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역사상 어느 국면이나 상황이든 주요한 정치적 결정의 성공은 그 사회의 정치지도자들이 발휘하는 리더십과 협상력에 기반한다. 실패 역시 취약한 리더십과 빈약하거나 잘못 판단한 빈곤한 협상력에 기인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

미국 대통령을 지낸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부 주정부들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노예 해방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고, 이는 미국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내디딘 위대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적인 기민당 출신이었지만, 그는 동독의 붕괴 이후 독일사회를 잘 관리해 성공적인 독일통일 위업을 달성했다.

◇ 4월27일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 성과 ‘위대한 회담’ 될까

오는 4월 27일에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위원장 간 열린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김정일 위원장 간 열린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한반도에서 열리는 세 번째 정상회담이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번 정상회담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코피작전’이라 불리는 북한에 대한 제한적 타격이 예고된 상황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대북 대화 메시지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만들어낸 역사적 장면이다.

이번 회담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경우 한반도는 오랜 전쟁을 끝내고 동북아의 평화를 선도하는 핵심국가로 도약할 것이고, 실패할 경우 또다른 전쟁과 남북대결의 비극적인 장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과 전 세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성공 여부는 키맨 김정은 위원장 ‘리더십-결단’ 달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은 리더십, 북미정상회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리더십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회담 성공의 과실을 가져가지만, 회담 과정에서는 주변자적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두 회담의 성공 여부는 회담의 키맨 역할을 할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과 리더십에 달린 셈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마주앉을 정상회담장 내부가 25일 공개됐다. 전체적으로 원형 탁자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둥근 라운드형 테이블이 사각 테이블 있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 이번 새 단장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뉴시스

일단 조짐은 좋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전격 결정했다. 북한이 선도적으로 판을 만들테니, 남한과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와 경제적 지원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로 보인다.

유화적 행보는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도 휴전선 부근의 대남확성기를 하나씩 끄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대해 ‘우리는 준비됐다’고 명확하고 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 권력지향적인 카리스마와 최근 유화적 태도는 긍정적

여기서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 핵과 한반도 평화체제 등 민족의 운명을 가를 역사적 문제를 문재인 대통령과 담판지을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 남북정상회담장 평화의집 2층 회담장 내부/뉴시스 그래픽

김정일 위원장 사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 지도자로 집권해 집권 7년차를 맞고 있다. 그는 1984년생으로 30대 중반이지만, 집권 이후 고모부 장성택 등 권부의 핵심 인물들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대담하고 권력지향적인 성품임을 알 수 있다.

숙청과 처벌 등 권력 장악과 운용에서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지도자의 모습이지만, 장마당경제 등 시장을 허용하고 남한과 미국과 전격적인 대화에 나서는 등 유연하고 논리적인 승부사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는 2013년 3월 공표한 ‘경제·핵 병진’ 정책을 적극 추진했고, 5년여 만인 지난 20일 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언”하며 북한의 변화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그동안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도발을 통해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한 대신 대북제재를 자초해 위기 상황을 반복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행보다. 그동안 고위간부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과 강등·해임이 대내외에서 그의 잔혹하고 무자비한 성격을 조명하는 계기가 됐고, 마키아벨리식의 결과지향적 리더십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커져왔던 것과도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깡패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나가고 싶은 김 위원장의 열망이 잘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 김정은 리더십, ‘카리스마-실용주의-용인술-국제감각-유연성’ 주목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은 첫째, 카리스마, 둘째, 실용주의, 셋째, 용인술, 넷째, 국제감각, 다섯째 유연성과 기민한 대처능력을 꼽을 수 있다.

첫째, 그의 카리스마는 강력한 정권 장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앞에서는 연령이건 계급이건 정권기여도이건 관계없이 무력해진다. 상대를 장악하고 아랫사람으로 부리는 그의 모습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카리스마는 그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를 합쳐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둘째, 그는 이념이나 가치에 경도되기보다는 실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면 어떤 선택도 하는 실용주의적이고 실리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퍼스트레이디 제도 활용, 흡연장면이나 재떨이 영상 편집, 둘째줄에서 사진찍기 등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 남북정상회담장 평화의집 2층 회담장 내부/뉴시스 그래픽

있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용인술도 만만찮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처럼 오랜 관료를 활용하는가 하면 동생 김여정을 남북대화의 메신저로 보내고, 아내 리설주 역시 사상 유례없이 ‘존경하는 여사’로 격상시켰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같은 남북관계 전문가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스위스 등 해외에서 성장한 것도 국제사회의 흐름을 평가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절차-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김정은 ‘실리적 협상방식’ 긍정적

다음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의 협상력이다. 그가 카리스마 넘치는 실용주의 성향을 보여왔기 때문에 그의 협상의지와 실제 협상력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세한 절차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방향을 정하면 적극 나서는 그의 협상 스타일은 까다로운 트럼프 대통령과도 협력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초기에 애숭이라고 무시하며 깔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다. 과거 북한 도발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꼬마 로켓맨이라고 조롱했고, 이에 맞서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개소리를 하는 늙은 미치광이라고 비하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김정은은 아주 열려있고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매우 훌륭하다”며 이례적으로 존경과 예우를 담은 표현인 ‘어너러블’(honorable)을 사용했다. 결국 적절한 시점에 상대가 호응할만한 발언과 조치를 통해 성과를 내는 김 위원장의 협상력이 최근 여러 성공사례를 이끌어내는 등 만만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 이익의 균형 통해 북한 협력 이끌어내면 성공 초석 닦을 것

몰론 이는 현 상황이 상호간에 긍정적인 흐름과 조치를 보이고 있음을 감안한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 모두가 언제든 강경한 태도로 돌아서면서 판이 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합성/뉴시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와 중재외교를 통해 정상회담의 장을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무조건 반대와 발목잡기에 나선 야당과 보수진영의 극단적 선택을 제어하고, 국정에 대한 협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하게 상대 협상자에 대해 이익의 균형을 맞추면서 상대의 이익을 보장하는 협상력을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상대에게 농락당하거나 조롱당하는 상황, 내 이익은 줄어들고 상대만 이익을 보는 상황, 협조해주고 뒤통수를 맞고 나만 실패하는 상황은 어떤 협상자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상황마다 최선의 대안과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한편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세 국가 정상 모두 역사상 처음으로 다가온 호기를 놓치지 말고,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에 평화와 안전의 가치가 정착되도록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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