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경영학 박사] 언제부턴가 음식점에서 계란말이나 계란찜을 접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특히 만만한 반찬의 상징인 계란말이가 메뉴에서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질문하면 계란 값이 올랐다는 핀잔이 돌아오는 게 다반사다.

최성범 주필
최성범 주필

싼 반찬의 상징인 계란 값이 오른 이유를 알고 보니 과도한 살처분으로 인한 생산능력의 감소 탓이라고 한다.

실제로 계란 값은 엄청 올랐다. 지난해 9~10월만 해도 한 판에 3990원에 밥상에 올랐던 달걀 가격은 1년 가까이 7천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9년만 해도 특란 한판에 2400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이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 됐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산란계수 중 거의 23%나 되는 1700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살벌한 방역대책을 단행했다. 오리까지 포함하면 거의 3천만 마리나 된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산란계가 줄어 달걀 공급량 자체가 큰 폭으로 줄자 계란 값은 올해 들어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엔 코로나로 집 밥 수요가 늘어나면서 달걀 소비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공급량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화성시 한 산란계 농장에서 지난 1월 25일 오후 살처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화성시 한 산란계 농장에서 지난 1월 25일 오후 살처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살처분 하면서 줄어든 공급량을 보충하기 위해 정부는 계란 수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수입계란은 한판에 무려 1만2천원이나 되는 수입계란을 판당 3000~4550원에 공급했다. 1월부터 9월까지 3억2천만개의 계란을 수입하는 데 무려 731억원이나 썼다고 한다.

예산이 부족했는지 수입계란의 공급량은 충분하지 못했고, 보상관련 예산이 줄어들자 재입식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공급기반이 되살아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국민들은 계란말이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제 찬 바람이 불어오고 철새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조류인플루엔자가 창궐할 게 뻔해 계란 값 하락은커녕 추가 상승할 가능성마저 높은 형편이 되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을까? 보상을 충분하게 못했다든지, 수입물량이 부족했다든지 하는 등의 문제점은 정부의 대응 과정에서 흔히 생겨나는 보통의 실수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 대응 방식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조류 인플루엔자 방역에서 정부가 선택한 몰상식한 예방적 살처분 규정이다.

정부는 지난 2019년 말 고감염성 인플루엔자가 확산되자 살처분 범위를 기존의 500미터에서 무려 3km 이내로 확대했다. 규정상 직선거리로 계산돼 중간에 산이나 강 등 장애물이 있어 병원균을 보유한 야생동물의 이동이 어려운 경우에도 무차별적으로 적용했다.

서로 이동이나 왕래가 가능한지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지도상의 직선거리만을 적용하는 몰상식한 살처분 규정이다. 말 못하는 동물에게나 가능한 대책이다. 오죽하면 친환경 농업, 동물권을 강조하며 양계업을 하던 경기도 화성의 한 농가는 이에 반발해 예방적 살처분을 거부하며 버티면서 국민청원을 넣기도 했다.

물론 방역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정수준의 살처분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사료나 퇴비 운반차량의 동선이 같다든지, 거리가 매우 가깝다든지 하는 경우 예방적 살처분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처분 위주의 방역 대책은 너무 행정 편의주의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사육계의 23%나 살처분할 바에 굳이 왜 하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도 자연 치유를 기대하고 그냥 방치하는 이른바 자연방역을 선택했어도 그 결과가 더 악화됐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전체의 30% 가까이를 살처분하는 방역은 방역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계란을 고르고 있다./뉴시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계란을 고르고 있다./뉴시스

 

한마디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행정 편의주의다. 사람으로 치면 아파트 단지 하나에 코로나 환자가 생기면 단지 주민 전체를 중환자실로 보내는 것과 뭐가 다를까? 정부도 살처분 범위를 3km에서 1km로 축소했지만 이미 대부분 살처분이 끝난 뒤였다.

닭의 경우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가축 전염병 대응 방식은 무조건적인 살처분에만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살처분 범위만 강화했다. 쉽게 말해서 무대책이다.

이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조류인플루엔자 뉴스가 조만간 나올 것이다. 양계들에겐 홀로코스트다. 언제까지 무대책 방역대책을 지켜봐야만 할지 짜증스럽다. 코로나 방역을 1년 넘게 견뎌내다보니 가축 질병 방역 대책은 언제 제대로 바뀔지가 궁금하다.

※ 최성범 주필 겸 선임기자는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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