 많은 택시가 있고 그 만큼 이용 승객이 있다는 뜻이다. 택시는 버스, 지하철과 함께 대중교통 수단의 하나가돼 일반 서민들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평양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휴대폰을 쓰고 있고 엄마 사무실에 놀러온 초등학생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모란봉에서 할아버지가 휴대폰으로 손자 사진을 찍는 모습과 마트와 거리에서도 휴대폰을 이용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84년 경인일보 사진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때 회사를 옮겼다. 한겨레 시절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나올 때 풀기자로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께 손을 잡고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의 작품이다.

2001년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한국일보에서 근무했고 지난해 10월 이후 올해 7월까지 4차례 북한을 방문해 평양 시민들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 지난달 초 책으로 펴낸 것이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중국 단동에서 신의주를 거쳐 평양까지 기차를 타고 가 연변의 평야지대와 추수 장면 등을 찍을 수 있었고 평양에선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평양시내 야경, 려명거리 73층 아파트 내부 모습, 옥류관과 청류관 주방 모습 등을 찍어 최초로 공개했다.

또 대동강 둔치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 평양의 출근길, 하교하는 학생들, 그들의 방과 후 활동들,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장 보는 주부들, 퇴근 후 맥주 집에서 대동강맥주를 마시는 직장인 등 다양한 일상생활이 담겼다.

그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고 말했다.

▲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타커스 제공

“사진을 수 천 장 찍어 고른 게 7~800장이고 책에 넣은 것이 100장 정도다. 동영상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40~50 시간 찍었다. 북한 당국은 내게 단 1장의 사진이나 1초의 동영상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를 전담하고 있는 안내원도 6차례 방북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 걸 보고 믿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96~97년 한국기자협회장으로 있을 때 그는 한겨레신문 기자로 기자협회에서 펴내는 <저널리즘>이란 미디어잡지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울릉도의 ‘고추냉이 복원’사업에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진지하고 과묵한 기자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통일문제에 더 관심이 커진 것 같다.

이제 그는 권영길, 이장희 선배들과 <통일TV> 만들기를 시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어 이를 개선하겠다.”고 말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