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진 논설고문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요즘 우리에게 러시아가 가까이 다가와 있다.

동계, 하계 올림픽 다 합쳐도 그 인기에 못 미친다는 월드컵축구가 러시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 최약체라고 평가되는 우리 월드컵 팀이 2연패를 당하고 16강 진출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국민들은 열심히 밤을 새우며 다른 나라들의 게임까지 본다. 그만치 ‘인류의 대잔치’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 남북, 북미 관계가 호전돼 앞으로 러시아, 중국 등 북방진출 가능성이 커져 관심도 높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경제회담에 참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9개항의 교류를 추진키로 합의했었다.

이어 월드컵기간중인 지난 5월 22일 모스크바를 국빈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회담 하루 전 러시아 의회인 두마연설에서 “가스, 철도, 전력, 일자리, 농업, 수산, 조선, 항만, 북극항로 개척 등 9개 분야에 양국의 다리를 놓겠다”면서 지난해 한러 정상회담에서의 9개 중점분야 협력을 다시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23일 밤(한국시간) 한국과 멕시코와의 축구경기장을 찾아 응원했다. 2골을 먹고 끌려가다 지연시간에 1골을 만회한 손흥민 선수 등이 옷을 갈아입는 라커룸까지 방문해 눈물을 흘리는 스태프와 선수들을 위로했다.

이 장면은 TV 영상을 타고 국내에 전해져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실 두만강 너머의 하산,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러시아령이지만 서울서 비행기로 일본의 도쿄(東京)보다 더 빠를 정도로 가깝다. 북한에서는 강 건너편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 대한민국-멕시코의 경기 관람을 마치고 손홍민 선수와 선수단을 격려하고 있다. 【로스토프나도누(러시아)=뉴시스】

우리는 1980년 러시아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다. 미국이 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에 항의해 소련올림픽 참가를 거부하자 서방 국가들은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이어진 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는 그 반대로 소련, 동구 등 공산권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아 2번에 걸친 ‘반쪽 올림픽’이 치러진바 있다. 4년 후 88 서울올림픽에 동, 서방이 거의 참가해 사상 최대 참가국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달 초 영국의 한 언론이 러시아가 월드컵경기가 열리는 남부 로스토프온돈시의 치안 유지에 코사크민병대 300여명을 투입할 것이라고 보도해 선수단은 물론 응원단도 걱정을 했다.

코사크기병대의 안 좋은 인상 때문이다. 코사크민병대는 원래 몽골족의 일파인 카자흐족 농민으로 구성된 자치 군사단체다. 15세기말 우크라이나의 드니프로 강유역인 자포리자 지역에서 처음 결성됐다. 16세기에는 돈 강을 중심으로 돈 코사크가 결성됐다. 우크라이나, 크리미아 등 분쟁지역이 이들의 출몰지역이다.

러시아어(語)인 ‘카작’(Kasak)’족은 스스로를 ‘자유인’(Cossack)으로 불렀는데 러시아 남쪽의 터키어에서도 코사크는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선거에 의해 수장(首長)을 선출하며 모든 중요한 문제를 합의로 결정했다.

러시아는 1654년 페레야슬라프 조약으로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면서 코사크민병대를 준군사 조직으로 육성했다. 16∼17세기의 타타르 및 투르크의 침입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는 그들에게 무기와 탄약, 식량, 자금을 주어 국경을 방비했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쪽 30㎞에 위치한 카시모보 지역에서 한 남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흉상에 절을 하고 있다. 청동처럼 보이는 합성 물질로 만들어진 이 흉상은 토가(고대 로마 시대에 입던 옷)를 걸친 로마 황제의 모습으로 푸틴 대통령을 묘사했다.【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러시아 시대 차르(TSAR)의 근위대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노동자·반봉건 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하며 악명을 떨쳤다. 전통 털모자인 ‘쿠반카’를 쓴 코사크 기병대들은 러시아 황제의 명령을 받고 제정러시아의 쌍독수리 문양 깃발을 들고 카자흐스탄의 초원지대를 지나 동쪽으로 말을 달려갔다. 드디어 청나라 건국 초기에 흑룡강(아무르강)까지 이르러 청나라 군대를 만나 전투를 벌인다.

청나라는 조선에 원군파견을 요청했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청나라에 신하의 예를 바친 뒤라 할 수 없이 원군을 파견한 것이 조선이 처음 외국에 군사를 파견한 ‘나선’(羅禪,러시아) 정벌이다.

이들 코사크 하층 민중은 17세기 후반의 S.라진, 18세기 후반의 푸가초프를 지도자로 한 저항을 벌여 농민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코사크군은 20세기 초 11개 군단이 각 지방 군관구에 소속돼 있었다.

1912년 카자크족 총인구는 약 400만인데 그 중 약 45만이 코사크군사요원이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때 차르(러시아 황제)를 지지하는 백군(白軍) 편을 들었다가 1920년 강제 해산됐다. 1차대전 독일과의 전쟁에서 새로 편성돼 용명을 떨쳤다.

2005년 푸틴 대통령은 관련법을 제정해 코사크민병대를 준(準)군사조직으로 복귀시켰다. 평화 시에는 삼림 보호·학생 교육뿐만 아니라 재난·전시·테러 등 긴급 상황에 활동하도록 돼 있다. 푸틴은 이들을 철저히 ‘사병화’했다. 이들 중 일부는 2014년 4월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親) 러시아 시위대를 도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교전했다. 같은 해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반 푸틴 여성인디밴드인 ‘퍼시 라이엇’과 지지자들을 공격했다.

코사크민병대는 대선을 2년 앞둔 2016년 러시아 남부 안파시에서 푸틴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와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지난 6월 중순 푸틴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러시아 전역에서 열린 반 푸틴 시위 진압에도 참여했다.

▲ 지난 8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인민대회당 환영식에서 아주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이징=AP/뉴시스】

인권기구인 국제앰네스티는 “코사크 기병복장의 진압대가 모스크바 푸쉬킨 광장에서 시위대에게 각목을 휘둘렀으나 러시아경찰이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들을 준 치안 조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언론은 중앙코사크군(CCT)조직에 러시아 정보기관 출신이 고위간부로 갈 정도로 긴밀한 관계이며 러시아 정부가 훈련예산을 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푸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세계적 행사인 월드컵을 성공시키기 위해 테러나 소요를 사전 방지하기 위한 ‘으름장’을 놓은 것인지 모른다.

월드컵기간중 경기장 주변을 비춰주는 TV영상에 민병대가 보이지 않았다. 중국 시진핑(習振平) 주석이 현대의 시황제(始皇帝)라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현대의 짜르(TZAR)라고 불릴 만 하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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