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방송광고의 폐해가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문제된 라돈 침대가 대표적입니다. 언제부턴가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라며 소비자를 안심시키더니 대진침대에서 라돈이 나와 심각한 문제가 됐습니다. 제품회사에서 수거를 안 해 우체국 택배가 가져가더니 이제는 쌓아놓을 데도 없는 실정입니다. 몇 년 전 ‘살인 가습기’도 미세먼지 방지와 건조한 공기를 해결해주어 폐에 좋다고 광고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아기의 생명을 앗아갈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 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6월 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방송광고심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토론회’에서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침대만이 아니라 그 많은 정수기 광고, 게르마늄반지와 액서사리 광고, 보험과 상조회사 광고 등 제품선전인지 광고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하루 종일 홈쇼핑은 물론 케이블방송, 커머셜채널에서 마구 쏟아져 나와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게임광고에서 시청자들을 향해 총이나 칼을 쓰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반말’을 쓴 화면도 버젓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이날 세미나에서 전 언론학회장 문철수 교수(한신대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는 ‘방송광고심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1987년 방송광고심의제도가 시작된 이후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해외의 사례도 소개했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 심의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종편을 포함한 모든 방송사가 민간기구인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위탁해 사전심의를 받아 지상파와 유료 방송간의 비대칭심의의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광고기획사인 플래닛드림의 박정우 부사장도 현장에서의 애로를 털어놓았다. 그는 외국계, 국내 대기업, 디지털미디어 기획사에서 20년간 주로 식품광고를 담당한 베테랑이다.

박 부사장은 상업광고를 제작할 때 보통 3개월 정도 걸리는데 기획, 전략회의에 2개월 걸리고 제작은 1달 정도라고 했다. 자율기구에 넣어 서로 상의하고 보완하는데 2주정도 걸려 일단 심의필증을 받으면 지상파 방송에 바로 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각 방송사에서 심의를 하는 얼마 전 종편 3개 채널에 광고시안을 넣었더니 2개는 통과되고 한곳은 통과가 안 돼 그 기준이 다르다고 푸념했다. 전문성 있는 민간자율기구가 심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현장의 목소리였다.

방송광고가 소비자 선택을 위해 기여하는 바는 크다. 홈쇼핑, 인터넷, 광고전단지 등 정보가 폭주하기 전에는 방송광고 없이는 상품을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광고가 그만치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됐다.

사용하고 있는 집 안의 물건들, 샴푸, 비누, 옷, 냉장고와 그 안의 식품들, 여러 가지 전자 제품들에서부터 자동차, 아파트, 부동산까지 대부분 언론의 광고를 보고 제품을 알게 됐다.

광고는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현명한 구매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지난 6월 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방송광고심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토론회’에서 패널들이 발표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광고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다. 광고를 믿고 샀다가 해당 제품을 만든 회사에 항의하고 환불을 요구하기도 한다. 때로는 가습기, 침대, 보험, 대부광고 피해자처럼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홈쇼핑이나 케이블 방송의 광고가 너무 일상적이어서 소비자는 진지하게 듣기보다 가볍게 스쳐 듣다가 큰 코를 다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렇게 광고의 해악이 심해졌을까? 우선 제도적 결함을 들 수 있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 후 언론사 통폐합을 하면서 민영방송인 TBC를 KBS로 편입시키고 전국의 MBC를 합쳐 공영방송이 탄생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방송위원회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를 만들어 뉴스, 드라마, 광고까지 일괄 통제했다. ‘땡전뉴스’로 대표되는 5공화국 공영방송은 거의 ‘국영방송’이라고 불릴 만치 권력의 통제를 따랐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되면서 뉴스나 드라마의 내용통제와 규제가 약해지면서 이 제도의 순기능이 광고 업무에서 살아났다.

특히 광고는 시간과 단가, 내용규제까지 KOBACO가 관여하면서 대기업의 광고독점을 막고 무분별한 광고를 사전에 막을 수가 있었다. 광고 사전심의는 87년부터 KOBACO에서 방송위원회로 그 업무가 이관됐다. 이어 2000년 통합방송법 시행으로 광고심의 업무는 민간기구인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로 위탁돼 잘 진행됐다.

그러나 동해의 한 건어물 업자의 소송으로 결국 2008년 대법원은 사전심의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이후 사전심의는 방송사나 이익단체인 협회 등으로 뿔뿔이 나눠지고 일부 방송의 경우만 전문기구인 광고자율심의기구에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전심의가 권력이나 공공기관의 통제의 여지를 없앤 반면 각 협회의 이익에 맞는 자율규제나 각 방송사의 입맛에 맞게 심의되고 있다. 당시 일부 학자들은 자율기구의 사전 심의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전검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방송광고의 제출의무, 사전심의를 받지 아니한 광고의 방송금지, 심의 받지 아니한 광고의 과태료 부과 등이 검열이라는 것이다.

심의를 받지 않은 방송광고를 방송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 방송법에 위헌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허위, 과장광고의 인한 패해가 너무 크지만 징계내용이 ‘솜방방이’라고 볼멘 목소리다.

▲ 한국·중국 공익광고 캠페인/KOBACO=뉴시스 제공

정부의 방송광고 업무만 28년을 해온 김재철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광고정책과장은 토론회의 결론 발언에서 “10년 전 사전심의가 위헌판결을 받을 때 담당관으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헌법불일치 정도로 판결이 났다면 보완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당장 심의를 그만두어야 했으니 혼란이 컸습니다.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그 많은 인력을 들여 심의를 하지만 거의 제재건수가 없습니다. 업계에서 효율성 제로라는 지적이 나올 만합니다.”

김 과장은 당시 한 곳에서 사전 심의하던 것이 지금은 3~5곳에서 나누어 있으니 일관성, 효율성, 신뢰성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법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는 정부의 고민이 들어 있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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