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경제신간 리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4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새경제규칙포럼(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공동주관해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초청포럼에서 “세계경제 대전환과 한국경제 – 복지국가, 산업정책, 경제민주화”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 김선태 편집위원

이 자리에서 그는 특별히 산업정책과 재정정책에 관해 현재의 정부 정책 기조와 대비되는 입장을 밝혀 주목받았다. 장 교수 주장의 요지는 대략 아래와 같다.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위기에 접어들었지만 그 대안 체제는 여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원래 신자유주의는 ‘성장을 위해 평등을 희생해도 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성장도, 평등도 담보하지 못했다. 가령 1950년에서 1980년대 사이 국가개입주의의 시대에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1인당 기준으로 2.8~3%가량이었던데 비해, 1980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신자유주의시대의 성장률은 1.4%부근이었다.

핵심 키워드 - 복지국가, 산업정책, 경제민주화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1997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조건부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이래 성장 정체와 소득분배 악화라는 동일한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1인당 소득기준으로 6%가 넘었던 경제성장률은 2~3%대로 떨어졌다. 핵심적인 이유는 기업 투자 감소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인 주주들의 입김이 세어지고 그들이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자 대기업의 장기투자가 힘들어졌다. 금융시장 자유화로 은행들이 고위험의 기업금융 대신 소비자 금융에 집중하자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이 어려워졌다.

투자가 안 되면 산업구조의 고도화도 정체되기 마련이다. 현재 주력 산업들 대부분이 중저가시장에서는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는데 조선과 철강에 이어 자동차와 휴대전화에서까지 중국의 위협을 받는 중이며 반도체의 앞날도 불투명하다. 반면 선진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기계, 부품, 소재, 제약 등의 분야는 물론이고 생명공학, 나노기술, 대체에너지 등 신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태양전지 등 일부 분야에서는 중국에게까지 밀리고 있다.

고용 불안은 그 귀결로서 가령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으로 올라갔다. 공공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 수준으로 멕시코에 이어 OECD 회원국들 중에서 두 번째로 낮고 심지어 ‘신자유주의 모범생’으로 간주되는 칠레(11% 부근)보다도 낮다. 육아, 교육 보조가 미비하니 출산율은 세계 최저 1위로 떨어졌고, 1995년까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던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이제는 평균의 3배 수준으로 단연 1위가 되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지금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 사회 문제들을 풀기에 태부족이다. 특히 두 가지가 필요한데, 산업정책의 부활과 복지국가의 획기적인 확대가 그것이다.

산업정책 - 대기업의 참여와 중소기업 지원이 절실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정체되는 원인은 기업 투자 부진과 더불어 신산업 개발이 더뎌진 데서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외환위기 이후 이렇다 할 산업정책이 거의 없다. 현대 경제에서 혁신과 업그레이드는 개별 기업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로서 기업, 노동자, 연구기관, 교육훈련 기관, 지역사회 등 모두가 힘을 합치고, 정부가 그 협력을 조율해야 한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신자유주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 장하준. 부키. 400쪽. 2018년 07월 19일

우선 대기업이 필요한 산업들이 있다. 반도체, 자동차 등 보호해야 할 기존 주력산업, 제약 등 새로 진출해야 할 기존 산업, AI나 신소재 신기술 분야 등이다. 많은 산업이 혁신을 위해 연구개발(R&D)과 생산에 있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장 교수는 자신의 책 『개혁의 덫』(부·키)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재벌 체제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162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장점이란 경영권의 중앙 집중, 대규모 자금 동원력, 위험 분산 능력 등이다.

다음으로 기계, 부품, 소재 산업 등 중소기업 중심 산업들이다. 우리에게 취약하고, 반드시 발전시켜야 하는 산업인데 가령 반도체는 세계 1위인데 반도체 만드는 기계는 80~90% 일본이나 독일에서 수입하는 형편이다. 정부와 정부연구기관들이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동도 필요하다. 대기업이 하청기업에 적정 이윤을 보장하고 투자를 통해 위험을 분담하며 기술지원도 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

이런 산업정책에 더해서 금융시장 및 기업지배구조 정책들을 고쳐 장기투자를 가능케 해야 한다. 주식시장에서는 단기주주의 입김을 줄이는 수단을 강구하고, 기업 지배구조도 장기주주, 노동자 등 장기적 이해당사자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 중소기업 금융을 늘리는 방향으로 금융 규제를 취해야 한다.

복지국가 - 정부가 앞장서 생산적 투자 나서야

복지 정책은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며 장기적으로 경제의 활력을 증대시키는 수단이다. 다만 우리와 같이 복지국가에 대한 편견이 많은 나라에서 이 문제를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국익 차원에서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진보의 경우 사회 복지는 ‘무상 복지’가 아니며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보수의 경우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선별적 복지’ 관점을 버리고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를 수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증세는 필수이며 누진소득세를 올리되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도 올려야 하며 세금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복지국가는 경제민주화의 동력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성장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지향해야 할 가치다. 정부가 빚을 내서 적극적으로 생산적인 데에 투자를 할 여력이 있다면 적자재정도 감수해야 하며 다행히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대비 국채 비중이 낮아 그만한 여력이 있다.

결론에서 장 교수는 “문제들이 돌이킬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시작하자”며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다급함을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비결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2007년도에 출간되고 최근 증보판이 나온 자신의 역저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에서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여기서 나쁜 사마리아인이란 구약 성서에서 따온 이야기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2007년 판, 35쪽)을 뜻하는데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자에 비유되고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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