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92세를 일기로 23일 타계, 27일 장례식이 열린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로써 한국정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정치거목이 퇴장했고, ‘3김 시대’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 김홍국 편집위원

영욕이 교차했던 고인의 정치 역정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교차하고 있지만, 그가 한국정치 현장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산업화와 민주화에 공헌한 ‘정치 거목’이라는 평가와 추모의 움직임이 크고, 정부는 국민훈장 가운데 최고인 무궁화장 추서 방침을 밝혔다.

정치권은 지역주의에 기댄 과거 정치가 ‘3김 시대’의 종식과 함께 다시는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부정적 정치유산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독재나 권위주의, 국정농단 등 과거형 정치와도 결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파란만장한 한국 정치사를 온몸으로 써낸 ‘풍운아 정치인’이었던 그의 실사구시와 타협의 정신을 되새기는 한편 처세와 선동의 정치라는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고 21세기형 정치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온건과 타협, 늘 독재권력의 편에 선 양면 평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고인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정치인도 드물다. 그는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권위주의형 독재자와 다르게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타협과 처세에 능한 지도자였다.

한국 정치 사상 처음으로 중앙당·사무처 중심의 정당 시스템을 도입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반대한 것은 확실히 그들과 다른 면모다.

10·26 직후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1980년 ‘서울의 봄’을 열었으며, 권력을 분산하는 정치체제인 내각제를 정치의 화두로 삼아 끊임없이 추진하는 강인한 풍모도 보였다.

1997년 DJ와 손을 잡는 이른바 ‘DJP 연합’을 통해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와 외환위기 극복, 민주주주의 실현에 기여한 것도 대표적인 업적일 것이다.

그러나 삶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독재권력의 편에 서있었고,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지지하는 등 민주주의와 정의와는 다른 편에 서 있었다.

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많다. YS나 DJ가 일생에 걸쳐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것과 달리 JP는 5·16 군사쿠데타의 주역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산업화와 권위주의 시대를 이끈 과거형 지도자였다.

군사 쿠데타로 한국의 민주화를 망가뜨리며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대일 굴욕 외교의 주역중 한 명이었던 것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빈소를 찾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있다./뉴시스

정부의 훈장 추서 방침에 “독재 권력에 부역하며 역사 발전의 발목을 잡았다”며 반대 청원이 이어지고 있는 비판적 민심도 그런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주의 정치는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해 1987년 대선에 출마한 그는 이후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부추기는 행보로 일관했다.

특히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정치적 야합인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 거대 민자당 대 호남에 기반을 둔 평화민주당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영남보수 패권주의’를 굳어지게 함으로써 정당정치 및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YS에게 배신당한 뒤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그는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지역감정을 노골화했다. 충청권 맹주로서 정치 생명을 이어가는 등 권력 유지 및 집권을 위해 지역주의를 선동함으로써 이를 고착화시키고 지역감정의 고질적 병폐를 키워나갔다는 비판적 평가도 받고 있다.

◇ JP 타계, 명복 빌되, 정치사 발전과 역사 전진 계기 돼야

정치권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는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 사라졌다’며 92년 동안 풍운의 삶을 살아온 JP의 타계를 한 목소리로 애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우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별세를 국민과 함께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5•16군사 쿠데타, 한일 국교정상화, 9선의 국회의원, 두 차례의 국무총리, 신군부에 의한 권력형 부정축재자 낙인, 자민련 창당, 삼김시대 등 고인의 삶은 말 그대로 명암이 교차했다”며 “고인의 정치 역정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게 미루더라도 고인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 발전을 통해 10대 경제 대국을 건설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대한민국 정치사의 거목 김 전 총리의 서거를 가슴 깊이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은 DJP연합을 거론하며 “우리에게 친근한 별칭인 JP로 불렸던 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DJP연합을 통해 ‘국민의 정부’ 출범에 큰 기여를 했다. 9선의 국회의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한국현대사의 거목”이라며 “고인은 DJ, YS와 함께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자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정의당은 “JP는 5·16쿠데타의 주역으로 부상해 3김 시대를 거쳐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까지 그야말로 영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질곡마다 흔적을 남겼던 고인의 기억은 사료와도 같은 가치가 있다”며 “김 전 총리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확실한 것은 이제 대한민국이 다시는 그가 주역으로 활동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역사는 한 걸음씩 전진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JP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 김종필 전 총리가 1968년 6월 2일 부산 해운대 극동호텔에서 구태희 의원과 바둑을 두고 있다./전민조 작가=뉴시스 제공

이처럼 일부 진보진영의 비판적 평가와 훈장 추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국무총리가 훈장을 추서키로 결정한 이유도 이런 정치권 평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고인의 긍정적인 측면은 이어받되, 부정적인 측면의 나쁜 유산은 극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국민 섬기는 진정한 ‘허물 없는 정치’ 과제 남겨

고인은 3김 시대의 유산과 함께 역사 속으로 퇴장했지만, 정치권은 JP가 걸었던 정치 역정의 의미를 새기며 새로운 민주주의와 정치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는 생전에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말하며, 국민을 배신하는 정치가 언제든 허무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을 예감하는 발언을 자주 하곤 했다.

지역주의에 안주한 채 색깔론에만 기대다가 지방선거에서 궤멸당한 보수진영에는 새로운 가치와 철학,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라는 큰 과제를 남겼다. JP가 평생 주장해 온 내각제와 정치체제 개편 역시 한국 대통령제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사숙고해야 할 화두다. 권위주의와 독선, 극한 대치로 자멸해온 한국정치의 역사를 돌아볼 때 타협과 양보의 정치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은 현대정치사에 던지는 교훈이 크다고 할 것이다.

▲ 박지만 EG회장이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 조문하고 있다./뉴시스

그는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서 “한 점 허물없는 생각(思無邪, 사무사)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다”며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을 치국(治國)의 근본으로 삼아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진력하였거늘 만년에 이르러보니 모두 헛된 인생이었다”고 썼다.

결론적으로 정치권에 대해 ‘오로지 국민을 섬기고 시민을 향한 정치를 펼치라’고 당부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치권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JP는 표표히 떠났지만 정치권은 그의 삶에서 긍정적 교훈과 반면교사 등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와 통일, 양보와 타협이 없는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정치는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면을 기원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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