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최근 한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 경쟁이 치열한 모습이다.

최성범 주필
최성범 주필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만든 호주·일본·인도 4국 협의체인 쿼드(QUAD)에 한국이 참여를 꺼리고 있는 점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종전선언 추진에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쿼드(Quad)'의 2차 정상회의가 내년 봄에 일본에서 열리는 것을 계기로 차기 정부에 쿼드 참여를 요청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한국이 대중 포위망에 가입하지 않도록 유언 무언의 압박을 하는 양상이다. 미국 편을 노골적으로 드는 것만은 막겠다는 게 중국의 생각인 듯하다. 한국으로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을 당했던 쓰라린 경험을 돌이켜보며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넘어서 세계 2위가 되고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우면서 미국과의 양강 체제 나아가 세계 최강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해진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 리가로얄 호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오사카=뉴시스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 리가로얄 호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오사카=뉴시스 자료사진】

한국으로선 이 틈바구니에 끼어 선택을 강요당하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군사 동맹국인 미국과,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은 어렵다. 130여년 전 구한말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했던 상황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는데도 우리가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고, 어떤 면에서 무시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동맹국인 미국과, 경제 비중이 높은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지만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한국으로선 좋은 해법 중의 하나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가능성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철도, 항만, 가스, 북극 항로, 수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러시아와의 경협은 그 전망이 매우 밝다.

지난 2015년 10월7일 촬영한 우크라이나 서부의 볼로베츠 가스관 모습[키예프=AP/뉴시스 자료사진]
지난 2015년 10월7일 촬영한 우크라이나 서부의 볼로베츠 가스관 모습[키예프=AP/뉴시스 자료사진]

시베리아 가스를 개발해 가스 도입원을 다원화하고, 유럽과 철도로 연결하고, 새로운 북극 항로를 개척하는 것 등 한러 협력의 여지는 너무 무궁무진하다.

미국, 일본과의 무역비중은 줄어들고 있고, 중국 의존도는 줄여야 하는 한국으로선 새로운 경제적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한국은 지난 201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신북방정책을 선언한 바 있다. 전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가장 좋은 나라가 러시아라는 점도 한국으로선 큰 장점이다.

연해주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신동방정책의 기치를 내건 러시아로서도 한국은 유망한 파트너다. 러시아로선 냉전 시절 적대 국가였던 미국,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고 극도의 혐오 관계인 일본 그리고 한 때 영토분쟁을 벌였고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이미 러시아도 신동방정책을 선언한 바 있다.

둘째, 서로 얻을 것은 많은 반면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역사적으로 갈등을 빚은 적이 없는 데다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고 있어 앞으로도 이익 충돌의 가능성이 별로 없다.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제조업 성장 전략을 취해 이익 충돌이 불가피했던 일본,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러시아의 자원, 한국의 기술 자본 경험은 서로 거의 완벽한 보완관계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가 불곰사업을 통해 전달한 무기들이 오늘날 한국의 K2탱크 등 무기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는 점을 보면 한국을 대하는 러시아의 호의를 엿볼 수 있다.

셋째, 지정학적으로도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는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 세 나라로선 모두 러시아가 부담스러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선 또 다른 파트너(동맹국가에 가까운)를 확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함이 요구되는 건 사실이다.

넷째, 한반도 통일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은 한국을 묶어 놓기 위해 북한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등장은 한국으로선 새로운 카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시베리아 가스관과 시베리아 철도 연결은 북한을 경유해야 하고 이 경우 북한에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설득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박종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북방포럼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박종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북방포럼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외교를 보면 온통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에만 관심을 두는 모습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러시아와는 적극적인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모습이 국가 차원에서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지난달 18일 서울에서 '북방협력 30년,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라는 주제로 제3차 북방포럼을 열었지만 세간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한 게 현실이다. 눈 앞의 문제 해결에만 멀리 내다보고 좀 더 자신 있는 협력 강화, 국익 외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블라디보스톡이 동방에 눈을 돌리자는 뜻이라면 이제 우리도 러시아에 좀 더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 최성범 주필 겸 선임기자는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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