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금 635조원을 굴리는 국내 증시 최대 큰손 국민연금이 30일 스튜어드십 코드(SC·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지침)를 도입했다.

이번 도입안에는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 눈에 띈다. 다만 이를 둘러싸고 재계와 노동계 등은 한결같이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온도차는 확실히 엇갈리는 상황이다.

▲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에서 박영석 서강대 교수가 패널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집사(steward)처럼 돈을 맡긴 국민 이익을 위해 책임을 다하도록 한 지침이다./뉴시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금 사회주의 및 기업의 경영 간섭이 발생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거두지 않았다.

노동·시민단체 측에서는 경영참여 주주권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 환영하면서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금의 수익률을 제고하고 기업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실효성 측면에서는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5% 룰'을 조속히 완화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이날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안을 심의· 의결했다.

최종 의결안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도입 초기에는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부터 우선 도입, 경영참여 주주권은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에 이행방안을 마련해 시행한다는 원칙을 초안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라도 기금위가 의결한 경우에는 주주참여 주주권을 시행할 수 있는 내용의 조항을 추가하기로 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현행법은 임원의 선임·해임·직무 정지, 정관의 변경, 자본금 변경, 합병·분할·분할합병, 주식 교환·이전, 영업 양수·양도, 자산 처분, 회사 해산 등 경영권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행위를 경영참여로 보고 있다.

즉 이번 최종안은 재계의 연금 사회주의, 기업 경영 간섭 등의 우려와 노동·시민계의 실효성 의혹을 모두 절충해 안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 자료를 통해 "국민연금의 독립적 의사결정 체계 구축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서도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7%에 육박하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설 경우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 요인이 된다"라고 발표했다.

경총은 또 "향후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는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개별 기업의 경영 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시장을 교란하는 일이 없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시민단체에서는 경영참여 주주권 조항이 추가된 것에 대해 긍정적이라면서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진단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경영참여를 할 수 있는 단서 조항을 넣어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며 "또한 국민연금은 기업의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의도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만큼 하루 빨리 '5% 룰'을 완화해 국민연금이 경영참여에 나서려고 할 경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해 줘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5%룰은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는 투자자는 지분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5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한 자본시장법상 규정을 지칭한다. 금융위원회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꾸더라도 '5%룰'을 적용받지 않도록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은 보유 목적이 경영 참여인 경우 단순 투자일 때보다 주식 보유 상황을 더욱 상세히 신속하게 공시해야 해 기관투자가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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