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라면 끝없는 설원과 자작나무숲이 연상돼 설렘과 낭만이 서려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에게는 슬픈 역사도 함께 남아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이 철도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완전 개통되기도 전인 1904년 러일전쟁이 터져 군사물자를 수송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81년 전인 1937년 가을 이오시프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연해주 지방에 살던 고려인 18만명이 화차에 태워져 6,000km를 달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황무지에 강제 이주된 길이기도 하다.

이 철도와 남한과의 연결선이 확보됐다. 지난 7일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서 구 공산권 28개국이 참석한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의 최고 의결기구인 장관회의에서 전원찬성으로 우리나라가 정회원국이 됐다.

그간 3번의 투표에 북한이 반대해 무산됐다가 4번 만에 가입됐다. 지난 4월 27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 중 하나인 경의, 경원선 등 남북 간 철도연결의 첫 발걸음인 셈이다. 드디어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육로를 확보한 것이다.

OSJD(Organization for the Cooperation of Railways)는 구소련 및 동구권 나라 사이에 국제철도 협의를 위해 1956년 결성된 기구다. 현재 러시아, 중국, 북한, 몽골,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28개 국가가 정회원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가입하려다 실패한 뒤 2015년부터 다시 정회원 가입을 시도해왔다. 정회원 가입은 만장일치여서 북한의 반대와 북한을 의식한 중국의 기권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판문점 회담 직전인 지난 4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OSJD 사장단 회의에서도 북한 측 반대와 중국의 기권으로 무산됐었다. 국제철도협력기구의 주 철도인 시베리아 횡단철도(Trans Siberian Railroad·TSR)는 과거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경제·군사·정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철도의 개통으로 시베리아 지역을 개발할 수 있는 일대 전환점이 됐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차창 밖으로 동(東)시베리아의 울창한 산림과 초원지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1891년에 공사를 시작해 1916년에 완공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약 9,400k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경의선과 경원선이 복원되면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중국횡단철도(TCR)를 통해 유럽 대륙으로 곧바로 갈 수 있다.시베리아 철도는 1850년대 러시아 극동 지방의 군사적 비중이 커지면서 시베리아 개발과 대(對) 중국무역 등을 목적으로 계획됐다. 종래의 시베리아 가도를 따라 1887년 조사를 시작해 1891년부터 착공에 나서 1897년에는 부분적으로 첼랴빈스크∼이르쿠츠크가 개통됐다.

러일전쟁 이후인 1916년에야 하바로프스크를 경유해 블라디보스토크 종점까지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라고 불리는 전구간이 완공됐다.

1937년에는 전 구간이 복선화돼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수행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 거의 모든 철도 구간이 전철화됐고 서쪽으로부터 투르크시브 철도, 남(南)시베리아철도, 바이칼호와 레나강 유역을 연결하는 바이칼-아무르 철도 등의 지선이 갈라진다.

이 철도는 러시아제국 동진(東進) 정책의 결과물이다. 15세기 말 모스크바 대공국(大公國)이 러시아를 통일하면서 대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으로 100여년 역사를 지닌 블라디보스토크 역 도심거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서남쪽의 중부유럽과 서유럽엔 강대국이 버티고 있어 아직 미개발 지역인 시베리아 쪽으로 ‘동진’한다. 그리하여 16세기중 시베리아 진출로 상에 있는 카잔(Kazan) 등 몇 개 몽골족의 칸국을 강점하고 1582년에는 카자흐의 모험가 예르마크(Yermak)를 대장으로 하는 탐험대를 동방에 파견했다.

무력을 동반한 탐험대는 오비(Ob’)강을 넘어 이르티시(Irtysh)강 유역에 자리한 시비르(Sibir) 칸국을 공략해 이 땅을 황제에게 바쳤다. 이 시비르칸국의 점령이후 우랄 산맥 동쪽의 광활한 초원지대를 ‘시베리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베리아 초원로의 서막이 열린 것인데 이 길은 사실 징기스칸의 몽골병정이 러시아와 유럽을 점령하면서 만든 길이었다.1587년에 러시아는 시비르 부근에 토볼스크(Tobolsk)시를 건설하고, 계속 동진해 1638년에는 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했다. 러시아는 이에 머물지 않고 계속 남하해 러시아와 중국 청나라 간의 국경지대인 흑룡강(黑龍江) 일대까지 세를 확장했다.

마침내 1651년 하바로프 탐험대는 흑룡강 유역의 다우르족을 공격해 러시아군의 제1전진기지가 된 알바진 요새를 세웠다. 이듬해 네르친스크를 세워 1686년 청나라와 네르친스크조약으로 흑룡강을 국경으로 확정했다. 이후 이 지역 동쪽에 자신의 이름을 딴 ‘하바로프스크’가 세워졌다.

이 길이 바로 ‘시베리아 초원로’다. 이 길을 통해 동시베리아에서 많이 생산되는 비싼 모피를 대거 모아 유럽에 수출해 돈을 벌었다.

러시아는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해 침략을 자제하다 ‘중국 나눠먹기’에 뛰어든다. 청나라가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열강의 남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러시아는 북쪽에서 들어와 1857년 아무르주와 연해주를 설치한다.

▲ 블라디보스토크역/남영진 상임고문 촬영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강압적으로 아무르주(흑룡강 이북)를 빼앗고 연해주(우수리강 이동)는 공동통치지로 만들었다가 1860년의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까지 빼앗아 오늘날의 중-러 국경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100여 년간 이 시베리아 지역에 대동맥 역할을 한 것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다. 시속 80~90km의 열차로 주파하는 데만 꼬박 6박 7일(156시간)이 걸리며 9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시와 16개의 강을 건넌다.

‘신(新)실크로드’다. 한반도는 고대로부터 바이칼호수, 흑룡강, 연해주지방을 거치는 이 동쪽 시베리아 지역과 민족적, 문화적 유사성을 보여 왔다. 시베리아 초원로는 한반도와 유럽을 이어주는 문명교류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이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이 시작되어야 한다. 대륙 진출의 교두보는 확보됐지만 어떻게 북한의 철도를 연결하고 러시아와 중국을 통한 대륙진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전철이 많은 북한 철도는 전기가 부족해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에 실태 파악과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북한을 거쳐 들여오려던 계획이 그간 언론에 3,4번 발표됐지만 아직 첫삽도 뜨지 못한 ‘희망사항’이다. 철도연결은 더 난관이 많겠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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