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최저 임금을 2016년 이후 매년 3%를 목표로 인상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할 것을 각료들에게 지시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25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24일 열린 경제·재정 자문회의에서 “연 평균 3% 정도를 목표로 삼고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배려하면서 최저임금을 끌어올려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동준 교수

이 회의에서 제시된 정부 긴급 경제대책안(案)에는 현재 시급 798엔(약 7,517원)인 최저임금을 1,000엔(약 9,400원)까지 올린다는 목표가 명시됐다. 한편 한국의 최저임금은 올해 5,580원이며 내년에는 6,030원으로 인상된다.

아베 정부가 임금 인상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무엇보다 현재 약 500조엔으로 추정되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5년 안에 600조엔(5,652조원) 규모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이다.

일본 GDP의 약 60%를 차지하는 개인 소비의 신장이 ‘GDP 600조엔’을 달성하는데 필수적이라는 판단 아래 임금 인상을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려는 것이다.

사실 일본 경제의 시금석인 내수 시장은 아베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가는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가계 지출도 큰 폭으로 줄었다.

일본 총무성은 10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1% 하락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일본의 근원 CPI는 8월에 2년 4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선 뒤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가계 지출이 늘지 않은 데다 저유가의 영향이 이어진 탓으로 분석된다.

10월 가계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나 줄면서 전달(-0.4%)보다 6배로 커졌다. 임금 증가율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면서 소비 둔화로 이어진 것이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SBS 방송 캡처

아베 정부는 어떻게든 기업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기 위해 도쿄를 기준으로 35.6%(실효세율)인 법인세 세율을 “조기에 20%대로 낮추는 길을 모색한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사카키바라 사다유키(榊原定征) 게이단렌 회장은 26일 열린 관민(官民) 대화에서 설비투자를 3년간 10조엔 늘리는 것이 가능하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많은 임금상승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일본 기업들이 여기에 호응할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하의 <일본경제신문>의 관련 기사가 지적한대로 울며 겨자 먹기 식의 겉치레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경기 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업이 자진해서 임금을 올리겠다고 나설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임금 인상은 중소기업에겐 커다란 부담이다. 개발 시대도 아닌데 정부가 민간의 경영에 관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반발도 강하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보다도 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노동구조의 복원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게이단렌, 정부에 이례적으로 숫자를 내놨다

<일본경제신문> 2015년 11월27일 3면

게이단렌(經團連,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26일 정부가 개최한 관민(官民) 대화에서 설비투자를 3년간 10조엔 늘리는 것이 가능하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많은 임금 상승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기 후퇴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는 정부 측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기업이 판단할 문제인 투자나 임금 수준에 대해 게이단렌이 언급하는 이례(異例)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세계경제의 불투명성이 커지는 가운데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한 관민 협조는 정부가 경제계에 압력을 가하는 왜곡된 구조로 표출되고 있다.

“설비투자는 경영자 측이 노력하면 80조엔은 기대할 수 있다.” 사카키바라 회장은 회의에서 이렇게 말하고, 2015년도에 71.6조엔이었던 기업의 설비투자를 향후 3년간 10조엔 늘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투자 규모 수준에 대해서도 내년에는 “올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높게 평가하고 싶다. 확실히 실행해 주길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이 같은 게이단렌의 그야말로 이례적인 의견표명은 지난번 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임금과 설비투자에 대한 전망을 밝혀달라고 요구한데 대한 답변에 해당한다.

정부가 이처럼 경제계에 강하게 나오는 것은 아베 정권이 목표로 내세운 ‘경제의 선순환’이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로 대기업의 수익은 개선됐지만, 이것이 근로자나 중소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가의 영향을 제외한 9월의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0.3%에 그쳤다. 소비자가 물가상승을 느끼기 쉬운 식료품 등의 가격은 1% 이상이나 올라 개인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임금이나 투자 부분의 약세가 디플레이션 탈출을 향한 흐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됐다.

경제산업성의 간부들이 24, 25일 비밀리에 게이단렌을 방문했다. “어떤 식으로든 숫자를 내놓아 달라. 세제 개정만으로는 싸워나갈 수 없다”고 관민 대화에서 보다 진전된 내용을 피력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설비투자에서 높은 목표를 제시하지 않으면 본격화하는 세제 개정 논의에서 경제계가 기대하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는, 일종의 ‘압박’을 가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 내에는 엔화 약세로 높은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나 임금 인상에는 소극적인 경제계에 대한 불만이 많다.

기업의 내부 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논의가 시작된 것도 경제계로서는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

게이단렌은 “설비투자는 각 기업의 경영 판단의 문제”(사카키바라 씨)라며 목표치를 내는 것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숫자를 내놓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인세율 인하나 규제개혁의 추진,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등 9개 항목에 대한 대응을 조건으로 내건 후에 ‘80조엔’을 제시하기로 결정했다.

26일 회의에서 사카키바라 씨는 법인세율과 관련해 “내년도에 20%대로 인하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정부 측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산업계가 법인세 개혁을 위한 재원 확보에 협력해주길 바란다”고 즉답을 피했다. 아소 타로 재무상도 “이미 감세해온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게이단렌이 표명한 설비투자나 임금인상도 실현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중국을 포함한 세계경제가 크게 조정되면서 이것들이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지켜보자는 신중한 분위기가 산업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비투자 ‘10조엔 증액’은 직전의 실적에 정부가 목표로 내건 국내총생산(GDP) 600조엔을 달성하기 위한 성장률을 곱해 산출한 것에 불과하다. 사카키바라 회장 자신도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기업 입장에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인상도 마찬가지이다. 자동차 대기업의 한 간부는 “임금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지만 지난해와는 경제적 조건이 크게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외식업계로부터도 “인력 부족으로 아르바이트 임금도 최근 수년간 상당히 상승했다. 현재로서는 추가적인 임금인상 여력은 매우 제한적이다”(외식 체인업체 간부)고 말한다.

표면적인 협조 관계는 연출되었지만, 제2차 아베 정권의 출범 후 이어지고 있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관민 간의 협력 체제는 ‘정부로부터의 압력’의 장으로 변용되고 있다.

정부 개입에 위화감

이런 것이 대화라고 할 수 있는가. 10월 내각개편 후에 출발한 관민 대화를 보고 있자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자기 마음대로 마감시간을 정해 놓고 임금인상에 대해 대답하라고 몰아붙였다. 경제계는 근거가 불분명한 ‘설비투자 10조 엔 증액’이라는 숫자를 내놨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지 3년. 경제가 수축하는 ‘디플레이션 균형’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관민 협조를 추구해온 지금까지와는 달리, 관(官)에 의한 경제 개입의 색깔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정부 측이 느끼는 초조감은 이해할 수 있다. 일본 경제는 2사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 중이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가계의 소비도 위축시켜 경제 회복을 어렵게 한다.

민(民) 측도 정말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상품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IoT’ 분야의 투자에서는 유럽보다 크게 뒤쳐져 있다.

하지만 투자나 임금인상을 강제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요구해야 할 것이 많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합의했지만, 규제개혁은 국가전략특구를 제외하면 제자리걸음이다. 경감세율(輕減稅率) 문제를 조정하느라 진을 뺀 결과, 세재 개혁도 정체된 느낌이다.

설비투자가 달아오르지 않는 주요 요인은 인구 문제이다. 어느 금융기관장은 “노동인구가 감소해 잠재성장률이 역대 최저이다. 일본에 투자해도 정말 괜찮은가라는 경영자 심리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한다.

‘1억 총활약’을 위한 대책은 인구감소 등에 대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한다. 보육원이나 개호시설을 늘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노동자의 대부분을 점하는 남성 사원의 근로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1억 총활약도 그림의 떡이다.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는 ‘탈(脫)시간급제도’를 포함한 노동기준법 개정안은 언제 채택되는 것인가.

정부 측이 내세운 긴급대책의 부제(副題)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라고 적혀 있다. 과거 민주당이 내세운 것과 같이 최저임금의 전국평균을 1,000엔(시급)으로 한다는 목표를 포함시켰다.

명목성장률이 0% 근처인데 최저임금은 3% 올리는 의무를 기업에 부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정책의 중심이 소득재분배에 기울어지면 경제회복도 인구 문제의 극복도 멀어진다. 정부는 이 지적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편집위원 瀬能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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