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사람이 죄를 짓는 것처럼 기업도 실수 이상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최근 일본 기업, 그것도 전통이 있는 유명 기업에서 잇달아 조직적인 기업 ‘불상사’ 사건이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아사이카세이(旭化成)의 자회사인 건설회사 아사이카세이 건재(建材)의 건물 데이터 조작사건으로 일본 사회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다.

▲ 이동준 교수

이 회사는 아파트나 병원, 학교 등 대형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원래 지반에 굳건히 박아둬야 할 말뚝의 일부를 기준치에 훨씬 모자라게 설치하고도 데이터를 조작해 건물 승인을 받아냈다.

이렇게 지어진 건물이 지난 10년 간 일본 전역에서 200여 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고, 그 수치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앞서 일본 전자 대기업 도시바는 반도체와 사회간접자본 사업 등에서 손실을 숨기고 이익을 부풀리는 등 회계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발각됐다.

이 회사는 이후 경영진을 대폭 교체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파문은 계속 확대 중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논리상 항상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일본 기업의 ‘불상사’는 단순한 불상사로 보기에는 그 정도가 심각해 보인다.

<일본경제신문>은 11월12일 스도 후미오(數土文夫) 도쿄전력 회장 등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내부 승격의 기업통치, 시대에 맞지 않다

스도 후미오(數土文夫) 도쿄전력 회장

최근의 기업 불상사를 보고 몇 가지 느낀 것이 있다. ① 전통이 있는 대기업에서 발생했다, ② 경영진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③ 중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④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것이다.

왜 전통이 있는 기업에서 불상사가 속출하는가. 나는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형 기업통치 체제가 시대에 맞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종래에는 창업 이래 줄곧 근무한 직원이 나중에 경영진이 되거나, 사장 자리에 오르고 회장이 되고, 마지막에는 상담역의 자리까지 차지하는 일종의 ‘다중적 통치체제’가 많았다.

▲ 일본 NHK TV 방송 캡처

이런 체제에서는 경영진은 대담한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가령 선배가 쌓아온 사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만두라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

그 결과 대충 눈감아 주거나 하는데, 그로 인해 발생한 작은 문제들이 오랫동안 쌓여 커다란 과제가 되고, 돌발적으로 불상사로서 표면화한다. 이런 흐름이 있었던 게 아닌가싶다.

내부 승격 임원만으로 판단할 시대는 이제 끝났다. 필요한 것은 경연진의 다양성이다.

다른 업계의 경영자, 외국인, 여성 등 사내 출신 임원과는 다른 경험과 감성을 가진 사람을 사외 출신 임원으로 맞아들여 활력을 주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2명, 가능하면 반수 이상의 임원을 사외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사외 출신 임원은 해당 기업이나 업계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잘못 알고 있다. 문외한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상사에 관여할 가능성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경영의 궤도 수정을 과감하게 제안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영자 자신은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려야 하나. ‘논어(論語)’에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말이 있다. 경영자 스스로가 몸을 닦을 때만 조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경영자는 우선 겸허해야 한다. ‘기업환경이 심하게 변하므로 모든 위험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겸허한 자세를 취하면 ‘자신을 포함해 회사 임원만의 판단으로는 불안하다“는 태도를 갖게 된다.

불상사는 전쟁이나 범죄와 같이 근절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경영자는 ‘자기 회사에도 일어 날 수 있다’고 자각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도쿄전력의 경우에도 원자력발전에 관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안전에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중요한 한 가지는 조직의 투명성, 공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내가 NHK의 경영위원이 됐을 때 ‘수신료가 너무 비싸다’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NHK는 도도부현(都道府県) 별 수신료 지불률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불투명한 체질로는 시청자의 이해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개선을 요구했다.

도쿄전력의 사외 출신 이사가 됐을 때도 ‘전기요금이 너무 높다’라는 소박한 의문을 갖게 됐다. 총괄원가방식(總括原價方式)이라는 독자적인 비용산출 방식으로 과연 이용자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가. 이해를 얻어 내기 위해서는 경영의 투명성이나 공정성을 더욱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가령, 도쿄전력은 지금껏 지역 독점이었지만, 전력 소매업 자유화로 앞으로는 다른 회사와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경영 부문이나 구매 부문에서 (가격을 유지하고자 하는) 카르텔 등이 형성될 우려가 있다.

나는 이사진 회의에서 미리부터 “철저하게 경계하라”고 못을 박아 두었다. 종업원에 대해서는 기업윤리나 법률 위반이 없는지 철저하게 교육하고 법률 위반이 있을 경우에는 엄벌주의를 취한다.

개인적으로 JFE의 경영자로 있었을 때 힘든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독점금지법에 담합을 자주적으로 신고하면 과징금이 감면되는 제도가 생겨 회사 내에 “1개월 이내에 신고하면 징계하지 않겠다”고 통지했다. 기술자 출신인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위반 신고가 마구 들어왔다. 완전히 뒤집어졌다.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노동력 부족 문제이다. 맨션의 말뚝 문제를 비롯해 공사나 시스템 개발은 하청회사에 맡겨진다. 2차, 3차로 내려가는 하청 사업자에게까지 법률 준수를 교육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경영자는 모든 리스크에 대비해 더욱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다 엄하게 기업을 감시해야, 언제까지든 숨길 수 없는 세상

구니히로 다다시(国広正) 변호사

나는 불상사 그 자체가 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불상사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발각되는 비율이 늘었을 뿐’인 것이다.

왜 숨기지 못한 것일까. 우선 경기가 좋지 않아 종신고용이나 계열사 간 거래 등을 통해 형성된 ‘회사 관계자는 운명 공동체’라는 전제가 무너졌고, 그 결과 내부고발이 늘었다. 대부분의 불상사는 내부고발에 의해 발각된다. 불상사를 주도하고 관여한 자만으로 문제를 은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compliance(법령 준수) 의식이 높아져 주주나 소비자, 감독관청에 의한 감시도 엄격해졌다.

독일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데이터 조작은 미국 환경보호단체가 폭로했고, 아사히카세이(旭化成)건재(建材)의 건물 말뚝 데이터 조작은 판매가 완료된 맨션에서 이변이 일어나 발각됐다. 일단 발각되면 예전에는 볼 수 없었을 정도로 가혹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진다.

최근의 경향인 ‘데이터 조작’이 두드러진 것은 경계해야 한다. 종래의 기업 불상사는 손실을 숨기고 이익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담합 등 재무적 속임수, 경영 부분의 은폐 등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 기업에 대한 강한 기술과 데이터는 전문가들이 확실하게 일을 해온 결과 구축된 신뢰와 신화(神話)였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경영자가 감시하는 구조가 없다.

하지만 이제 기술이나 데이터도 조작되거나 속여지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기업의 신뢰를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의 의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 회사만은 결코 발각되지 않는다”라는 기대나 이상한 신념을 갖고, 문제의 단초를 알게 됐음에도 일단 이를 감추거나 눈앞의 이익을 좇는 대응으로 일관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문제가 발각되더라도 대충 눈가림으로 조사해 오히려 문제를 은폐하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직원이 인터넷 등에 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거꾸로 문제가 확대재생산되어 당사자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되어 제3자 위원회 등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태가 자주 일어난다.

경영자는 스스로 철저히 불상사의 전모를 조사해 문제의 핵심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발본적으로 개혁에 임해야 한다.

제3자 위원회에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제3자 위원회를 선택한 것은 불상사를 일으킨 기업의 경영진이다. 이것은 이상하다. 불상사에 관여했을지도 모를 경영진에 의해 선택된 변호사나 회계사가 회사 경영진에 대해 엄격하게 조사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불상사를 일으킨 기업이 제3자 위원회를 선택할 때는 사외이사가 적어도 과반수를 차지하는 지명위원회를 만들어 그 지명을 통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써 구성된 제3자 위원회의 변호사 등은 경영진을 포함해 불상사의 근원에 대해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매뉴얼 의존은 역효과

히구치 하루히코(樋口晴彦) 경찰대 교수

많은 기업들은 불상사가 사라지지 않는데 대해 의문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일본 기업은 지난 20년간 여러 가지 불상사 대책 매뉴얼을 정비해 왔다. 문제는 이것들이 거의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기업 불상사에 대해 다각적으로 조사해오고 있지만, 원래부터 관련 대책을 도입하지 않은 예는 거의 없다.

그 대책이 기능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기업은 불상사가 발생하면 담당자의 태만이나 부주의라는 표면적인 분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면서 새로운 대책을 늘어놓곤 한다. 근본적으로 원인을 조사해 전면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불상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불상사에는 원인이 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냉동식품에 농약이 주입되는 사건이 발생한 아크리푸즈(현 마루하니치로)에서는 계약사원에게도 성과주의를 적용한 결과, 불만이 표출되는 요인이 됐다.

조직의 풍토라는 관점에서 말하면, 순환 거래에 손을 댄 가토키치(加ト吉, 현 테이블마크)에는 판매량을 늘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했다.

역대 경영자들의 압력으로 회계조작을 하게 된 도시바의 경우, 중간관리직 등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경영진이나 임원들이 이를 깔아뭉개버렸다.

일본 기업에서는 상사에게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사람보다 순응하는 비서 같은 사람이 출세하기 쉽다. 하지만 경영자에게 불만을 말하지 못하는 체질을 갖고서는 위기관리에 대응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회사마다 다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책 매뉴얼만 잔뜩 만들어서는 역효과라는 점이다. 귀찮은 규칙만 늘리게 되면 현장에 부담이 가중되어 중간관리직도 위축되게 된다. 모두 힘을 모아 하고자 하지만 정작 중요한 곳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어 펑크가 생긴다.

최근 주목되는 것은 하청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단절 문제이다. 과거에는 계속해서 관계를 가져온 인간관계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 비용삭감 등을 이유로 하청업체에 과도한 요구를 하게 된다. 이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예상치 못한 뒤통수를 맞게 된다.

조직 풍토를 바꾸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내가 알고 있는 회사는 무려 15년이나 걸렸다. 그래도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회사 분위기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회사를 살리게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영자 자신의 각오와 역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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