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주말 황간초등학교 동기들의 초여름 모임이 고향인 충북 황간면에서 있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졸업 51주년이라며 60대 중반의 초로(初老)들 60여명이 학창시절 소풍가던 백화산 밑의 반야사 계곡 해오름펜션에서 1박2일의 일정을 마쳤다.

1904년 경부선이 놓인 뒤인 1906년 개교한 ‘황간소학교’는 조선시대 황간현 지역이었던 주변의 상촌 매곡 추풍령 등 지금은 4개면에서 유일한 초등학교였다. 그러니 112년이나 됐다.

지금은 전교 학생이 100명도 안되지만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시작되는 54년생 주축인 우리들은 4개반 한 학년이 200명이 넘게 졸업했다.

이중 여학생들이 절반이었으나 타지로 시집을 가서 절반은 연락이 안 된다. 죽은 남자 친구들 만해도 40여명이니 5분의 2가 넘는다. 매년 만날 때마다 잘 나오지 않는 친구들의 부음이나 병환 소식을 들으니 안타깝다.

고향을 지키며 농사나 장사를 하는 동기들 30여명은 서울 수원 대전 김천 대구 마산 통영 등 타지에서 온 우리들을 위해 숙소 예약은 물론 식사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이번에도 서울서 개인택시를 모는 강문화 회장이 이틀 전에 내려가 참석자들을 체크하며 준비했다. 고향에서 과수원을 하는 이희종 총무와 함께 당일 잡은 돼지고기 수육안주와 딱 1주일이 제철인 살구, 자두 등도 준비했다. 이 총무는 외지 친구들이 밤늦게까지 마신 술로 곯아 떨어져 자고 있던 새벽 6시에 봉고를 몰고 와 5박스나 되는 소주병과 사이다 콜라캔 들을 분리수거했다.

▲ 황간초등학교 동창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간 친구들 50여명이 친목계를 만들어 경조사 때는 서울이나 대전, 심지어 구미 대구 부산 마산 통영 등지까지 다니곤 했다.

이번에는 한화그룹 임원을 지낸 박영호 친구가 300만원을 쾌척해 마산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유호진에게 민물장어를 부탁했다. 그가 아침에 시장에 나가 갓 잡아 직접 가져온 장어구이 맛이 알싸한 소주와 어울려 기가 막혔다. 그래서인지 세 부부를 포함해 60여명이 모였다. 8년 전 초등학교 동문체육대회를 주최할 때보다도 더 많았다.

매년 모이지만 만날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 한 두명 보여 만남의 의미를 더한다. 이번에는 나와는 1학년 때부터 5년을 같은 반 이었던 원촌 출신의 허부순을 51년 만에 만났다. 고향에 갈 때마다 강호동의 ‘1박2일 200회 특집’을 찍은 월류봉 강가에서 한촌가든을 하는 육부성에게 그의 안부를 묻곤 했다. 대구 쪽에 있다가 형님의 콩밭 일을 돕기 위해 왔다고 한다.

나는 교실이 모자라 4학년 때 가학루의 향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그와의 추억이 전부다. 그는 1학년부터 담임선생이었던 김학영, 이원태, 정금자, 오종감, 박두용 선생까지 외어 5년간 같은 반이었음을 알게 됐다.

▲ 충북 괴산군 칠성면을 찾은 관광객들이 마을 앞 하천에서 올갱이 줍기에 분주하다./괴산군 제공

이번에도 식사는 고향 특산인 ‘올뱅이국‘이었다. 지금은 황간역 영동역 옥천역 앞에 ’올갱이해장국‘집이 즐비하다. 이 지역에서는 올갱이가 아닌 올뱅이로 부른다.

서울 경기 등 한강수계에서는 다슬기가 표준말이다. 국토의 서쪽인 대전 충남지역의 금강수계와 호남의 영산강 주변에서는 다슬기류의 대수리, 대사리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금강 상류인 충북 남부지역과 대청호가 있는 청주 그리고 낙동강 상류인 상주 지역서는 이를 올갱이, 올뱅이로 부른다. 대구지역과 낙동강 하류에서는 ’고디국‘이라 부른다. 바닷가 고동의 경상도 사투리일거다.

굳이 구별하자면 깨끗한 흰 모래에 사는 몸체가 길며 좀 흰빛을 띄고 겉이 도톨도톨한 것이 소라의 민물형인 다슬기다. 그러나 상류 돌 밑이나 바위에 붙어있는 동그랗고 갈색의 겉이 매끈한 것이 올뱅이, 올갱이다. 바다 고동이나 골뱅이의 민물형이다.

이 고장의 올뱅이해장국 레시피도 조금 다르다. 청주 충주 상주 지역에서는 주로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로 맛을 내지만 충북 남부지역에서는 된장으로 맛을 낸다.

아욱 근대 부추(정구지) 배추 시래기 등을 넣어 맛이 시원하다. 파란 국물이 쓸개액처럼 보여 실제로 간에 좋단다. 고향에서 택시를 모는 임기훈이 30대에 술로 간이 상했으나 올뱅이즙을 장복해 3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 쌩쌩하게 택시를 몬다. 이번에도 역에서 12km가 넘는 반야사까지 타지에서 온 친구들을 수시로 실어 날랐다.

▲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반야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벌써 몇 번째 모인 반야사는 보은 법주사의 말사다. 720년(신라 성덕왕 19) 의상(義湘)의 십대제자 중 한 명인 상원(相源)이 창건했다는 설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반야(般若)는 바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상징한다. 반야사위의 망경대 꼭대기에 문수암이 들어서 상주 쪽 모서면에서 넘어오는 석천을 조망한다. 절이 들어선 1,000미터가 조금 넘는 지장산이 우뚝하다. 등산객에게는 백화산(白華山)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은 첫 만남이 전부다. 초등 친구들은 만나 술 한 잔 걸치면 금방 “임마, 새끼”등이 튀어나온다. 다른 곳에서 들으면 싸움이라도 나겠지만 자연스럽다.

태풍 쁘라삐룬이 올라오면서 밤부터 비가 내렸다. 아침 장대비에 우산도 무력했지만 12km나 되는 읍내로 혼자 걸어갔다. 소풍 때는 2시간 반 이상 걸렸지만 2시간 내에 닿았다.

초등 4학년 때 영세 받은 ’언덕위의 하얀집‘ 황간성당의 주일미사에 조금 늦었다. 산길과 강가에 새 길이 뚫려 무섭지도 않았다. 친구들보다 산천이 더 많이 변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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