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개헌안을 발의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현지에서 전자결재로 개헌안을 발의한 뒤 입장문을 내고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하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개헌발의권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 김홍국 편집위원

문 대통령은 “대통령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며 “개헌에 의해 저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 것도 없으며 제게는 부담만 생길 뿐이지만, 더 나은 헌법,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나은 정치를 위해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도 국민들께서 투표를 통해 새로운 헌법을 품에 안으실 수 있게 마지막 노력을 기울여주시길 바란다”고 국회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로 투표해줄 것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또 “개헌은 헌법파괴와 국정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던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며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 모든 후보들이 지방선거 동시투표 개헌을 약속한 이유”라고 각 정당이 적극적으로 개헌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6월 지방선거 동시투표 개헌은 많은 국민이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이며, 국민 세금을 아끼는 길”이라며 “민생과 외교, 안보 등 풀어가야 할 국정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계속 개헌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을 합의할 수 없다면, 합의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헌법을 개정하여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 중심 개헌, 21세기 시대정신 담아내야

이번 개헌안은 1987년 헌법 개정 후 30년 만에 발의되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청와대가 공개한 개헌안에 따르면 대통령 개헌안은 기본권을 확대해 국민의 자유와 안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담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한국이 건설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1호기 건설 완료 기념행사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 악수하고 있다. 【바라카(아랍에미리트)=뉴시스】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헌법에 담기 위해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과 6·10 항쟁을 추가하고, 국민발안제·국민소환제를 명시해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현행 헌법이 1987년 이후 사회적 변화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중심 개헌’이라는 방향은 의미 있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생명권, 안전권, 정보기본권 등을 명시하는 것도 국민의 기본권 신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21세기 시대적 가치와 철학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정부 형태로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제시하고 대통령 소속인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분리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줄인 점이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 대신 4년 1차 연임제를 채택, 대통령의 연임을 보장함으로써 단임제 대통령 임기 후반의 레임덕을 없애고 책임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점은 주목된다.

또 대통령의 권한을 줄인 대신 국회와 총리 권한을 강화하고, 대법원장의 인사권 축소를 통해 과거 인사권을 악용해 판사의 독립성을 훼손했던 사법부의 어두운 역사를 벗어나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도 포함됐다.

이와함께 개헌안은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명문화하고,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하향 조정했다. 대통령·대법원장의 권한은 분산하면서 정치개혁의 토대를 구축하자는 개헌 제안인 셈이다.

정치권, 힘겨루기-이익계산 멈추고 적극 개헌 나서라

문제는 정치권이다. 개헌을 주도해야 할 국회는 개헌안 발의는커녕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하루전까지도 신경전과 힘겨루기 대결양상만 보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발의로 개헌 물꼬가 트인다고 주장한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사회주의 개헌이라며 반대 입장을 내놓고 다른 야당을 향해 공동대응하자고 주장했다. 이같은 국회와 여야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는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같은 사태에 대해 정국 운영의 책임을 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은 적지 않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는 한편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 여론을 선도하는 것은 여당의 할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야당 사이에서 최선의 타협책을 제시하고, 야당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설득과 막후협상 등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홍준표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무책임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5일 “(여권이) 개헌을 중지하지 않으면 사회주의 개헌 음모 분쇄 투쟁에 전 국민과 함께 장외로 갈 것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천명한다”며 장외투쟁을 예고했다.

홍 대표는 “국회와 상의하지 않는 대통령의 일방적인 개헌발의는 해방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이어 네번째 독재 대통령이 되는 날이 오늘”이라며 “사회주의로 체제변경 시도하는 이번 헌법개정 쇼는 앞으로 관제언론을 통해 좌파 시민단체와 합세해서 대한민국을 혼돈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국당은 지방선거 동시 개헌 공약을 깬 데다 개헌안조차 내놓지 않으면서 협상마저 거부해왔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21세기형 시대정신을 담았다는 개헌안에 대해 매도하며 사회주의 개헌안이라고 몰아붙이는 무책임하고 황당한 주장에 동의할 시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회, 개헌협상 통해 국민 바라는 개헌 꼭 이뤄야

다행인 것은 여야 3당이 권력구조-선거구제 개편 등 개헌과 관련 원내대표 협상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오는 27일부터 여야 원내대표 협상을 시작하는 데 합의했다.

▲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세균 국회의장과 3당 원내대표 회동에 많은 취재진이 몰려 있다./뉴시스

원내대표 협상 주제로는 ▲권력구조 개편 ▲선거구제 개편 ▲권력기관 개혁 ▲헌법개정 투표일 등 4개 안건이 선정됐다. 일단 개헌협상 착수에 합의했으나, 권력구조-선거구제를 놓고 여야간 견해차가 워낙 크고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개헌 동시투표에 강력 반대하고 있어 협상은 난항이 예상된다.

여야 정당은 시대적 상황과 국민의 기대를 반영해 자신들의 목소리와 이익은 줄이되, 합의를 위한 노력과 최대한의 양보를 통해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와 통일을 기본가치로 하는 새 헌법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4월 임시국회 일정을 합의한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야는 내달 2일부터 4월 임시국회를 개의하기로 합의했고, 4월 임시국회 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 관련 국회 연설을 하기로 합의했다.

여야는 아울러 4월 임시국회에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지 않고, 그 대신 대정부질문 시간을 기존 10분에서 13분으로 늘려 실시하기로 했다. 개헌과 관련해 국회 차원에서 적극 나서는 것은 대의기관의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국가의 근본규범, ‘1987년 체제’서 ‘2018년 헌법’으로

헌법은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헌법은 한 국가의 권력관계와 같은 정치적 사실과 함께 권력관계를 규율하는 법규범을 뜻하는 이중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근대적·입헌주의적 헌법은 국민주권의 원리와 기본권보장의 원리, 권력분립의 원리, 성문헌법의 원리, 경성헌법의 원리 등을 기본원리로 삼아왔다. 현대적·복지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에서 나아가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헌법을 가리키며, 1919년의 독일 바이마르 헌법이 그 최초의 형태이다.

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이 형식적 평등과 재산권의 절대성을 강조한 반면, 현대적·복지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실질적 평등과 재산권의 상대성을 강조하며, 실질적 법치주의와 기본권 보장 및 사회정의 실현, 권력행사의 통제와 조정, 사회적 시장경제주의, 행정국가적 경향, 국제평화주의 등을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지난 2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그동안 1987년 체제에 머물러왔던 한국의 헌법은 이제 31년만에 정의, 복지, 평화 등의 기본개념과 함께 사회적 양극화와 계층 갈등, 고령화사회,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 등 다양한 문제점과 사회적 갈등 현상에 대처할 수 있는 새 헌법을 가질 기회를 맞게됐다.

여야, 소모적 논쟁 접고 개헌 논의에 박차 가하라

여야는 이제 소모적 논쟁을 접고, 개헌 논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민주당은 야당을 끈질기게 설득해 미래지향적인 가치와 철학을 담은 개헌에 합의토록 해야하고, 한국당은 대통령의 개헌안을 비난하는데 넘어서서 자신들의 개헌안을 내놓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여야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 다양한 기본권의 보장, 지방분권과 선거구제 개편, 권력구조 개편 등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할 것이다. 31년만에 맞은 개헌의 호기를 놓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온 국민의 행복과 기쁨을 보장하는 헌법 만들기에 정치권과 국민이 적극 나서주길 기대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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