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22일의 한미정상화담 성과를 놓고 국내외에서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

하지만 회담 직후 미국 워싱턴에 있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을 방문해 1905년 을사조약이후 113년 만에 태극기를 다시 올리고 박정양 초대공사 등 공사관 직원 후손을 만나 격려하면서 국격을 크게 올렸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은 1889년 2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양 국가에 설치한 외교공관으로 이날 오전 재개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정상회담을 마치고 22일 오후(현지시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36주년과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개설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재개관한 이곳을 방문해 공간과 전시관을 둘러봤다.

또한 이 자리에 박정양 대한제국 초대공사 손녀 박혜선씨, 이상재 서기관 증손 이상구씨, 장봉환 서기관 증손 장한성씨 등을 초청해 환담을 나누면서 일제 36년을 뛰어넘어 조선부터 이어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인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구체적인 합의 성명이 없어 국내에서는 아직도 “북한이 목숨 걸고 만든 건데 핵을 쉽게 포기하겠느냐”는 회의론에서부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이렇게 센데 북한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분분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로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연기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내놓자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가 효과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언론의 비난도 일었다.

북한의 비핵화를 두고 평창올림픽에서부터 지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까지 이어진 장밋빛 전망은 북한이 최근 한미 맥스선더 훈련강행과 태영호 전 북한 런던공사의 ‘최고 존엄 모독’발언을 빌미로 강경해지면서 한때 전망이 흐려졌었다.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하루 전에 돌연 연기하겠다고 통보하는가 하면 우리 기자들의 풍계리 핵실험장 방문을 23일까지 허락하지 않아 회의론이 높아갔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핵의 리비아식 완전폐기’를 들고 나오자 북한이 ‘미국이 전승국처럼 행동한다“며 반발했던 게 사실이다.

▲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페이스북에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방문한 사진을 게재했다./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뉴시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한국 언론의 전망은 조금은 낙관론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와 일괄 보상‘이라는 ’원샷 타결‘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별 비핵화‘ 방식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이 한미정상회담 직후에 대기 중이던 우리 기자들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를 위해 원산으로 받아들였다는 태도변화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어느 정도 만족한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문 대통령은 회담 전에 “북미회담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것이 가능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미국에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전제를 하고 “과거에 실패해 왔었다고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비관하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자세로 한반도 평화의 ’운전자‘이자 중재자 역할을 맡을 것임을 확실히 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방미 마지막 일정으로 재개관한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을 방문해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라며 "한미 정상회담도 잘 됐고 이런 날 또 주미공사관이 재개관해 오게 돼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정상회담에 대해 스스로 만족한 평가를 내렸다.

문 대통령은 "이 공관은 우리나라로서는 서양에 최초로 개설된 공관이며 19세기 워싱턴에 개설된 여러 공관 중 원형이 보존된 유일한 곳"이라며 "조미수호통상조약 136년만의 재개관일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려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 미국 워싱턴의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에 태극기가 게양됐다. 문화재청은 2012년 매입한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을 복원, 22일(현지시간) 개관했다./문화재청 제공

문 대통령은 " 박정양 선생이 공사관에 왔을 때 정말 막막했을 것"이라면서 "당시만 해도 나라의 위세가 기울 때 외교를 통해 힘을 세우려 없는 살림에 큰일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그런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고 여기까지 온 대단한 민족"이라며 "그 시기 개설한 러시아, 영국, 중국, 일본 등 공관들도 확인해보고 문화재청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런 얘기들이 제대로 기록으로 남아 알려져야 한다. 우리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나라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은 조선 후기 동북아 구질서를 극복하고 외교적 지평을 열고자 했던 고종의 자주·자강 외교 정신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공사관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그 기능이 중단됐고, 1901년 9월 일본이 단돈 5달러에 강제매입한 뒤 미국인에게 10달러에 매각했다. 이후 2012년 문화재청이 350만 달러에 매입해 보수·복원 공사를 거쳐 이날 개관식을 했다.

지난달 동북아평화연대 회원들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를 방문하면서 우수리스크에 있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대표로 참가했던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9월 6일 러시아 블라이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회의(APEC)에 문대통령과 함께 왔다가 이상설 선생의 외손녀들과 함께 유허비를 참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899년 3월 15일 박정양 주미공사와 같이 러시아·프랑스·오스트리아 주재 전권공사로 임명된 이범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공관을 열었다.

그러나 일제가 1904년 2월에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하고 이들의 소환을 집요하게 요구해 고종 황제는 할 수 없이 5월 18일 러시아 상주 공사관을 폐쇄하고 9월 1일에 이범진을 면직했다.

하지만 이범진은 ‘일본의 압박에 의한 귀환 명령을 무시하고 러시아에 남아라’는 고종 황제의 밀서를 받고 아들 이위종과 함께 공사관이 문을 닫은 1906년 초까지 계속 활동했다.

▲ 박물관으로 개관하는 최재형 선생의 러시아 우수리스크 생가/남영진 논설고문

헤이그 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로 이상설과 국내에서 파견된 이준 열사, 그리고 러시아에 남았던 이범진의 아들인 이위종이 통역관으로 파견됐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준 열사는 현지에서 분사했다.

이범진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다음해 자기 집 2층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 그는 고종 황제에게 “구적(仇敵)을 보복할 수 없고, 자살 외에 취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다”고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쳤다.

공관 복원과 함께 나라를 위해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안중근 최재형 부부 등의 유해와 묘지를 찾는 것도 나라 바로 세우기의 길임을 보여준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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